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사냥 스토리콜렉터 108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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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분야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두 명의 천재, 로버트 헌터와 루시엔 폴터. 룸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며 라이벌로서 함께 수학했던 두 사람은 세월이 흐른 뒤에 적이 되어 재회한다. 한 명은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의 강력계 형사로, 또 한 명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연쇄살인범으로. 그러나 헌터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해 3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루시엔은 자신의 오랜 복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잔혹한 살인과 함께 세상으로 탈주한다. 그리고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볼모로 다시 한 번, 자기가 설계한 살인 게임에 헌터를 끌어들이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악의 사냥2022년에 출간된 악의 심장의 후속편으로,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루시엔 폴터가 3년 반 만에 탈옥한 뒤 저지르는 끔찍한 연쇄살인과 그를 쫓는 LAPD 특수강력범죄수사대 로버트 헌터의 고통스런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대학시절부터의 두 사람의 오랜 악연은 악의 사냥에서도 꽤 상세히 소개되고 있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전작인 악의 심장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악의 사냥은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대결, 즉 헌터를 겨냥한 루시엔의 복수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사연을 모르면 아무래도 제 맛을 즐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서를 뒤바꿔 읽어도 괜찮긴 합니다. 그럴 경우 악의 심장은 프리퀄이 되겠죠.)

 

루시엔은 지금까지 픽션에서 접한 그 어떤 연쇄살인마와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역대급 사이코패스입니다.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반 사이코패스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우선 족히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그의 희생자들은 모두 다른 방법으로 살해된 탓에 3년 반 전 루시엔이 우연한 사고로 체포되기까지 그 어느 수사기관도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 가운데 동일범의 소행으로 여긴 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희생자를 고르는 단계부터 범행 실행과정은 물론 범행 후에 느낀 감정들까지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53권의 백과사전은 그가 체포된 뒤 FBI의 필수교재가 될 정도로 그야말로 사이코패스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악마의 경전입니다.

 

나는 학자야.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사이코패스야 그들의 수법, 속임수, 사고방식, 행동... 모든 걸 연구해. (중략) 나는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통제 불가한 내적 충동에 이끌리는 법이 없어. , 내 행동의 모든 게 계획적이라는 뜻이지.” (p268)

 

루시엔에 맞서는 LAPD 특수강력범죄수사대 로버트 헌터는 월반을 거듭한 끝에 16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그가 23살에 쓴 박사학위 논문은 FBI의 필독서가 될 정도로 뛰어난 범죄심리 전문가입니다. FBI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LAPD의 강력계에서 일해 온 그는 특별히 잔혹하고 가학적인 살인사건과 연쇄살인의 수사를 위해 LAPD가 창설한 특수강력범죄수사대의 팀장에 올랐는데, 바로 그 시점에 20여 년 전 대학에서 악연을 맺은 루시엔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반 전 가까스로 그를 체포해 영어의 몸이 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악의 사냥3년 반 만에 탈옥에 성공한 루시엔이 헌터를 상대로 벌이는 게임이자 복수극을 그립니다. 루시엔은 철저한 계획에 의거하여 그가 지금까지 시도한 적 없는 엄청난 살육극을 벌이는 것과 함께 헌터를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만일 루시엔의 목표가 헌터를 죽이는 것이라면 진작 수백 번은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고도의 범죄심리 전문가답게 헌터를 죽이지 않고도 죽이는방법을 택합니다. “영혼을 비운 다음 오로지 고통으로만 그 빈 곳을 다시 채우는, 즉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는방식으로 헌터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내 계획은 네 삶과 항상 함께할 죄책감을 네 안에 불어넣는 거였어. 내면에서부터 너를 집어삼킬 죄책감, 네가 절대 없앨 수 없고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죄책감.” (p468)

 

악의 심장이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잔혹한 연쇄살인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악의 사냥은 고도의 심리전에 어울리는 비교적 느리고 완만한 서사를 통해 으스스한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가끔 뭘 이런 것까지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하나?”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다 읽고 돌이켜보면 실은 그런 디테일들이야말로 루시엔과 헌터의 대결을 짜릿하고 팽팽하게 만드는 기초들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사건 자체는 몇 가지 없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디테일의 힘이라는 생각입니다.

