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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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도농복합시인 안덕에 연쇄 방화 및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남편과의 이혼소송 끝에 검사직마저 내던지고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온 세휘는

아들 수민의 양육권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딘가 음험해 보이는 당숙 장정호가 내민 협박에 가까운 의뢰를 받아들이고 만다.

자신의 측근들이 연이어 실종된 사건에 대해 경찰보다 먼저 알아내서 보고하라는 것.

좌천당한 기자 한병주와 함께 사건의 이면을 쫓던 세휘는 일찌감치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도무지 단서도 증거도 잡을 수 없어 애를 태우기만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페이지를 넘길수록 주인공이 점점 늪으로 빠져간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의 엔딩은 거의 예외 없이 무척 불편하거나 답답한 여운을 남기게 되는데,

그 불편함과 답답함이 작품의 미덕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콘크리트는 독자에 따라 전자일 수도, 후자일 수도 있는 작품인데,

말하자면,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미스터리처럼 시작되지만

뒤로 갈수록 불온한 태풍, 지독한 악취, 도시를 뒤덮은 거미 등 온갖 불편한 코드들과 함께

미스터리 자체가 어둡고 축축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연이은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당숙 장정호의 측근들이자 안덕의 실세들이 실종되면서

무능한 경찰 대신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여변호사가 진실을 찾아나선다는 설정까지는

누가 봐도 과거사로 인한 복수극또는 슈퍼 히로인 미스터리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안덕이라는, 종말을 목전에 둔 듯한 도시를 집요하게 묘사한 문장들 때문에 이 이야기가 세휘가 진범을 찾고 양육권을 지키고 밝은 미래를 약속받는’,

이른바 깔끔하고 해피한 엔딩을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작가가 어떤 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칠까, 역설적으로 더 기대감이 든 게 사실입니다.

 

용의자는 일찌감치 세휘의 레이더에 걸려듭니다.

하지만 단서나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라는 부분에서 세휘는 번번이 좌절하고 맙니다.

그런 그녀가 사소한 위화감에서 출발한 추리 끝에 1차적인 진실을 알아내긴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진짜 진실을 목도하곤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독자들의 호불호를 확 갈라놓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이 부분은 콘크리트라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자 특징이기도 한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자세히 언급할 순 없지만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론 100%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긴 합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라고 호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연 어느 쪽이 더 우세할지는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읽어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국 장르작가의 데뷔라 더 반갑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공을 갖춘 묵직한 문장들이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만한 필력이라면 머잖아 두 번째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가 어떤 장르, 어떤 소재를 선택할지 조심스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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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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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부는 태풍전야, 대나무로 가득한 남해의 외딴섬 호죽도에 서로 알지 못하는 8명의 사람들이 개장을 앞둔 연수원 시설의 모니터 요원으로 초대받는다. 이튿날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고, 태풍으로 고립된 연수원에는 기이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2년차 신참 경찰 한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그 과정에서 40년 전 호죽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밀접히 연관됐음을 알곤 충격에 빠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나오는 작품마다 찾아 읽는 한국 장르물 작가 중에 한 명이 송시우입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달리는 조사관’, ‘아이의 뼈’, ‘검은 개가 온다등 그동안 발표된 장편과 단편집을 모두 읽었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와 배합해왔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작품은 전형적인 본격미스터리, 즉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초반에 기이하게 살해된 희생자가 등장하자마자 시마다 소지의 작품들이 떠올랐는데, 후기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니 송시우는 시마다 소지의 열혈 팬이며, ‘대나무가 우는 섬은 본격 또는 신본격에 대한 열광이 구현된 작품임을 알게 됐습니다. 미지의 인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태풍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섬, 섬 전체를 휘감고 있는 대나무 숲이 발산하는 서늘함, 거기다 잔인함과 애틋함을 곁들인 오싹한 구전 민담까지 가세함으로써 다소 상투적이긴 해도 매력적인 클로즈드 서클이 완성된 것입니다.

 

