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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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출판사의 소개글은 크든 작든 과장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창백한 말의 경우 그런 과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수식어가 들어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결과적으로 다 읽은 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ZA(Zombie Apocalypse) 문학공모전에서 6회 만에 장편으로서는 처음 당선작에 오른..”

좀비라는 소재와 사회적 메시지를 스릴러 전개 속에 잘 담아낸...”

때로는 사회파 소설을, 때로는 첩보 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 빠르고 강렬한 전개

 

여느 좀비물과 달리 창백한 말의 공간적 배경은 무척 독특합니다.

좀비 바이러스는 이미 26년 전에 출몰했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사람들과 시체들이 공존합니다.

사람들은 면역자보유자로 구분되는데,

면역자가 건강한 신체와 사회적 권력을 향유한 채 (서울) 북쪽의 안전지대에서 살아간다면,

보유자는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바이러스 억제제를 먹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하층에 위치한 약자들이며 대부분 남쪽과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을 가로지른 엄청난 장벽은 1차적으로는 시체들의 공격을 막는 기능을 하지만

실제로는 면역자와 보유자를 갈라놓는 사회적 장벽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 하에 몇몇 인물들이 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바이러스 억제제를 생산하는 구인제약 하청공장에서 해고된 뒤

생활고로 인해 억제제를 구하지 못한 나머지 딸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보유자 김수진,

윗사람의 눈에 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시체들의 위협에서 100% 안전한) ‘거주권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구인제약 하청공장의 사장이자 면역자 진석호,

그리고 구인제약의 비리를 캐던 동생이 불법 시체게임장에서 살해되자

그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는 전직 군인 박세영이 그들입니다.

 

딱히 좀비물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지만 책이든 영화든 좀비를 다룬 작품 가운데

창백한 말만큼 현실감 있게 다가온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좀비가 등장하기만 하면 도시든 국가든 절멸의 운명에 처하는 것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이 작품 속 한국은 나름 시체와 공존하며 균형감(?)있는 체제유지에 성공한 상태입니다.

26년에 걸쳐 다져진 체제는 면역자와 보유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고,

장벽 너머에서 시체들에게 무참히 물어뜯긴 보유자들이 새로운 시체로 전락하는 사이

장벽 반대편에서는 천하태평인 면역자들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훌륭한 유전자 덕분에 억제제 없이도 건강한 삶을 보장받은 면역자와

비싼 억제제 없이는 언제라도 바이러스에게 먹힐 수 있는 비참한 신세의 보유자의 격차는

빈부, 의료, 복지, 인권 등 모든 면에서 까마득할 정도로 벌어져있으며,

그 격차는 결국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기준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설정은 좀비의 공격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공식을 넘어선 특별한 힘을 발산했고,

인물들이 겪는 위기와 고민, 갈등과 협력, 삶과 죽음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피부에 와 닿는 현실감 충만한 이야기로 만들어줍니다.

얼마 전 본 영화 월드 워 Z’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살짝 전개되긴 하지만,

창백한 말의 압도적인 리얼리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각 인물들이 지닌 리얼리티도 굉장히 생생했는데,

각각 딸과 동생을 잃은 채 구인제약이라는 괴물에 맞서는 김수진이나 박세영도,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진석호도,

또 바이러스가 지배한 세상에서 제정신을 잃고 폭주하는 크고 작은 조연들도

각자 자신만의 정의와 생존을 위해 나름 제대로 분투하고 있어서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만 나눠서 평가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인물이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 나름 특별한 이력과 과거를 지닌 탓에

다소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스토리의 힘으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중반부에 약간 늘어지는 대목이 있었는데,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좀비물의 상투성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탓으로 보입니다.

