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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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려서부터 여러 번 타임 루프를 경험한 히사타로는 신년회 날인 12, 또다시 타임 루프를 겪던 중 충격적인 사건을 접합니다. 같은 날이 아홉 번 반복된 후에야 다음 날로 넘어가는데, 두 번째 12일에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랫동안 반목하던 일가들이 신년회에서 유산 분배를 놓고 격돌하는 와중에 할아버지가 살해된 탓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문제는 12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어디선가 인과율에 오류가 생겼고, 그로 인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히사타로는 나머지 일곱 번의 12일에서 범인 찾기와 동시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분투하지만, 매번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속목격해야만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홉 번째 12, 모든 정황을 뒤집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히사타로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일곱 번 죽은 남자“20년 동안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던 작품으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대표작입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타임 트립과는 조금은 다른 개념인 타임 루프(같은 시간이 반복되는)를 반복살인이라는 미스터리와 조합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양한 시간관련 이야기를 봐온 탓인지 타임 루프라는 소재 자체가 크게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인물이 계속 살해당한다!”라는 설정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첫 페이지부터 홀딱 빠져들기 시작해 할아버지가 살해된 두 번째 12부터는 거의 속독 수준으로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한달음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타임 루프 와중의 살인 미스터리 외에도 불행한 과거사가 갈라놓은 부녀간-자매간의 반목, 그로 인해 파생된 유산 상속전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비밀, 그리고 탐욕으로 뒤범벅된 사촌 간의 치정 등 이야기를 다채롭게 끌고 가는 설정들이 많아서 비교적 간결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호기심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백미는 타임 루프이고, 그 핵심에는 일곱 번의 12일과 일곱 번의 살인, 그리고 정체불명의 범인이 있습니다. 작가는 반복되는 12일에 벌어질 상황에 대해 독자에게 미리 힌트를 주면서도 결국에는 늘 뒤통수를 치는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뒤통수치기는 마지막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 “20년 동안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던 작품이란 평이 과장이 아님을 진심으로 깨닫게 만들 정도로 얼얼하고 충격적입니다.

 

모든 진실이 폭로되는 후반부에서 설명이 지나치게 많았고 그 때문에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이라는 인간의 대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직설적 묘사, 지독한 풍자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통속적인 콩가루 집안설정, 그리고 적절한 비율로 배합된 타임 루프와 살인 미스터리 등 장점이 훨씬 더 도드라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다른 작품들이 한국에 소개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무조건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대표작보다 좀 딸릴지는 몰라도 일곱 번 죽은 남자를 써낸 작가의 작품이라면 충분히 신뢰해도 괜찮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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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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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여고생 아키가 폭주족의 오토바이에 치어 냉기 가득한 도로변에 참혹하게 쓰러집니다. 그리고 얼마 후... 최악의 악동들이 우글거리는 호간고등학교 3학년 D반에서 졸업식 예행연습이 열리고, 40대 중반의 담임 곤도 아야코가 평소와는 다른 바지정장 차림으로 교실에 들어섭니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학생들에게 만만한 장난감 취급을 받던 아야코였지만 그날 그녀가 교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날이 잔뜩 선 사냥칼이었습니다. 잠시 후 첫 희생자가 나오고, 아야코는 나머지 학생들을 인질로 24시간 농성에 들어갑니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아야코의 빈틈없는 계획에 속수무책인 사이 희생자는 늘어만 가고, 아야코의 지시에 따라 시신을 창밖으로 내던지는 학생들의 얼굴은 끔찍한 공포 그 자체로 물들어있습니다.

 

이 작품이 2001년 한국에 출간된 적 있다는 번역가의 후기를 읽고 그 당시에 충분히 화제작이 됐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사적 복수라는 테마 외에도 학교를 무대로 한 거의 몰살에 가까운 주인공의 행위가 극단적인 상황 설정과 함께 충격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 복수라는 테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같은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설정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아야코의 행위는 복수를 넘어 판결의 차원에 이르고 있어서 가치관이 다른 독자라면 초반 50여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잔혹함에 관한 한 영화 배틀 로얄이 무색한 정도라고 할까요?

