-
-
광인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4
김중의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2월
평점 :
수하는 십여 년 전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며 두고 온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때문에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딸 주변만을 맴돌며 친근한 '아줌마'로만 접근한다.
언젠가는 자신이 친엄마임을 알리겠다고 생각하지만,
갑작스럽게 퍼지기 시작한 광인병에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고 딸의 생사마저 불분명해진다.
더군다나 딸을 구하러 가던 길에 난 교통사고로 발목 골절까지 입은 상황,
외국인노동자 자카리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딸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개인적으로 좀비 이야기를 일부러 찾아 읽는 취향은 아니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국내외 좀비 스토리를 접하면서 든 생각은
좀비에 관한 한 ‘소재의 한계’는 없는 것 같다, 였습니다.
워낙 좀비 자체가 극성이 강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라든가 좀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상황, 극복 또는 퇴치 방법 등
어떤 설정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광인들’의 핵심 설정은 ‘생존투쟁에 나선 모녀’입니다.
아무래도 모녀가 주인공이다 보니
좀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액션이나 스릴 넘치는 장면들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생존을 위한 행동들이 공격적이기보다는 ‘은신과 방어’ 위주로 설정됐기 때문인데,
물론 나름 긴장감 넘치는 시퀀스들이 종종 보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좀비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280여 페이지의 분량에 알맞은 탄탄한 설정 때문에
재미있게, 부담없이 한 번에 쭉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심각한 상황에 맞지 않는 가벼운 문장들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수하는 목숨을 내놓고 딸을 찾는 와중에도 계속 경박한 혼잣말들을 늘어놓고 있고,
상황을 묘사하는 직유와 은유 등 대부분의 비유들은 치기어린 면이 종종 보이곤 했습니다.
물론 모든 히어로나 히로인들이 무게 잡는 심각한 캐릭터가 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라면 적어도 가볍거나 경박해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좀비 이야기에 애틋한 모녀 스토리를 섞은 시도는 매력적이었고,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인 만큼) 좀더 다듬어진 필력으로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한다면
주목받을 만한 한국 장르물 작가 리스트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