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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버블경제 시대, 터무니없는 가격에 일본으로 팔려온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 하지만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그림을 소유했던 기업이 도산하면서 현재는 비슷한 신세의 그림들과 함께 임대 창고에 처박힌 신세입니다. 무능하고 철없는 부잣집 장남 소스케와 빚더미에 올라앉은 긴자 호스티스 출신 아카네는 주식 사기로 모든 것을 잃은 뒤 같은 처지의 시로타와 조우하는데, 그를 통해 임대 창고에 보관 중인 2,000억 엔 가치의 명화를 훔쳐낼 계획에 가담하게 됩니다. 물론 그중엔 '가셰 박사의 초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엔 두 사람이 전혀 예상 못한 ‘비밀과 거짓말’이 잔뜩 숨겨져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거듭된 반전을 일으킵니다.
책 소개글만 보고도 일본 소설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새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제14회 일본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모치즈키 료코가 1959년생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술품 사기는 사실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신인상’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준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술품 거래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버블시대 일본 기업들의 ‘돈 잔치’에 대한 상세한 묘사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범인 찾기’가 아닌 ‘범죄의 재구성’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여느 미스터리 못지않게 긴장감과 속도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버블시대에 대한 조롱과 얇은 귀를 가진 허영덩어리 소시민들에 대한 비꼼 등 고급 풍자물의 느낌도 지니고 있어서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주인공 캐릭터는 공감이 될 정도로 리얼했고, 그들의 배후인 ‘범인’의 계획은 너무 완벽하게 짜인 나머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다만, 다소 독자들의 이해력을 걱정(?)한 탓인지,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직접 설명해주려는 경향이 곳곳에서 보였고, 그러다보니 한두 곳 정도는 동어반복적인 설명 때문에 건너뛴 곳도 있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구조를 잘 갖추고 있지만, 일정 부분은 ‘서술트릭’을 차용하고 있어서 각색 과정에서 애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미술품 사기라는 새롭지 않은 소재임에도 사건과 캐릭터를 잘 설정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