 

단선적인 구성 같지만, 읽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없이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경찰에게 완벽하게 포위된 교실 안에서 24시간 동안 학생들을 죽이는 것외에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이후에 전개되는 아야코의 계획은 경찰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예측 불가능하게 펼쳐집니다. 심리전을 통해 경찰과 언론, 학부모를 서로 적대적인 상태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언뜻 납득이 안 되는 요구조건을 내걸며 경찰의 진압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중간중간 처단이라는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고 수행합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야코의 단죄가 통쾌하게 느껴졌고, 그것이야말로 국가나 사회가 외면해온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을 놓고 리얼리티를 논하는 것은 제겐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평범한 40대 여교사가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않고 칼을 휘둘러 경동맥을 잘라내고, 특등사수 같은 사격술로 정확하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됐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픽션이 공감될 정도로 황폐해진 교육 현장과 그보다 더 썩어 빠진 사회에 대해 논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잔혹함과 피비린내 때문에, 또는 너무 직설적인 스토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곤도 아야코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의미 있는 사회파 스릴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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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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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경제 시대, 터무니없는 가격에 일본으로 팔려온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 하지만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그림을 소유했던 기업이 도산하면서 현재는 비슷한 신세의 그림들과 함께 임대 창고에 처박힌 신세입니다. 무능하고 철없는 부잣집 장남 소스케와 빚더미에 올라앉은 긴자 호스티스 출신 아카네는 주식 사기로 모든 것을 잃은 뒤 같은 처지의 시로타와 조우하는데, 그를 통해 임대 창고에 보관 중인 2,000억 엔 가치의 명화를 훔쳐낼 계획에 가담하게 됩니다. 물론 그중엔 '가셰 박사의 초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엔 두 사람이 전혀 예상 못한 비밀과 거짓말이 잔뜩 숨겨져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거듭된 반전을 일으킵니다.

 

책 소개글만 보고도 일본 소설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새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14회 일본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모치즈키 료코가 1959년생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술품 사기는 사실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신인상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준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술품 거래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버블시대 일본 기업들의 돈 잔치에 대한 상세한 묘사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범인 찾기가 아닌 범죄의 재구성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여느 미스터리 못지않게 긴장감과 속도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버블시대에 대한 조롱과 얇은 귀를 가진 허영덩어리 소시민들에 대한 비꼼 등 고급 풍자물의 느낌도 지니고 있어서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주인공 캐릭터는 공감이 될 정도로 리얼했고, 그들의 배후인 범인의 계획은 너무 완벽하게 짜인 나머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다만, 다소 독자들의 이해력을 걱정(?)한 탓인지,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직접 설명해주려는 경향이 곳곳에서 보였고, 그러다보니 한두 곳 정도는 동어반복적인 설명 때문에 건너뛴 곳도 있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구조를 잘 갖추고 있지만, 일정 부분은 서술트릭을 차용하고 있어서 각색 과정에서 애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미술품 사기라는 새롭지 않은 소재임에도 사건과 캐릭터를 잘 설정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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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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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이후 히메카와 레이코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 사이 여러 권의 후속작이 나왔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야 2편을 읽게 됐네요.

스트로베리~’에서 처음 만난 히메카와 레이코의 첫 인상이 워낙 강한데다

사건이나 해결 과정이 독특해서 혼다 테쓰야의 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히메카와 레이코는 스트로베리~’와는 색깔이 완전히 다른,

좀더 묵직하고 진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 ● ●

 

버려진 차 안에서 잘린 손목이 발견되면서 시신 없는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됩니다.

직감 역시 중요한 수사방식 중 하나라고 여기는 히메카와 레이코와

증거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쿠사카 마모루가 경쟁하듯 수사를 펼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피살자 및 주변 참고인들의 과거가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복잡한 사연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

당연하다고 파악됐던 사실들이 실은 정반대의 진실을 갖고 있다는 점 등

수사가 진행될수록 히메카와와 쿠사카 앞에는 미궁만이 쌓여갈 뿐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진실에 도달하긴 하지만,

그것은 가슴 아픈 가족사와 불행했던 한 남자의 삶이 빚어낸 안타까운 사연들이었고,

범인을 찾아내고도 기뻐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마음 한쪽에 무거운 추를 매단 듯 씁쓸한 얼굴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런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 ● ●

 

스트로베리~’가 잔혹함과 독특함으로 기억되었다면

소울케이지는 묵직함과 진정성으로 기억될 작품입니다.