(1개가 빠진 건 좀비물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이 대목의 느슨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를 지나면서 상투성은 사라지고 예상외의 전개가 이뤄지는데

특히 마지막 50페이지는 분노, 동정, 안쓰러움 등 여러 감정을 뒤섞이게 만들면서

영화 월드 워 Z’의 허망하고 억지스런 해피엔딩과는 급이 다른 현실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적잖은 제작비가 들겠지만 창백한 말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부산행못잖은 매력을 발휘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전부는 아니라도) 공포 자체에 방점이 찍힌 부산행의 시체들과 달리

창백한 말의 시체들은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함께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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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엄마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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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침묵하던 희대의 연쇄살인범 이병도.

사형수로 수감 중인 그는 일면식도 없는 범죄심리학자 선경을 지목하며 면담을 요청한다.

선경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왜 자신을 지목해 인터뷰를 허락했는지 의문을 가진다.

한편, 또 한 명의 낯선 사람이 선경의 삶에 끼어든다.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오갈 데가 없어진, 남편이 데려온 전처의 딸 하영.

선경은 첫날부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게 되자 하영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등장인물 설명 중 약간 상세한 소개가 포함돼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간이 아니라 개정판으로, 당초 2010(노블마인)에 처음 출간됐던 작품입니다.

작가 후기를 보면 단순 개정판이 아니라 시리즈를 염두에 둔 새 출발이란 뜻이 담겨있는데,

독자들이 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너무 궁금히 여긴 탓도 있고,

거듭 읽다 보니 나도 뒷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는 작가의 의지도 가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2019)에 후속작이 나올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서미애의 팬이라면 잘 자요, 엄마가 지독히 역설적인 제목이란 점을 진작 눈치 챌 것입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꽤나 비극적인 모자 혹은 모녀 관계가 등장할 게 분명하고,

엄마라는 캐릭터가 따뜻함이나 모성애라는 의미보다는

그와는 정반대로 악마 또는 비극의 산실 역할을 맡을 거란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이선경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두 개의 미션이 동시에 부여됩니다.

하나는 참혹한 연쇄살인마 이병도의 뜻밖의 요청으로 그와 면담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편과 전처 사이에 태어난 하영이라는 11살 소녀를 떠맡게 된 일입니다.

이선경은 이병도와의 면담을 통해 그의 악마성의 근원이 어머니의 오랜 학대임을 간파합니다.

, 남편이 데려온 하영 역시 친모로부터 지독한 학대를 받아왔음을 눈치 챕니다.

특히 11살 소녀라는 외피에 어울리지 않는 공격성과 잔혹성을 지닌 하영을 지켜보며

이선경은 자기도 모르게 연쇄살인마 이병도와 하영을 동일선상에 놓기에 이릅니다.

 

이야기는 이병도 면담하영과의 동거등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말하자면 완성된 소시오패스첫 걸음을 뗀 소시오패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학대 엄마는 두 소시오패스의 공통점이자, 악마성의 근원지로 설정됩니다.

두 소시오패스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전개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다가

막판에 이르러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한데 합쳐집니다.

 

사건보다는 이선경-이병도-하영의 불안정하고 시한폭탄 같은 심리에 방점을 둔 작품이라

미스터리라기보다 심리스릴러로 보는 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설정은 꽤 센데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병도와의 면담은 그의 고백과 회상에만 의존할 뿐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지 못했고,

하영과의 동거는 대체로 상투적인 전개를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엔딩 직전의 클라이맥스 모두 다소 예측한대로 흘러가서

초반의 강렬한 설정에 비해 살짝 맥이 빠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이 모든 아쉬움과 걱정은 막판 몇 페이지의 엔딩에서 모조리 전복되고 맙니다.

2010년에 출간됐던 초판을 읽은 독자들이 후속작을 줄기차게 요구한 이유도

이 전복적인 엔딩을 읽고 나면 100%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이 딱히 연쇄살인범은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집착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두 소시오패스 캐릭터가 등장하다 보니 그 문제가 자주 거론되긴 합니다.

