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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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제3중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한 1권과 학생들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교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2권에 이어 엿새 동안 벌어진 교내 재판의 기록과 그를 통해 드러난 진실을 담은 마지막 3권입니다.

 

가시와기 다쿠야와 아사이 마쓰코의 죽음, 모리우치 선생의 피습, 오이데 집의 화재 등 조토 제3중학교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의 모든 관련자들이 증인으로 등장하여 이미 밝혀진 사실 또는 새롭게 등장한 단서들에 대해 진술합니다.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은 실제 법정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하게 전개되고, 심지어 상대방이 전혀 예상 못한 증인을 채택함으로써 날선 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혹독한 시간들이었지만 조금씩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결국 마지막 날에 이르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는 증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앞서 1~2권을 읽은 독자라면 대부분(또는 적잖이) 교내 재판을 통해 드러날 진실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은 상태에서 3권을 시작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반전이 어울리는 내용도 아니고, 자살이냐 타살이냐,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냐, 이런 사소한호기심과 궁금증을 미끼삼아 3권의 내용이 전개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을 하면서 책을 읽은 탓인지, 본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에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어. 모두 상처투성이야. 그래도, 그냥 내버려둘 순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다들 노력하는 거야. 올바른 일을 하고 싶으니까.”

 

1~3권 전체의 테마이자 마지막 3권의 의미를 짧고 명료하게 정리한 문장입니다. 실제로 교내 재판 팀 대부분은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크고 작은 상처를 얻게 됩니다. 차라리 그들이 찾아낸 진실이 무엇’, 자살 또는 타살? 범인은 누구?’ 같은 팩트뿐이었다면 덜 상처받을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 앞에 나타난 진실은 ?’였습니다. 그는 왜 그랬던 걸까? 그녀는 왜 그랬던 걸까? 그들은 왜 그랬던 걸까? 그 이유들은 하나같이 아프고, 절실하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 방관했던 자, 모른 척했던 자들이 그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 안타까워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은 미리부터 독자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고, 설정 역시 독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습니다. 15살의 중3 학생들의 노력과 성과라고 보기엔 너무 뛰어나거나 비상해 보인 나머지 사실감이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으며, 특히 3권의 경우 느리고 완만한 속기록의 느낌이 강해서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엔딩은 개운치도 깔끔하지도 않고, 언뜻 납득이 가지 않거나 조금은 억지스럽게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1~3권의 서평이 조금씩 갈린 것은 아마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미 여사가 추구한 캐릭터의 진정성덕분에 그 모든 아쉬움들이 충분히 커버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주연과 조연, 남자와 여자, 학생과 어른, 선인과 악인, 그리고 이 이분법의 가운데에 위치한 모든 인물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일관되고 충실하게 해낸 덕분에 적잖은 분량임에도 멈추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폭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스케일 큰 사건보다는 작아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취향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독자들과는 의견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1주일 동안 푹 빠져들었던 솔로몬의 위증은 제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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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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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25, 학교 후문에서 2학년 생 가시와기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이듬해 초여름까지 조토 제3중학교 주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한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후지노 료코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경찰과 학교가 외면하고 덮어두었던 사건의 진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파헤치기 위해 교내 재판을 준비하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익명의 고발장에 의해 가시와기 살인범으로 지목받은 오이데 슌지를 피고인으로 놓고 후지노 료코, 노다 겐이치 등 조토 제3중학교 학생들이 판사, 변호사, 검사, 배심원 등의 역할을 맡아 여름방학 동안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변호사와 검사로 나뉜 학생들은 오이데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의 탐문은 물론 철저한 자료조사를 위해 거의 형사를 방불케 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그 과정들은 결코 순탄치 않을뿐더러 진작 예상했으나 막상 부딪혀보니 훨씬 더 공고하게 자신들을 가로막는 장벽 때문에 몇 번의 크고 작은 고비를 겪게 됩니다. 임시교장과 대부분의 교사들, 심지어 동료 학생들조차 비협조적이거나 방해꾼 노릇을 했고, 중요한 진술을 기대했던 인물들은 변호사든 검사든 어느 쪽에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한 노력 덕분에 나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경찰이나 교사, 학부모들이 깜짝 놀랄만한 단서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관련 인물 중 일부가 방화, 상해 등에 휘말리면서 가시와기의 죽음에서 출발한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지난 1권의 서평에 달린 댓글 가운데 “1권과 2,3권의 서평이 극과 극이라는 내용이 있어서 내심 걱정도 됐고, ‘무슨 이야기로 남은 두 권의 분량을 채울 것인가?’라고 우려도 했었지만, 2권까지 읽은 현재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기우였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 서평을 마치는 대로 마지막 3법정을 큰 기대와 함께 읽기 시작할 생각입니다.