피로 범벅이 된 연쇄살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비상한 두뇌로 무장한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사 기법 역시 집요한 탐문 외에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던 두 라이벌 형사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기교나 얄팍한 꾀를 쓰기보다는 각자의 소신과 수사법을 동원한 덕분에

그들은 사건의 이면에 놓여있던 수많은 과거의 진실들과 만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이 사건 해결을 앞당긴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스트로베리~’에서 만난 히메카와가 어딘가 꾸며진 초보 여형사의 느낌을 주었다면,

소울케이지의 히메카와는 어느새 제대로 된 팀장으로 훌쩍 성장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혼다 테쓰야가 설정한 불행한 한 남자의 삶과 그에 얽힌 여러 가족의 비극은

복잡한 외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그동안 궁금하게 남아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채워지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너를 지켜주겠다입니다.

소울케이지역시 캐릭터는 물론 스토리 전체가 이 한마디를 테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가족일 때는 그 한마디의 진정성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워집니다.

 

스트로베리~’의 잔혹함과 독특함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묵직한 뒤끝과 금세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여운 덕분에 기대 이상의 독후감을 얻게 되었고,

1-2년 쯤 후에는 다시 한 번 소울케이지를 책장에서 꺼내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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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요시키 형사 시리즈 2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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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걸려온 전처 미치코의 전화 때문에 마음이 산란했던 요시키는 다음날, 그녀가 탔던 열차 유즈루에서 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랍니다. 다행히 미치코가 화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미치코의 좌석에서 참혹한 사체가 발견됐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행방을 감춰버린 미치코가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점입니다. 특히 범행현장에 미치코가 좋아했던 학을 본떠 만든 공예품이 놓여있던 점은 요시키를 깊은 의문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혼 후 미치코에게 닥친 불행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요시키는 그녀의 혐의를 벗겨주겠다는 생각에 연휴를 이용하여 수사를 펼치기로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체가 발견되면서 진범 찾기와 미치코 찾기를 병행해야 하는 요시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요시키 시리즈첫 편인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을 마치자마자 시리즈 3편인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을 읽었습니다. ‘요시키 시리즈에 흥미가 끌려 두 편을 연달아 읽었지만 두 작품 모두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얻진 못했습니다. 짧게 요약하면, 형사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덕분에 주인공 요시키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으로 읽혔지만 그의 수사와 사건해결 방식은 무리수가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전처 미치코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전력을 다 하는 요시키의 진심어린 분투입니다. 유능한 형사지만 그 이면에 불행한 가정사를 품고 있는 요시키가 살인용의자로 몰린 전처 미치코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책임감은 한없이 무겁고 안쓰러워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의 진심으로 진범 찾기에 나서는 요시키의 각오는 클라이맥스와 엔딩에서 맛볼 카타르시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켜줍니다.

하지만 이처럼 매력적인 요시키의 캐릭터와 달리 이야기의 뼈대인 미스터리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새삼 같은 말을 반복할 것도 없이 앞서 읽은 침대특급~’의 서평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범행 과정은 저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작위적입니다. 적잖은 발품과 탐문에도 불구하고 결국 요시키의 비약적인 추리로 마무리된 점 역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트릭은 비현실적, 사건해결은 지나치게 초인적이라고 할까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이번 작품에서 요시키가 밝혀낸 트릭은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주인공 미타라이 기요시가 이미 한번 밝혀낸 적이 있는 수법입니다. 어느 작품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같은 작가가 동일한 트릭을 복사해놓은 것을 읽는 건 꽤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워낙 뛰어난 트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하겠지만, 도무지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억지 설정이라 실망감이 더 배가된 것 같습니다.

 

혹평을 하긴 했지만 북의 유즈루~’가 나름 미덕을 갖춘 작품인 건 인정합니다. 진정한 형사이자 멋진 남자 요시키의 고생담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고, 머리 좋은 작가만이 꾸며낼 수 있는 미스터리 설정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다만, 원 맨 플레이에 가까운 비약적인 수사과정과 감탄보다는 의문과 황당함을 자아내는 트릭들이 이야기의 장점을 심하게 손상시켰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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