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수는 나의 것 - 마이크 해머 시리즈 3 ㅣ 밀리언셀러 클럽 32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탐정 마이크 해머와 함께 호텔방에 묵었던 친구가 밤사이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문제는 해머는 만취하여 아무 것도 기억 못한다는 점, 또 사용된 총기가 하필 해머의 것이란 점입니다. 평소 해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검사는 그를 용의선상에 올린 것은 물론 탐정 면허까지 취소시키지만 최종적으론 자살로 결론짓습니다. 해머는 친구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니라고 확신하며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하는데, 친구의 행적과 근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근 새롭게 떠오른 관광지이자 불법 도박과 매춘이 은밀히 이뤄지는 구역, 그리고 한 파티에서 친구와 동행했던 모델과 그녀가 속한 에이전시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사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사이, 해머에 대한 살해 시도가 연이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예기치 못한 시체들이 발견되면서 해머는 오히려 용의자로 쫓기는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복수는 나의 것’(원제 ‘Vengeance Is Mine’)은 한국에 출간된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끝으로 20년 가까이 후속작 소식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남은 시리즈를 만나긴 어려울 것 같지만, 희대의 폭주탐정 마이크 해머의 이야기를 세 편이나마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마이크 해머 시리즈’는 1947~1996년에 걸쳐 모두 13편이 출간됐습니다.)
“난 살인자들을 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살인자를 쏘아 그 피가 바닥에 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살인을 하고도 빠져나가는 나쁜 놈들을 죽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p263)
이 시리즈의 첫 편 제목인 ‘내가 심판한다’(원제 ‘I, The Jury’)는 탐정 마이크 해머의 캐릭터를 한눈에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소신과 함께 “살인자에겐 재판 따위 필요 없고 내가 직접 응징하고 처단한다.”는 행동원칙을 가진 해머는 매번 45구경 권총을 거침없이 쏘아대며 폭주탐정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경찰과의 트러블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라도 그가 삐끗하기만을 기다리는 검찰과의 신경전도 해머의 폭주를 전혀 막지 못합니다.
그런 해머가 이번에는 ‘복수는 나의 것’이란 제목대로 앞선 두 편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에너지를 장착합니다. 피살자가 5년 만에 재회한 친구란 점, 살인용의자로 지목당해 탐정 면허까지 빼앗긴 점, 수사 도중 연이어 피습을 당한 점, 그리고 사건관련자들이 줄줄이 살해되는 점 등 해머에게 복수와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재료들은 그야말로 넘쳐날 정도로 많습니다.
약간의 우연과 행운, 생각지 못했던 정보들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긴 했지만 해머의 추리 역시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합니다. 몇 차례의 반전 끝에 진범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해머는 오해와 섣부른 판단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작가는 해머가 단지 ‘거침없이 총만 쏴대는 무력꾼’이 아니라 나름의 혜안과 추리력을 겸비한 명탐정임을 여러 차례 입증해보입니다.
해머에게는 두 명의 중요한 조연이 있는데, 하나는 절친이자 뉴욕경찰 강력반 반장인 패트릭 체임버스(일명 팻)이고, 또 하나는 밀당의 로맨스를 주고받는 비서 벨다 스탈링입니다. 뛰어난 능력자인 해머를 경찰에 영입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다가 거절만 당해온 팻은 매번 해머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잘 해야 본전도 못 찾는 캐릭터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직을 걸고 해머를 돕는 강수를 두기도 합니다. 탐정면허까지 가진 매력적인 비서 벨다 역시 그동안 다소 애매한 수준에 머물던 해머와의 밀당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가 하면, 모처럼 사무실을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전력을 다해 해머의 수사를 도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만, 앞선 두 편과 마찬가지로 해머의 수사는 간혹 뜬금없는 비약과 개연성 부족한 급진전 때문에 몇몇 대목에서 위화감을 자아내곤 합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설계해놓은 경로대로 인물과 사건이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복수는 나의 것’은 전작들에 비해 그런 경향이 좀더 노골적이어서 초반부터 좀 헤맨 게 사실입니다. 주인공의 매력과는 무관하게 미스터리 서사 자체가 살짝 허술해 보인 건 가장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1950년에 출간된 작품이라 과학수사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이 오로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싸워야하는 해머의 처지가 안쓰러워 보이곤 하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해머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더 빛났는지도 모릅니다. 이후 해머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어떻게 성장해나갔는지 알 길은 요원하지만, 그래도 ‘하드보일드의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는 ‘마이크 해머 시리즈’가 언젠가는 한국에서 재조명받을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