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뉴욕을 무대로 미래를 기억하는 신비한 능력자 이야기를 다룬 궁극의 아이나 진시황의 불로초를 소재로 한중일 3국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를 그린 불로의 인형처럼 작가는 이번에도 글로벌한 무대 위에 복잡하게 얽힌 추적자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두 전작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귀신나방은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설정인데, 소설 속 현재는 1969년이고, 이야기의 연원은 2차 대전 즈음으로 잡혀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한국인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라서 그야말로 세계적인 마케팅을 염두에 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서평을 쓰기 전에 혹시나 해서 출판사의 소개글을 살펴보니 역시나 이 작품의 주인공이 평생에 걸쳐 추적하는 악당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악당의 정체는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 정체를 언급하지 않곤 줄거리든 서평이든 제대로 쓰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출판사가 노출하지 않은 정보를 제멋대로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라 아주 두루뭉술한 서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여성 컬럼니스트가 사형을 코앞에 둔 사형수의 초대로 인터뷰에 나섭니다. 사형수는 뮤지컬 극장에서 16살 소년에게 다섯 발의 총을 난사한 뒤 체포됐는데 스스로 함구한 탓에 동기도, 피해자와의 관계도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사형을 앞두고 초대한 컬럼니스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차 대전 종전 즈음부터 현재까지 그는 20여년에 걸쳐 추적극을 벌여왔는데, 그 대상은 불사신처럼 오랫동안 죽음을 초월하여 생존해 온 것은 물론 자본과 정치의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헛소리로 들렸지만 사형수의 진술이 소름 끼칠 정도로 팩트에 가깝다는 걸 깨닫자 컬럼니스트는 전대미문의 특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지난 20여 년간 집요하게 악당을 추적한 과정을 그립니다. 물론 그 혼자만이 추적극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오롯이 그만의 미션으로 남게 됐고, 몇 번쯤은 결정적 기회를 잡아 악당을 제거할 수도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현직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악당에 대해 털어놓지 못합니다. 아무도 믿어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고독한 추적극을 감당해야 했고, 마침내 자신의 미션을 달성해냅니다.

 

하지만... ‘악당이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사형수는 20여 년간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한 걸까요? 20여 년에 걸친 추적 끝에 살해한 대상이 왜 16살 소년일까요? 16살 소년은 정말 사형수가 노렸던 악당이 맞을까요? 과연 20여 년의 추적을 마친 사형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까요?

 

사실, ‘귀신나방은 판타지라 하기엔 과학과 의학의 성과가 바탕에 깔려있고, 픽션이라 하기엔 꽤 많은 실존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장르 자체가 모호한 작품입니다. 방대한 인물이 등장하고, 복잡다단한 설계도 위에 무척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배치돼있어서 사이즈 면에서 보면 거의 대하드라마 급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전작들의 경우 그 상상력이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리얼하게 읽힌 반면, 이번 작품은 상상력이 너무 멀리 간 나머지 다소 황당하게 읽혔다는 점입니다. 특히 악당이 미국의 자본과 정치를 장악하는 과정은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이게 말이 돼?” 또는 이렇게 쉬워?”라는 의아함을 자아내곤 했는데, 워낙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이 넘쳐서 페이지는 휙휙 넘어갔지만 어딘가 찜찜한 위화감과 의아함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장용민의 거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상상력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오랜만의 반가운 신작이겠지만 이 작품으로 장용민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신작인데다, 내용 상 꽤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작품 곳곳에서 그 고된 과정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약간은 과할 정도로 뻗어나간 서사가 오히려 아쉬움으로 남았던 작품입니다.

 

악당에 대한 언급 없이 서평을 쓰긴 썼는데, 제가 봐도 참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악당을 이용한 홍보가 괜찮은 마케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감춘 이유를 잘 모르겠고 덕분에 서평 쓰는 독자 입장만 곤혹스러워졌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악당의 정체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언급하는 서평들도 있겠지만, 이렇듯 작품 자체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도 참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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