 

사건을 다룬 1권과 법정을 다룰 3권 사이에서 과연 결의라는 소제목을 지닌 2권이 무슨 내용으로 채워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과 가지 치듯 발생하는 연관 사건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같은 말을 반복하지도 않고 지루하게 늘어뜨리지도 않으면서 알차게 채워놓았습니다. 동시에 마지막에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묘한 위화감을 곳곳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본격 법정물이 될 3권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여놓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제일 관심을 끈 것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 간의 다양한 인간관계들입니다. 가시와기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피고인과 변호사, 검사, 판사, 배심원으로 나뉜 학생들은 각기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가치관과 성격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됩니다. 또한 교내 재판을 그저 학생들의 치기어린 장난쯤으로만 여겼던 학부모, 교사, 경찰 역시 어느 시점인가부터 각기 다른 심정과 목적으로 주시합니다.

진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캐릭터 수만큼 다양합니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일관되게 선하거나 일관되게 악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됐다가 피해자가 됐다가 또는 방관자로 머물기도 합니다. 누구나 진실을 원하지만 때에 따라 진실을 묻어두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가시와기의 죽음의 원인이 밝혀진다고 해도 교내 재판을 진행한 학생들이 웃을일은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독자 입장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엔딩이 되어줄지 오리무중이 됩니다. 작가가 이런 서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독자들은 혼란스럽고 답답한 책읽기만 강요받게 되지만, 미미 여사는 독자로 하여금 모든 등장인물들과 골고루 교류할 수 있도록 꼼꼼히 안배했고, 그 결과 그저 재미있는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또 작가가 정해준 주인공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료코가 되어, 어떤 때는 오이데가 되어, 또 어떤 때는 교사나 형사가 되어 제 나름만의 진실 찾기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조토 제3중학교에서 벌어질 엿새간의 재판이 어떤 파란을 겪게 될지, 아직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지, 몇몇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감춰진 비밀은 어떤 형태로 공개될지,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질 진실이 료코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길지 이런저런 궁금함을 떠올리면 남은 3법정의 분량이 좀 모자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1권을 마친 후 무슨 이야기로 남은 두 권의 분량을 채울 것인가?’라고 걱정했던 일이 새삼 민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족으로, 굳이 아쉬운 점을 두 가지만 꼽자면 우선 2권부터 새로 등장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고, 그들이 료코나 겐이치와 함께 주연급으로 활약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내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캐릭터가 필요한 점은 이해가 되지만, 몇몇 캐릭터는 전형적인 슈퍼맨’, ‘캔디걸등의 작위적인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좀더 사소한 점이지만, 15세의 중3이라는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문득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탐문이나 자료조사 등 교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말하는 수준이나 사고방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웬만큼 철든 성인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무수히 발견됩니다. 특히, 상대방의 속내를 읽어내거나, 두세 수를 내다보는 혜안을 과시할 때면 내가 중3보다도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딱히 아쉬움이라기보다는 그저 읽는 동안 느꼈던 묘한 위화감에 대한 호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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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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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에 제대로입문하게 된 계기는 미미 여사의 모방범이었습니다. 두툼한 분량의, 그것도 세 권으로 구성된 솔로몬의 위증을 앞에 두고 보니 오래 전 모방범’ 1~3권을 지켜보며 이걸 언제 다 읽나?’ 고민했던 일이 새삼 기억이 났습니다. 물론 모방범을 완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미미 여사의 작품이라 새삼 고민할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위증을 집어 들기까지 꽤 여러 번 주저한 것이 사실입니다.

중학교에서 벌어진 연이은 사건2,00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채울 만한 소재인가? 아무리 미미 여사라지만 2,000여 페이지를 채우려면 메인 스토리 외에 이런저런 주변부 이야기와 조연들을 다수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작품의 밀도와 재미는 희석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뒤늦게 ‘9년 간 연재됐던 원고지 8,500매의 작품이라는 출판사 소개 글을 읽고서야 이 방대한 분량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아무튼 여러 가지 우려(?)와 선입견을 지닌 채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사건(1) - 결의(2) - 법정(3)이라는 소제목대로, 1권은 조토 제3중학교에서 연이어 벌어진 사건들이 주 내용입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학교 후문에서 발견된 가시와기의 시신,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학교와 경찰, 학부모와 학생이 벌이는 갈등과 공방전, 그 와중에 날아든 익명의 고발장이 야기한 예기치 못한 사태들, 3자의 악의적 장난의 결과로 개입하게 된 매스컴과 그로 인한 대혼란, 그리고 연이은 희생자와 사고의 발발 등이 이어지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갑니다.

