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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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소리나무를 두드려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인 '그것'을 불러내는 놀이.

15년 전 이 놀이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실종되면서 놀이에 감춰진 무서운 진실이 드러난다.

놀이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의 얼굴과 자리를 내주고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

전통 가옥촌 도동 마을로 진입하는 국도변 갓길에서 빈 택시가 발견된다.

실종자 수사 전담 형사 차강효는 사라진 운전자 정국수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그와 관련된 인물들 중 이미 실종자가 여럿임을 알게 되고 이상함을 감지한다.

실종자들이 모두 같은 마을 출신의 친구들이라는 실마리를 따라 도동 마을로 찾아간 그는

15년 전에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발상도 독특하고, 거기에서 확장된 공포 서사 역시 특별함과 신선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악마와의 거래를 받아들인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결국 그 거래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 받던 끝에 참혹한 비극을 맞이하게 되고,

애초 악마와의 거래를 이끌었던 주인공이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만

오히려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파국은 시시각각 주인공과 친구들을 막장으로 몰아갑니다.

 

아홉 개의 소리나무를 두드려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인 그것을 불러낸다는 기이한 의식,

그것의 힘을 빌려 친구의 복수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그것이 낸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거나 누구에게라도 놀이에 대해 언급할 경우

얼굴과 영혼을 빼앗긴 채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끔찍한 벌칙,

그리고,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려면 그것을 불러낸 자가 희생해야만 한다는 비극적 설정 등

각종 호러물의 코드들이 뒤범벅된 작품인데,

거기에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이 개입한 미스터리 서사도 함께 전개돼서

마지막까지 긴장감과 흥미진진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야기는 방대하고 등장인물도 꽤 많은데다

자칫 잘못 언급하면 대형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한 작품인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도시괴담이 적절히 믹스된 호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에 읽은 전건우의 소용돌이가 자주 떠오르곤 했는데,

어린 시절 주인공과 친구들이 일으킨 특별했던 사건이 결국엔 큰 비극으로 이어졌고,

멈추지 않은 비극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을 다시 고향에 모이게 만들었으며,

업보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큰 상처를 감내해야만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는데,

무엇보다 놀이자체에 대한 설명이 때론 모호하고 때론 너무 복잡해서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의도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결과적으론 몰입도 저하라는 부작용이 더 커보였습니다.

후반부에 등장한 (‘놀이의 규칙과 비밀을 담은) 한 장의 그림은

꽤 중요한 단서이자 일종의 독자에게 내민 퀴즈같은 흥미로운 장치였지만

몇 번을 되읽어도 그 그림이 연상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못잖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형사 캐릭터도 다소 작위적으로 보여 아쉬웠는데,

하필 그의 주변에도 주인공 친구들처럼 의문의 실종을 당한 사람이 있었고,

그런 탓에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연쇄실종사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물론,

비현실적인 존재에 의한 범행이라는 가설까지 큰 갈등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수상한 걸 보면 영상화 가능성도 꽤 커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이해도 쉽고 몰입도도 높을 거란 생각입니다.

호러물을 읽는 건 좋아해도 보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 취향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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