 

후반부에 로버트 헌터 시리즈전체 목록이 소개됩니다. 모두 12편이 출간됐는데, ‘악의 심장6편이고 악의 사냥10편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북로드에서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출간해줬으면 하는 건데, ‘악의 심장악의 사냥이 호응을 얻는다면 조만간 헌터의 맹활약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사족이지만, 두 편 모두 잔인한 묘사가 꽤 심한 편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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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사람들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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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경찰 최고의 인질협상가인 39세의 애비 멀린은 어느 날 아들이 납치됐다며 도와달라는 한 여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30여 년 전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함께 지내다가 대규모 참사에서 자신과 더불어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이든 플레처임을 알곤 깜짝 놀랍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애비는 당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든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아들 네이선 납치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에 심상치 않은 사이비 종교집단이 존재한다는 걸 알곤 더욱 긴장합니다. 얼마 후 애비는 납치범이 이든의 딸이자 SNS 인플루언서인 개브리엘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눈치 챕니다. 일반적인 납치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는 범인 때문에 애비가 궁지에 몰린 무렵,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네이선의 흔적이 발견되어 애비를 큰 충격에 빠뜨립니다.

 

2020년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조이 벤틀리 시리즈’(‘살인자의 사랑법’, ‘살인자의 동영상’)를 읽고 마이크 오머의 팬이 됐지만 2년 넘게 후속작 소식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인질협상가 애비 멀린을 앞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돼서 다소 의외였습니다. 검색해보니 조이 벤틀리 시리즈3편인 ‘Thicker Than Blood’에서 종료됐고, 이후 애비 멀린 시리즈2022년까지 모두 세 편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어쩌면 애비 멀린 시리즈역시 3편에서 종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시리즈의 주인공 조이 벤틀리가 돌직구 스타일의 범죄심리학자라는 캐릭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면 새로운 주인공 애비 멀린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노출될 정도로 유능한 인질협상가이자 골칫덩이 남매 때문에 고달픈 싱글맘이자 30여 년 전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성장하다가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났던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라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애비가 맡은 사건의 배후에 신흥 사이비 종교집단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녀가 어떤 태도로 사건을 대할지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또한 충성도 높은 추종자를 거느렸다는 점에서 사이비 교주와 일면 닮은꼴이라 할 수 있는 SNS 인플루언서의 이야기가 병행되어 더욱 흥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두 우상(사이비교주, SNS 인플루언서)과 그들의 맹종자들(추종자, 팔로어) 사이에 놓인 어둠의 미로라는 출판사 소개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이 벤틀리와 마찬가지로 애비 역시 형사가 아닌데다 인질협상가라는 캐릭터를 부여받은 탓에 그녀의 주된 활약은 을 통해 발휘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애비는 파트너인 뉴욕경찰청 형사 조너선 카버와 함께 형사 못잖은 활약을 펼칩니다. 탐문은 물론 필요할 때는 고글과 글록을 휴대하고 적진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뒤 적절하고 신속한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 인질협상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추리도 잘 하고, 행동도 민첩하고, 협상까지 잘 하는 완벽한 주인공입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년 납치사건이 중심이다 보니 여러 명의 참혹한 희생자가 발생했던 조이 벤틀리 시리즈에 비해 사건성은 다소 약합니다. 또한 30여 년 전 애비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겪었던 과거사도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10대 남매를 키우는 고달픈 싱글맘 사연까지 심심찮게 등장해서 마이크 오머 특유의 잔혹한 스릴러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싱겁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제대로 맛볼 수 없는 인질협상가의 고뇌와 결단과 고도의 심리전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며, 그런 면에서 조이 벤틀리 시리즈와는 사뭇 결이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슈퍼 히로인이 아니면서도 캐릭터의 힘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애비 멀린의 매력은 이 작품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권입니다.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떡밥을 남겨놓은 채 마무리됩니다. 그 떡밥이 애비의 과거 트라우마와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건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인지는 후속작이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벌써부터 출간소식이 기다려지는 건 저만의 기대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조이 벤틀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Thicker Than Blood’도 꼭 출간됐으면 하는 점입니다. 피해자의 피를 마시는 무자비한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를 상대하는 조이의 마지막 활약은 꼭 지켜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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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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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피터 스완슨은 2016년 한국에 소개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하 죽마사’, 원제 The Kind Worth Killing, 2015)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입니다. 13살 때부터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완벽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여주인공 릴리 킨트너의 맹활약(?)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7년 만에 그 후속작인 살려 마땅한 사람들’(원제 The Kind Worth Saving, 2023)이 출간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러 인물이 화자를 맡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작에서 연쇄살인 용의자 릴리 킨트너를 추격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만 형사 헨리 킴볼(이 작품에선 사립탐정)이 메인 화자를 맡았고, 30대 중반이 된 릴리 킨트너는 킴볼을 도와 자신의 능력을 또 한 번 유감없이 발휘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 외에도 10대 시절부터 비밀 친구가 되어 수차례에 걸쳐 완벽한 살인을 저질러온 남녀가 중요한 화자로 등장합니다.