서른 넘어 갑자기 살인마가 되는 경우는 없다.”라는 대사를 쓴 점이나

작가가 두 소시오패스에게 공히 학대 엄마라는 외부요인의 영향을 설정한 걸 보면

연쇄살인범은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변의 노력에 따라 피할 수 있는 재앙으로 본 것 같은데,

워낙 논란이 있는 주제라서 독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는 있지만

작가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쳤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때론 학대로 인한 인간의 내적 파괴가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설정된 점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고 읽는 내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병도와 하영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린 점은 극적이긴 해도 위화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 “선경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두 완벽한 소시오패스를 한꺼번에 만난 걸까?”라는,

조금은 지나쳐 보였던 운명적 우연은 비극의 무게감을 감소시킨 부작용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서미애는 아린의 시선’,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 이어 겨우 세 번째 만난 셈인데,

읽은 작품마다 생생한 캐릭터와 완결성이 돋보이는 이야기 때문에 푹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첫 페이지를 연 뒤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했는데,

그녀의 두 번째 장편임에도 믿고 읽는 작가 서미애의 힘이 잘 배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 출간될 이 작품의 후속작 소식이 하루빨리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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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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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무대로 미래를 기억하는 신비한 능력자 이야기를 다룬 궁극의 아이나 진시황의 불로초를 소재로 한중일 3국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를 그린 불로의 인형처럼 작가는 이번에도 글로벌한 무대 위에 복잡하게 얽힌 추적자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두 전작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귀신나방은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설정인데, 소설 속 현재는 1969년이고, 이야기의 연원은 2차 대전 즈음으로 잡혀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한국인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라서 그야말로 세계적인 마케팅을 염두에 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서평을 쓰기 전에 혹시나 해서 출판사의 소개글을 살펴보니 역시나 이 작품의 주인공이 평생에 걸쳐 추적하는 악당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악당의 정체는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 정체를 언급하지 않곤 줄거리든 서평이든 제대로 쓰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출판사가 노출하지 않은 정보를 제멋대로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라 아주 두루뭉술한 서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여성 컬럼니스트가 사형을 코앞에 둔 사형수의 초대로 인터뷰에 나섭니다. 사형수는 뮤지컬 극장에서 16살 소년에게 다섯 발의 총을 난사한 뒤 체포됐는데 스스로 함구한 탓에 동기도, 피해자와의 관계도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사형을 앞두고 초대한 컬럼니스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차 대전 종전 즈음부터 현재까지 그는 20여년에 걸쳐 추적극을 벌여왔는데, 그 대상은 불사신처럼 오랫동안 죽음을 초월하여 생존해 온 것은 물론 자본과 정치의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헛소리로 들렸지만 사형수의 진술이 소름 끼칠 정도로 팩트에 가깝다는 걸 깨닫자 컬럼니스트는 전대미문의 특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지난 20여 년간 집요하게 악당을 추적한 과정을 그립니다. 물론 그 혼자만이 추적극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오롯이 그만의 미션으로 남게 됐고, 몇 번쯤은 결정적 기회를 잡아 악당을 제거할 수도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현직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악당에 대해 털어놓지 못합니다. 아무도 믿어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고독한 추적극을 감당해야 했고, 마침내 자신의 미션을 달성해냅니다.

 

하지만... ‘악당이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사형수는 20여 년간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한 걸까요? 20여 년에 걸친 추적 끝에 살해한 대상이 왜 16살 소년일까요? 16살 소년은 정말 사형수가 노렸던 악당이 맞을까요? 과연 20여 년의 추적을 마친 사형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까요?

