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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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25, 학교 후문에서 2학년 생 가시와기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이듬해 초여름까지 조토 제3중학교 주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한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후지노 료코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경찰과 학교가 외면하고 덮어두었던 사건의 진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파헤치기 위해 교내 재판을 준비하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익명의 고발장에 의해 가시와기 살인범으로 지목받은 오이데 슌지를 피고인으로 놓고 후지노 료코, 노다 겐이치 등 조토 제3중학교 학생들이 판사, 변호사, 검사, 배심원 등의 역할을 맡아 여름방학 동안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변호사와 검사로 나뉜 학생들은 오이데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의 탐문은 물론 철저한 자료조사를 위해 거의 형사를 방불케 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그 과정들은 결코 순탄치 않을뿐더러 진작 예상했으나 막상 부딪혀보니 훨씬 더 공고하게 자신들을 가로막는 장벽 때문에 몇 번의 크고 작은 고비를 겪게 됩니다. 임시교장과 대부분의 교사들, 심지어 동료 학생들조차 비협조적이거나 방해꾼 노릇을 했고, 중요한 진술을 기대했던 인물들은 변호사든 검사든 어느 쪽에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한 노력 덕분에 나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경찰이나 교사, 학부모들이 깜짝 놀랄만한 단서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관련 인물 중 일부가 방화, 상해 등에 휘말리면서 가시와기의 죽음에서 출발한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지난 1권의 서평에 달린 댓글 가운데 “1권과 2,3권의 서평이 극과 극이라는 내용이 있어서 내심 걱정도 됐고, ‘무슨 이야기로 남은 두 권의 분량을 채울 것인가?’라고 우려도 했었지만, 2권까지 읽은 현재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기우였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 서평을 마치는 대로 마지막 3법정을 큰 기대와 함께 읽기 시작할 생각입니다.

 

사건을 다룬 1권과 법정을 다룰 3권 사이에서 과연 결의라는 소제목을 지닌 2권이 무슨 내용으로 채워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과 가지 치듯 발생하는 연관 사건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같은 말을 반복하지도 않고 지루하게 늘어뜨리지도 않으면서 알차게 채워놓았습니다. 동시에 마지막에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묘한 위화감을 곳곳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본격 법정물이 될 3권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여놓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제일 관심을 끈 것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 간의 다양한 인간관계들입니다. 가시와기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피고인과 변호사, 검사, 판사, 배심원으로 나뉜 학생들은 각기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가치관과 성격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됩니다. 또한 교내 재판을 그저 학생들의 치기어린 장난쯤으로만 여겼던 학부모, 교사, 경찰 역시 어느 시점인가부터 각기 다른 심정과 목적으로 주시합니다.

진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캐릭터 수만큼 다양합니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일관되게 선하거나 일관되게 악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됐다가 피해자가 됐다가 또는 방관자로 머물기도 합니다. 누구나 진실을 원하지만 때에 따라 진실을 묻어두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가시와기의 죽음의 원인이 밝혀진다고 해도 교내 재판을 진행한 학생들이 웃을일은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독자 입장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엔딩이 되어줄지 오리무중이 됩니다. 작가가 이런 서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독자들은 혼란스럽고 답답한 책읽기만 강요받게 되지만, 미미 여사는 독자로 하여금 모든 등장인물들과 골고루 교류할 수 있도록 꼼꼼히 안배했고, 그 결과 그저 재미있는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또 작가가 정해준 주인공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료코가 되어, 어떤 때는 오이데가 되어, 또 어떤 때는 교사나 형사가 되어 제 나름만의 진실 찾기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조토 제3중학교에서 벌어질 엿새간의 재판이 어떤 파란을 겪게 될지, 아직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지, 몇몇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감춰진 비밀은 어떤 형태로 공개될지,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질 진실이 료코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길지 이런저런 궁금함을 떠올리면 남은 3법정의 분량이 좀 모자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1권을 마친 후 무슨 이야기로 남은 두 권의 분량을 채울 것인가?’라고 걱정했던 일이 새삼 민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족으로, 굳이 아쉬운 점을 두 가지만 꼽자면 우선 2권부터 새로 등장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고, 그들이 료코나 겐이치와 함께 주연급으로 활약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내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캐릭터가 필요한 점은 이해가 되지만, 몇몇 캐릭터는 전형적인 슈퍼맨’, ‘캔디걸등의 작위적인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좀더 사소한 점이지만, 15세의 중3이라는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문득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탐문이나 자료조사 등 교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말하는 수준이나 사고방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웬만큼 철든 성인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무수히 발견됩니다. 특히, 상대방의 속내를 읽어내거나, 두세 수를 내다보는 혜안을 과시할 때면 내가 중3보다도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딱히 아쉬움이라기보다는 그저 읽는 동안 느꼈던 묘한 위화감에 대한 호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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