섬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탐정 역할을 맡은 건 21살의 물리학 전공 대학생 임하랑입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그녀는 오류투성이인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반박하는 한편, 40년 전의 살인사건이 현재 벌어진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눈치 채고 자신만의 특유한 촉과 몇몇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갑니다. 똑똑하고 무례한 캐릭터는 시마다 소지의 대표 캐릭터 미타라이 기요시를 떠올리게 했고, 상상력과 물리학을 이용한 추리는 (다소 거친 감은 있지만) 리얼리티에 충실합니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가고, 사건과 소재와 캐릭터들도 재미있고 긴장감 있게 배치됐지만, 뼈대가 되는 기본 설정에서 위화감을 느낀 탓인지 읽는 내내 약간 불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탐정을 포함한 8명의 인물들은 왜 미지의 인물의 초대에 응해 남해 외딴섬까지 왔는가?” “범인은 왜 그토록 (무지막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공을 들여 살인을 저질렀는가?” , 범인과 탐정과 조연들 모두 첫 출발점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과 결정을 했다는 뜻인데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이에 대한 변호를 하지만 역시 다소 무리한 설정으로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제돼야 고립된 섬에서의 살인사건이란 소재가 빛나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시마다 소지의 일부 작품에서 느꼈던 불만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마지막에 이 거대한 살인극에 여러 사람을 초대한 이유가 밝혀지는데, 그 대목 역시 다분히 작위적으로 읽혔습니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범인은 얼마든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연들이 소모적으로 활용됐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과는 결이 확연히 달라서 반갑기도 했고, 조금은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쉬움도 함께 남은 작품입니다. 그래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성실함과 진정성은 진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래선지 많이 쓰진 못해도 꾸준히 쓰고 싶다.”는 송시우의 바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고, 그런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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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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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출간된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청계산장의 재판’, ‘곤충’, ‘붉은 열대어에 이어 네 번째 만난 작품인데,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방범죄, 연쇄살인, 사적 복수, 화상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기억마저 사라진 유능한 형사,

칼을 든 프로파일러란 별명은 물론 조직 내에서도 외딴 섬 같은 존재인 열혈 프로파일러,

그리고 끊임없이 위화감을 갖게 만드는 정교한 설정 등 여러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경감 이수인은 카피캣이란 별명의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던 중 큰 부상을 입습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어 앞을 못 보는 건 물론 충격으로 인해 기억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서울청 프로파일러 한지수 경사는 이수인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씁니다.

또한, 냉각기를 거쳐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카피캣 체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용의자를 지나치게 압박한 끝에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감찰을 받고 있던 한지수는

과학수사팀이 놓친 단서들을 찾아내 자살한 용의자가 실은 살해됐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카피캣과 연관 있음도 밝혀냅니다.

하지만 이수인의 기억은 여전히 혼란스런 상태이고 경찰 상층부의 압박은 거세지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상태가 좋아진 이수인은 파격적인 방법으로 카피캣을 유인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줄거리 정리 자체가 어려운데

하나는 작가의 설계도가 워낙 복잡한데다 반전 역시 여러 차례 거듭된다는 장점때문이고,

또 하나는, 복잡한 설계도에 비해 다소 모호하고 불친절한 설명이 잦다는 단점때문입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이만한 설계도를 짜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경탄하게 되고,

그 설계도의 디테일을 문장으로 풀어내기 위해 또 얼마나 고생했을지 거듭 놀라게 됩니다.

이런 내용들을 몇 줄의 줄거리로 정리하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다 읽고도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건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 몇 군데 있는데,

문제는 그 대목들이 이 작품의 미덕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지점들이란 점입니다.

사적 복수의 화신으로 보이는 연쇄살인마 카피캣의 목적,

그를 체포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수인과 한지수의 목표,

정치적 야망 때문에 조기 체포에 열을 올리는 경찰 상층부의 실체,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 사건의 진실 및 후속작을 염두에 둔 듯한 엔딩의 의미 등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돼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다들 모호한 상태에서 마무리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작가는 사건과 인물과 관계들에 대해 좀더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가 쾌감을 만끽할 수 있게 배려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임에도 서사의 두께는 600페이지 급 스릴러에 버금가는데,

그만큼 많은 것이 압축됐고,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역시 무모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제는 클리셰가 넘쳐나는 사적 복수 코드를 신선하게 창조해낸 점도,

정교한 설계와 연이은 반전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인물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과 개운치 않은 마무리,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 몇몇 결정적 순간들 때문에 별 0.5개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인은 접할 수 없는 범죄수사 잡지의 편집장이란 작가의 이력을 보곤

이 작품의 생생한 디테일의 원천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물론 이 작품의 아쉬움들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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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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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여름,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이라 불렸던 비극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인물의 삶이 방향을 잃고 흔들린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세 여성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 작품은

애도되지 못한 죽음이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며

삶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그동안 읽은 여러 문학상 수상집에서 한번쯤은 만나봤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렇게 단독 장편소설로 권여선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미스터리 서사가 깔려 있긴 해도 미스터리 작품이 아니라는 건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 게 사실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쯤은 만족, 반쯤은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지척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엉망진창이 됐거나 또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버린

몇몇 사람들의 오랜, 그리고 고통스런 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 범인?’이라는 미스터리가 내내 독자의 궁금증을 상기시키긴 하지만

작가의 방점은 살아남은 자들의 혼란과 방황과 죄책감 또는 무력감에 찍혀 있습니다.

 

딸이 살해된 뒤 엄마는 굳이 딸의 이름을 태명으로 바꾸려 애쓰지만 무위로 돌아갑니다.