 

사실, ‘귀신나방은 판타지라 하기엔 과학과 의학의 성과가 바탕에 깔려있고, 픽션이라 하기엔 꽤 많은 실존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장르 자체가 모호한 작품입니다. 방대한 인물이 등장하고, 복잡다단한 설계도 위에 무척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배치돼있어서 사이즈 면에서 보면 거의 대하드라마 급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전작들의 경우 그 상상력이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리얼하게 읽힌 반면, 이번 작품은 상상력이 너무 멀리 간 나머지 다소 황당하게 읽혔다는 점입니다. 특히 악당이 미국의 자본과 정치를 장악하는 과정은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이게 말이 돼?” 또는 이렇게 쉬워?”라는 의아함을 자아내곤 했는데, 워낙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이 넘쳐서 페이지는 휙휙 넘어갔지만 어딘가 찜찜한 위화감과 의아함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장용민의 거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상상력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오랜만의 반가운 신작이겠지만 이 작품으로 장용민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신작인데다, 내용 상 꽤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작품 곳곳에서 그 고된 과정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약간은 과할 정도로 뻗어나간 서사가 오히려 아쉬움으로 남았던 작품입니다.

 

악당에 대한 언급 없이 서평을 쓰긴 썼는데, 제가 봐도 참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악당을 이용한 홍보가 괜찮은 마케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감춘 이유를 잘 모르겠고 덕분에 서평 쓰는 독자 입장만 곤혹스러워졌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악당의 정체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언급하는 서평들도 있겠지만, 이렇듯 작품 자체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도 참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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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킬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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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부살인업자 방의강 시리즈의 존재는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우연히 접한 죽어도 되는 아이를 재미있게 읽은 덕분에 시리즈 완독에 도전하기로 했고,

이제 유령리스트블라인드 코너를 거쳐 프리퀄에 해당하는 퍼스트 킬까지 왔습니다.

 

방의강은 무자비한 청부살인업자지만, 한편으론 꽤나 소심하고 겁이 많은 중년남입니다.

앞서 읽은 작품들에서 이런 묘한 언밸런스가 이질감보다는 블랙유머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퍼스트 킬은 실업자 방의강이 어떻게 전설의 킬러가 됐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창업의 유혹에 넘어가 빚까지 진 채 실업자가 된 방의강은

자유롭고 구속받을 일 없는 돈벌이를 찾다가 엉겁결에 청부살인업에 발을 담급니다.

작가라는 닉네임을 단 그는 꽤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고용주의 눈길에 들게 됐고,

연이은 미션과 아르바이트까지 제안 받는 등 업계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소소한 탐욕을 부린 탓에 방의강은 목숨이 100개라도 모자랄 싸움판에 휘말리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업계의 전설이 된 것은 물론 어마어마한 부까지 손에 넣게 되는데,

거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기는 방의강의 청부살인 입문기가 짜릿하게 펼쳐집니다.

 

일단,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물의 미덕은 여전합니다.

아내에게 기 한 번 제대로 못 펴는 소심함에, 특전사 출신임에도 이젠 뱃살 두둑한 30대지만

방의강은 타고난 본능처럼 킬러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거침없이 발휘합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겪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과 행운은 물론 예상치 못한 도움의 조합으로

매번 그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살아남습니다.

, 피와 살이 튀는 와중에도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는

방의강 시리즈만의 독특한 맛을 위한 특별한 양념으로서 역할하고 있습니다.

 

전작들을 통해 만났던 매력적인 조연들이 초보 킬러 방의강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 방의강의 최대 적으로 보였던 최회장이나 진회장과는 어떤 식으로 악연을 맺게 됐는지,

무엇보다 방의강이 자랑하는 그 엄청난 재산이 어떻게 축적됐는지 등

꽤 궁금했던 사연들을 친절히 설명해준 프리퀄로서의 매력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시리즈라는 게 원래 출간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인 건 사실이지만,

방의강 시리즈의 경우 이 작품부터 먼저 읽어야 나머지 작품들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방의강이 킬러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위화감이었습니다.

돈도 벌고,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직장을 고민하던 방의강이 왜 킬러를 선택했을까?

동네 형의 소개로 킬러 회사에 취직하는데, 이 이상한 취직이 너무 쉽게 이뤄진 건 아닐까?