죽마사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연쇄살인마 릴리 킨트너의 통쾌하고 속 시원한 폭주 스토리였다면,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심리스릴러의 면모를 갖춘 작품입니다. 사건 자체보다는 각 인물들의 심리와 동기가 강조되고 있고, 킴볼과 릴리가 상대해야 할 범인이 일찌감치 노출되기 때문에 ?’어떻게?’에 서사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 릴리를 쫓던 형사 킴볼은 이제 고만고만한 사립탐정이 돼있습니다. 소소한 일거리 외에 무기력한 삶을 살던 킴볼은 과거 딱 1년 동안 재직했던 교사 시절의 제자 조앤이 나타나 남편의 불륜을 입증해달라는 의뢰를 하자 당혹감 속에서도 일을 맡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킴볼의 조사는 개운치 못한 상태에서 마무리되고 맙니다. 끝내 의심을 지우지 못한 킴볼은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던 릴리를 찾아가 의견을 나눈 끝에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대목이 여러 곳이라 애매한 줄거리 요약이 되고 말았는데, 킴볼과 릴리의 미묘한 관계 역시 죽마사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더는 자세히 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큰 뼈대는 오래 전부터 잔인하고 교묘하게 살인을 저질러온 두 남녀의 행각을 킴볼과 릴리가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사실 두 남녀의 행각도 그렇고 킴볼과 릴리의 조사 과정 역시 스펙타클하거나 반전이 거듭되는 숨 가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차분한 전개 속에 각 인물들의 심리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작품입니다. ‘죽마사의 속사포 같은 서사를 기대한 독자라면 초반에 다소 처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의 진짜 미덕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차 고조되는 긴장감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실에 다가가는 킴볼과 릴리의 조사,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완벽하게 살해해온 두 남녀의 뒤틀린 심리와 공포, 그리고 킴볼에게 닥치는 거대한 위기와 릴리의 끝내주는 마지막 한 방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완만한 전개 속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죽마사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죽마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랄까요?

 

죽마사이후 피터 스완슨의 팬이 되어 지금까지 한국에 출간된 작품들을 전부 읽었지만 매번 아쉬움을 느껴온 게 사실입니다. 데뷔작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데, ‘살려 마땅한 사람들역시 릴리의 대폭주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인지 살짝 아쉽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애착 캐릭터 중 하나였던 릴리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릴리 킨트너 시리즈가 세 번째 작품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카메오로라도 좋으니 피터 스완슨의 다른 작품에서 한번쯤은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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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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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범죄가 벌어진 현장에서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어린 소녀가 발견된다. 6년 후, ‘이비 코맥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원에 수감돼있는 소녀는 법적으로 성인임을 인정받아 소년원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그때 사이러스 헤이븐이라는 경찰 심리학자가 나타나 이비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진실을 볼 수 있는 소녀의 특별한 능력에 관심을 가진 그의 도움으로 이비는 마침내 소년원을 벗어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한편, 15세 소녀 조디 시핸이 숲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용의자는 곧 체포되지만, 사이러스는 의구심을 품고 조디 시핸의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다. 이비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해 그를 도우려 하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굿 걸 배드 걸은 마이클 로보텀이 새롭게 런칭한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조 올로클린 시리즈역시 임상심리학자가 경찰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주조연의 직업과 캐릭터는 물론 서사 역시 큰 틀에서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큰 차이점이라면 사이러스의 파트너 역할을 맡게 된 정체불명의 소녀 이비 코맥의 존재입니다.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그녀는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난독증에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소년원에서도 위험한 인물로 분류돼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사이러스의 관심을 끈 건 이비가 진실 마법사’, 즉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자신이 참혹한 가족사 약에 취한 형이 부모와 여동생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를 지닌 사이러스는 이름도, 나이도,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비에게서 연민 이상의 공통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한 사이러스는 이비를 소년원에서 빼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정상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려 합니다.

 

사이러스와 이비의 기묘한 동거와 탐색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15세 소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병행됩니다. 지역사람 모두가 사랑스러운 소녀이자 유망한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칭송하던 조디의 잔혹한 죽음은 큰 충격을 몰고 옵니다. 용의자가 금세 체포되긴 하지만 사이러스는 심문 영상을 지켜보던 중 의구심을 품게 되고, 소녀의 가족과 지인에 대한 탐문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이비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자신이 유능한 심리학자지만 진실 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촉이 뛰어난 이비의 거짓말 탐지 능력은 사이러스에게 큰 힘이 돼줍니다.

