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늑대 스토리콜렉터 16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 11팀의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연이어 터진 미스터리한 사건들 때문에 곤혹스런 지경에 빠집니다. 성폭행과 학대의 흔적을 지닌 채 익사체로 발견된 소녀 사건은 신원확인조차 안 돼 막다른 벽에 부딪혔고, 유명 방송인 한나 헤르츠만이 지독하게 폭행당한 뒤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사건 역시 단서 하나 잡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2년 전 정직 당했던 악명 높은 동료 프랑크 벤케가 갑자기 지역범죄수사국 내사팀이 되어 나타나선 복수를 다짐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던 세 개의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하고, 피아는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끔찍한 아동 성범죄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어린 소년, 소녀가 피해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학대와 성범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사악한 늑대는 이른바 아동 포르노 마피아의 끔찍한 만행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 두 번째 읽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겁고 불편한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선 시리즈들이 늘 그랬듯 굉장히 많은 등장인물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여러 사건이 초반부터 독자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특히 사악한 늑대는 세 개의 사건이 하나 같이 복잡하게 설정돼있어서 더 어지러웠는데, 누구나 막판에 이 사건들이 한 방향으로 수렴될 거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중반까지만 해도 과연 어떤 식으로 접점을 이룰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제각각 흘러가기만 합니다.

 

익사체로 발견된 소녀 사건이 3주가 되도록 성과가 없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유명 방송인 한나 헤르츠만의 납치-폭행 사건에 투입됩니다. 유력한 용의자를 두 명이나 포착했지만 행방이 묘연하거나 혐의점을 찾지 못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합니다.

이번 사건은 정말이지 꼬이고 꼬여서 풀릴 줄 몰랐다.”(p323)는 피아의 푸념처럼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사건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합니다. 그만큼 난감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 당연히 흥미진진하고 긴장감이 넘쳐야 하는데, 실은 이 작품이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3/4지점쯤부터 폭발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면 꽤나 야박한 점수를 주고도 남았을 만큼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산만하고 느슨하고 지루하게 읽힙니다. 뭐랄까... 충격적인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위해 과도할 정도로 기초공사를 탄탄하게 한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세 사건의 접점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그 접점이 다름 아닌 독일과 유럽의 권력층과 부유층으로 구성된 아동 포르노 마피아라는 게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 건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비롯하여 중요한 조연들에게 피해자 또래의 딸이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 모두 진상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딸들도 늑대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겁에 질리는 모습들입니다. 또 사방팔방에 인맥과 조직을 갖춘 아동 포르노 마피아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가차 없이 파멸시키는 대목이나 어렸을 적 학대를 당했지만 성장하면서 더 끔찍한 가해자가 돼버린 인물, 그리고 늑대들에게 삶과 인격이 완전히 파괴당한 피해자들의 사연 등은 무거움이나 불편함 이상의 착잡한 감정을 독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습니다.

 

아동 포르노 마피아 이야기만큼 독자의 눈길을 끈 건 피아와 보덴슈타인에게 복수를 선언한 예전 동료 프랑크 벤케의 과거사입니다. (사실 아동 포르노 마피아와 벤케의 과거사를 하나로 엮은 건 살짝 무리수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애초 전직 군인 출신으로 유능한 형사였던 벤케를 개망나니에 악의로 가득 찬 인물로 만든 10여 년 전의 사건은 그 자체로 무척 흥미진진한데, 특히 그 사건이 아동 포르노 마피아 사건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덕분에 피아와 보덴슈타인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건 물론 그들의 상관인 니콜라 엥겔 수사과장의 과거까지 폭로된다는 설정은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고조시키고도 남을 만큼 흥미롭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분량이 늘어나더니 사악한 늑대에선 기어이 600페이지를 찍고 말았습니다. 중반까지의 산만하고 느슨한 전개만 아니었다면 아동 성범죄라는, 불편하지만 몰입할 수밖에 없는 묵직한 주제가 좀더 독자의 공감을 살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는데,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넬레 노이하우스로서도 다소 과하더라도 탄탄한 기초공사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저 막연하게나마 추정할 뿐입니다.

사악한 늑대는 완결되지 않은 거대한 두 개의 떡밥을 남긴 채 마무리됩니다. 비록 읽은 지 7년이 지나긴 했지만 다음 작품인 산 자와 죽은 자는 별개의 사건을 다룬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남겨진 두 개의 떡밥이 어떤 식으로 해소될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