 

1권까지만 읽은 상태라서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앞서 가졌던 선입견 중 일부는 맞아들었고, 일부는 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량에 관한 한 역시 두 권 정도가 알맞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머지 2,3권을 읽은 후에 이 생각이 180도로 바뀔 수도 있지만, 1권의 템포와 구성을 감안한다면 3권까지 끌고 갈만한 동력이 조금은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만 하루 만에 읽어낼 정도로 페이지터너로서의 미미 여사의 필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쉽고 간결한 문장만으로도 사건과 인물들을 사실감 있게 묘사했고, 중학교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긴장감과 몰입도는 웬만한 연쇄살인 에피소드 못지않게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또한, 학생, 학부모, 교사, 경찰, 기자 등 다양한 계층의 방대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촘촘하게 사건과 연관되어 있고, 동시에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지닌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1권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 중 하나는 미미 여사가 궁극적으로 이 방대한 내용을 통해 하려는 얘기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미미 여사의 작품 뿐 아니라 여느 미스터리를 막론하고 진범 찾기 과정 속에는 독자들이 응원하거나 증오할 대상이, 즉 선과 악이 선명하게 구분되기 마련이고, 반전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캐릭터에 대한 애증은 큰 혼란 없이 유지되는 편이지만, ‘솔로몬의 위증은 그런 일반적인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 이 캐릭터를 미워해야 하는 건지 응원해야 하는 건지, 이 캐릭터가 진범으로 드러났을 때 통쾌함을 느끼게 될지 찜찜함만 남을지, 사건의 진실이 어느 쪽으로 판명돼야 정의가 승리하는 건지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이 작품 속 모든 캐릭터는 선과 악의 양면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기적이기 짝이 없으며, 주관과 소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기정당화에 급급한 성격일 뿐이며, 정의를 부르짖지만 남들은 동의해주지 않는 혼자만의 정의에 함몰되어 있기도 합니다.

누구도 응원할 수 없고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보니 오히려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결국 대단원에 이르러 드러날 진실이 무엇이든, 진범이 누구이든 간에 이 방대한 내용에 휩쓸렸던 모든 캐릭터들에게는 평생을 안고 가야할 상처만 남을 것만 같고, 독자들 역시 깊고 묵직한 독후감을 떠안아야 될 것 같다는 예감에 이르게 됐습니다.

 

2권의 소제목은 결의입니다. 1권의 후반부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겠어.”라는 다짐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아마 진실을 찾는 주인공들의 지난한 여정이 묘사될 것으로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실이나 진범, 사건의 전개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성장이나 변모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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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은 밤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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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닷쿠와 다카치를 비롯한 아쓰키 대학의 친구들은 플로리다에서의 홈스테이를 위해 다음 날 출국 예정인 미오의 환송파티를 엽니다. 엄격한 규율에 갇혀있던 미오는 부모님의 부재를 틈타 열렸던 환송파티를 마치고 들뜬 마음에 귀가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진 낯선 여인이었습니다. 당연히 경찰이나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미오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얼떨결에 사건에 연루된 닷쿠와 다카치는 미오의 집에서 발견된 여인의 정체부터 알아내려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권한도 없는 그들에겐 시작부터 온 사방이 막다른 골목일 뿐입니다. 엉뚱한 상상력과 빈곤한 수사력만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던 그들 앞에 갖가지 시련이 닥치지만, 닷쿠와 다카치는 기어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말 덕분에 닷쿠 일행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타임루프라는 특이한 소재를 거듭된 반전과 독특한 형식미로 잘 버무렸던 일곱 번 죽은 남자덕분에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팬이 되었습니다. 신작의 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웠고, 기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 때문에 더 반가웠습니다.