 

유일하게 중도 포기했던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를 제외하곤 마이클 로보텀의 작품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 스탠드얼론 모두 높은 평점을 주며 재미있게 읽어왔습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런칭이라 기대감이 너무 높았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굿 걸 배드 걸은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량 면에서 살짝 아쉬움이 남은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작품이다 보니 두 주인공의 캐릭터 설명과 관계 설정에 꽤 많은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살인사건은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해결되긴 하지만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비해 다소 단선적인 구성이라 긴장감을 극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물론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이러스와 이비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궁금증과 긴장감을 자아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읽게 만들지만 말입니다.

 

끔찍한 과거사와 트라우마는 물론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통점을 지닌 사이러스와 이비의 콤비 플레이는 이미 3편까지 나와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비의 과거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 몇 가지를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이러스가 조 올로클린의 제자라는 에필로그의 한 줄을 통해 어쩌면 후속작에서 조 올로클린이 특별출연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갖게 만듭니다. 이 두 가지 점 때문에라도 후속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한 가지만 더 바란다면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될 사건들이 조금은 더 세고 독했으면 하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마이클 로보텀다운 스릴러를 만끽하고 싶은 작은 욕심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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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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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째 생일을 맞은 리비는 변호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습니다. 거기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가 자신에게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리비는 오래 전 그 저택에서 세 사람이 동반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합니다. 시신은 주인 부부와 정체불명의 한 남자였는데, 더욱 이상한 점은 저택의 외진 방에서 갓난아기가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영양 상태도 좋고 방금 전까지 보살핌을 받은 듯한 아기의 이름은 서레니티 램’. 리비는 그 아기가 자신임을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지고, 그때부터 대저택의 비밀에 한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2022년에 출간된 엿보는 마을’,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리사 주얼의 작품입니다. 고백하자면, 요 몇 년 동안 도메스틱 스릴러 또는 심리 스릴러에 살짝 질린 탓에 리사 주얼의 신작 소식을 듣고도 이번엔 패스라고 다짐했지만, 북스피어에서 출간했다는 걸 알곤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삼송 김사장 님의 야심찬(?) ‘이판사판 시리즈라면 기존 작품과는 조금은 색다른 느낌일 거란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런던의 첼시에 자리 잡은 대저택에서는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이 불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려받은 부유한 유산을 지닌 남편과 사교계의 명사로 불리던 아내, 그리고 그들의 10대 자녀들은 어느 날 저택을 찾아온 한 여자와 그녀가 끌어들인 부부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친 가스라이팅으로 파멸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이 저택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로부터 채 1년도 되기 전에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맙니다. 경찰은 이 저택에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네 명의 10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에 놀라지만 결국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현재, 당시 저택에서 발견됐던 아기리비에게 의문의 상속 편지가 날아든 것입니다.

 

가족주의보는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이자 당시 사라진 네 명의 10대 소년 소녀와 이제 25살이 된 아기리비가 이끌어가는 극적인 서스펜스 작품입니다. 20여 년 전의 충격적인 가스라이팅의 비극이 한 축이고, 이제는 중년에 이른 당시 10대들과 어느 날 갑자기 대저택의 상속인이 된 리비의 진실 찾기가 또 다른 한 축입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참극을 겪었지만 진실의 일부밖에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살던 당시 10대들은 리비가 25살이 된 현재에 와서야 비로소 과거의 참극의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리비를 포함하여 여러 명의 화자가 번갈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500여 페이지의 분량 내내 빠른 템포와 높은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복잡하게 꼬였지만 한눈에 확 들어오는 비극적인 인간관계와 그 과정에서 태어난 아기리비의 사연은 마지막 반전에 이를 때까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오히려 가스라이팅은 부차적인 소재일 뿐 네 명의 10대 소년 소녀와 리비에게 닥친 비극적인 서사가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읽은 리사 주얼의 두 작품이 전형적인 도메스틱+심리 스릴러였다면 가족주의보는 다소 막장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여러 가지 장르가 복합된 좀더 고급스러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사족으로, 이 작품의 가스라이팅 설정에 대해 비현실적이다.”라고 비판하는 서평들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도메스틱+심리 스릴러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지만 리사 주얼의 작품이라면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는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느꼈지만 가족주의보는 여러 면에서 리사 주얼이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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