특전사 출신이라지만 칼을 쓰는 법은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흉내낸 게 전부이고

완력이나 총기에도 익숙하지 않은 방의강의 맹활약은 단지 본능이란 걸로 다 설명되는 걸까?

 

말하자면 평범한 소시민이 킬러로 입문하는 절차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의강이 대단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면 그 역시 비현실적인 설정이겠지만,

어렵게 진화했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쉬운 비약을 통해 킬러가 된 것 같아서

프리퀄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 후루룩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뜻밖의 수확이라 할 정도로 방의강 시리즈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준 시리즈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네 편이 출간된 시리즈를 다 읽고 나니

벌써부터 후속작이 언제쯤 나올지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 전에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전작 왼팔을 읽어볼까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하반기에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무모한 기대도 함께 가져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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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코너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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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살인청부업자 방의강은 은퇴 후 아내와 평온한 삶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평온은 갑작스레 달려온 차에 아내가 받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런 아내를 죽이기 위해 병실에 잠입한 킬러가 있었다.

방의강이 추격에 나선 뒤 아내는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아내의 죽음 뒤에 숨겨진 음모가 있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

방의강은 아내를 살해한 범인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결의로 일어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죽어도 되는 아이로 뒤늦게 알게 된 킬러 방의강 시리즈의 매력에 푹 빠져

시리즈 첫 편인 유령 리스트부터 차례차례 읽고 있는 중입니다.

블라인드 코너는 그 두 번째 작품으로 방의강의 아내가 살해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평상시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고 설렁설렁 대문 밖을 나선 아내가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과속 차량에 치인 뒤 병원에서 사망하자

방의강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아내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방의강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모르던 아내의 사생활이 드러나고, 예기치 않게 여러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은 물론

우연과 우연이 비현실적으로 겹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읽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방의강은 물론 악당들로 하여금

집안에 돌아다니는 날벌레를 죽이듯 너무 쉽고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물론 방의강의 살인은 나름 명분도 있고 정의로운 복수심이 배어있긴 해도

간혹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너무 쉽게 자행됩니다.

악당들의 소시오패스로서의 잔혹함은 더욱 끔찍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는데,

애초 방의강의 아내를 살해한 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목적과 쾌락을 위해 살인을 밥 먹듯 저지르는 대목은 도저히 익숙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자에 따라 재미와 불편함 사이에서 꽤나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최고의 소시오패스는 물론 주인공 방의강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겁도 많고, 소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처가라는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소시오패스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어떻게든 상쇄시키려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그런 노력이 적잖이 성공한 것으로 보였고,

특히 곳곳에 배치된 지독한 블랙유머 역시 작품의 독기를 빼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읽은 최근작 죽어도 되는 아이가 구성이나 스토리 면에서 촘촘하고 잘 설계됐던 반면,

시리즈 첫 작품인 유령 리스트는 어딘가 좀 복잡하기만 할뿐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블라인드 코너는 굳이 평가하자면 딱 중간쯤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마지막 진실을 밝히면서 왜 방의강이 사건에 휘말리게 됐는가?’를 설명하는 지점에서

약간은 납득하기 어려운 억지스런 우연이 강요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부분만 제외하곤 재미도 있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쫄깃함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반전으로 설정된 내용은 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탓에 감흥이 크진 않았는데

그 부분이 좀더 그럴듯하게 설계됐다면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거란 생각입니다.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출간됐고, 이 작품의 후속작인 퍼스트 킬만 못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호응을 얻어서 계속 꾸준히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좀 과도하게 잔혹하고, 밥 먹듯 벌어지는 살인이 아주 약간 불편하긴 해도

주인공 방의강을 비롯 고정출연하는 조연들의 맛깔스런 캐릭터는 물론

한국 장르물 가운데 이만큼 재미와 긴장감을 겸비한 스토리를 찾아보긴 힘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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