닷쿠&다카치 시리즈의 첫 편인 그녀가 죽은 밤SF적 설정을 주로 차용하던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현실을 무대로 삼아 좀더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대학교 2학년인 청춘들이고, 연이어 벌어지는 기이한 살인사건만 빼면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인생의 최고 미덕을 술이라 주장하는 닷쿠와 슈퍼모델 급 외모를 지닌 얼음장 같은 다카치, 그리고 두 사람의 주위에 포진한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은 쉴 새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발휘하며 긴장과 웃음을 함께 전해줍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밤은 그저 밝고 달달한 청춘 미스터리는 결코 아닙니다. 팬티스타킹 속의 잘린 머리카락과 함께 발견되는 피살자들, 사랑에 눈이 멀고 탐욕에 찌들대로 찌든 치명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밝혀지는 그 밤의 진실 등 잔혹하고 독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좌충우돌 캐릭터들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작가가 짜놓은 논리적 구성이 얼마나 촘촘한지 새삼 경탄하게 됩니다. ‘일곱 번 죽은 남자에서도 익히 느꼈던 바지만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영역 롤러코스터 식 전개와 논리적 구성 을 전혀 위화감 없이 조합해낸 작가의 필력은 후속작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워낙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챕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줄거리를 소개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잘못하면 너무 많은 정보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정쩡한 설정 소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 읽은 후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최소한 초반부의 재미를 희석시킬 만큼 너무 많은 이야기를 소개해놓았습니다. 일종의 셀프 스포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가능하면 사전 정보 없이 본편과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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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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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주 정도에 걸쳐 도조 겐야 시리즈’ 3(염매, 산마, 미즈치)을 완독했습니다. 2년 전에 읽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포함하면 시리즈를 마스터한 셈입니다. 방대한 분량은 말할 것도 없고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괴담과 불가해한 연쇄살인 덕분에 연이은 도조 겐야 읽기가 정신적으로 꽤나 부담되긴 했지만 미즈치~’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큰 숙제 하나를 마친 듯한 뿌듯함과 동시에 후속편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저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도조 겐야가 마주친 것은 물의 신 미즈치입니다. 대체로 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전작들에 비하면 새로운 설정입니다. (물론 염매~’에서도 히센천이라는 무시무시한 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조연에 가까웠습니다.) ‘미즈치~’에도 후타에이 등장하긴 하지만 괴이의 주인공은 마을의 운명을 쥐고 있는 미쓰천이라는 강과 그 원류인 진신호(),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물의 신 미즈치입니다.

 

늘 그렇듯 대립 또는 갈등하는 가문들이 등장하는데 나라 현 하미 지역에 미쓰천을 따라 나란히 자리한 네 개의 마을의 신관 가문이 그들입니다. 대대로 홍수나 가뭄이 들 때마다 번갈아 가며 미즈치 님을 모시는 제의를 올려왔는데, 1가문인 미즈시 신사가 맡은 올해의 제의가 진행되던 중 첫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역시 늘 그렇듯) 사건이 벌어진 곳이 밀실이고, 더구나 제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미즈시 신사에 의탁하고 있던 도조 겐야는 이 기이한 사건에 휘말림과 동시에 살인사건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합니다. 특히 각각 23년 전, 13년 전의 제의 중에 일어났던 사망 사고 역시 현재 벌어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음을 간파합니다.

 

네 가문의 대립과 갈등에 덧붙여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 축이 있는데, 1가문의 신관인 미즈시 류지의 수양딸인 사기리와 그녀의 3남매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들에 대한 소개는 워낙 양도 많고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생략하겠지만, ‘염매처럼~’을 읽은 독자들을 위해 조그마한 미끼성 힌트를 한 가지 드리자면, 류지의 수양딸 사기리가 염매처럼~’에 등장했던 가가구시 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미즈치~’에서 사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도조 겐야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를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들 - 방대한 민속학적 자료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악연과 그로 인한 재앙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신들의 장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 등은 미즈치~’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됩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결국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도조 겐야의 활약도 여전합니다. 후반부 적당한 지점에 이르러 사건의 의문점을 모두 나열해놓고 독자들에게 여기에 힌트가 있으니 진범을 맞춰봐!”라고 도전하는 모습이나 관련자들을 모아놓고 진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몇 번씩이나 반전을 거듭하는 모습은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남다른 재미로 다가옵니다.

특히 미즈치~’에서는 산마~’에서 잠깐 선보였던 여자 편집자 소후에 시노가 도조 겐야의 여정에 함께 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끔씩 멜로(?)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며 묵지근한 독자들의 머리를 식혀주기도 합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두 가지 정도인데, 우선 구키 쇼이치(사기리의 3남매 중 막내)의 시점으로 서술된 내용이 이야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용 상 반드시 필요한 구성이긴 하지만 그만큼 도조 겐야의 시점으로 서술된 내용이 줄어들어서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번역과 관련된 부분인데, 오타나 오역은 요즘의 웬만한 작품에 비하면 양호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적었지만, 정작 문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잘못 번역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류지, 류이치, 류조, 류코, 류마 등 비슷한 이름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이름이 튀어나온 경우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첫 번째 아쉬움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지만, 오역의 아쉬움은 작품의 완성도를 손상시킬 만큼 작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도조 겐야와 함께 한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딴 나라에 가서 살다 온 느낌이었지만, 벌써부터 새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저도 어느 새 도조 겐야와 그를 창조해낸 미쓰다 신조에게 중독돼버린 듯합니다. 리얼리티 면에서 언뜻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역사-호러 미스터리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염매 - 잘린 머리 산마 미즈치로 이어지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연독을 강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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