언니가 살해된 뒤 동생은 견딜 수 없는 압박감에 언니의 모습으로 성형을 합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갑자기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 관련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용의자였던 또래 고교생은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사건과는 무관하게 비참한 삶을 삽니다.

또 다른 용의자였던 고교생과 결혼한 여자는 시간이 흘러도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며 자기도 모를 소리를 횡설수설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 누구에게도 후련하고 깔끔한 엔딩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상투적인 비극이 부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이 인물들은 언제까지든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겠다는,

결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소설속에서 계속 살아가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어쩌면 다언의 삶이 끝난 후에도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끔직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p190)

 

사적 복수나 무한정 무거운 참회록에 비해 훨씬 더 현실감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억지스러운 엔딩이 아니어서 더 좋기도 했습니다.

다만, 좀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별히 멋을 부린 건 아닌데, 각 인물마다 어떤 감정으로 이입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고,

특히 살해된 자의 동생인 다언의 행동과 감정의 변화는 난해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해소하고 싶어서 후기에 실린 작가의 말을 얼른 펼쳐봤는데,

거기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문장들만 실려 있어서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고민하고 생각할 확실한 여지를 남겼다면 꽤 긴 여운을 만끽했을 작품인데,

결국엔 ‘So what?’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함만 남았고,

다 읽고도 화자 가운데 (시간이 흘러도 다들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은 들어도)

어느 누구의 소설 뒤의 삶도 딱히 궁금해지지 않았습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 될 것 같은 기대를 가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무리 과정이 너무 관념적이거나 현학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작품일수록 다른 독자들의 서평이 무척 궁금해지는데,

조만간 인터넷 서점이나 카페를 통해 레몬에 대한 후기를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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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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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진기의 합리적 의심을 읽었는데,

그 작품이 판사들이 겪는 여러 딜레마 중 하나인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각색한) 미스터리 픽션을 통해 그렸다면,

이 작품은 실제 사건들의 판결 논리에 대한 도진기의 재해석을 담은 논픽션 작품입니다.

 

듀스 김성재의 사망, 이태원 살인사건, 낙지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

일반인들이 많이 들어본 30여개의 실제 사건들의 판결문을 낱낱이 분석하는 것은 물론,

문화와 예술에 있어 법의 잣대라든가 상고법원을 비롯한 판사 조직 내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때 판사였으며 이젠 변호사로서 외부에서 판사 조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도진기가

그만의 비판적인 논리와 시각으로 속 시원하고 통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판결 결과에 대한 설명 또는 비판이라면 도진기 개인의 취향수준에 그쳤겠지만,

이 작품은 판결이 아니라 판결 논리를 분석하고 따지고 비평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볼 수 있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한 건을 제외하곤 모든 사건의 1, 2, 3심 판결문을 다 구해 읽어보았다.”는 말대로,

도진기는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없었던 판결들의 이면을 꼼꼼히 설명합니다.

어떤 이유로 하급심과 상급심이 다른 판결을 내린 건지,

다른 판결의 근거는 무엇이며 과연 절차와 원칙에 충실한 판결이었는지,

그것이 국민의 법 감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는데,

간혹 여기서 소설적인 상상을 더해본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다소 못마땅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마무리된 판결에 대해 자신만의 추론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물론 분량의 제한 때문에 한 사건 당 할애된 페이지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새삼 하나의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판사들이 겪는 여러 가지 딜레마,

, 심신상실(미약), 정당방위, 합리적 의심, 양날의 검과 같은 엄격한 절차등과 함께

일사부재리, 배심원제, 상고법원 문제, 태부족한 판사 수 등

판사 조직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친절하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는 다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판사 조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심정적으로는 유죄라고 생각하지만, 절차와 원칙을 따르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 ‘생활인으로서의 자아와 판사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상황이 제법 자주 등장하는데,

결국 그들 역시 사람이고, 일반인들과 똑같은 딜레마를 겪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100% 명확한 증거와 단서 없이 누군가의 인생을 박살낼 수도 있는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를 수반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면 역시 절차와 원칙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판사 조직 안에도 게으르거나 부정하거나 영달에만 관심 있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목소리가 크거나, 트러블 없이 무리 없이 사건을 처리하거나,

일보다는 인간관계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혜택과 이익을 보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이 작품이 판사 조직 안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켕기는 데가 하나라도 있는 자에게는 서늘한 교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부록처럼 실린 가벼운 글들도 눈에 띄었는데,

특히 최인훈의 광장’, 오츠이치의 ‘GOTH’,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

도진기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설들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고,

자신의 데뷔작 홍보카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를 제안했었다는 고백은

비록 농담이었다고는 해도 도진기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였습니다.

 

논픽션이긴 해도 미스터리처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도진기의 팬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재미와 지식을 함께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변호사로 변신한 이후 오히려 신작 소식이 뜸한 게 무척 아쉬웠는데,

고진 시리즈진구 시리즈든 그의 픽션 소식이 얼른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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