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해석은 의리역, 상수역, 도서역 등등 많은 입장이 있고, 이들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성리학이나 양명학 같은 철학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점술의 영역과 관련된 부분도 있다. 애초에 거북점과 시초점을 흡수한 역경부분이 역전(십익)부분이 추가되면서 철학화가 시작된 것이다.

점술영역에 들어가면, 점을 쳐서 괘를 잡는 법과 나온 괘를 가지고 점을 판단하는 법들이 필요하다. 괘를 잡는 법에서도 재밌게 본 내용들이 많아서 신나게 할 얘기들이 많지만, 흥미를 끈 것은 8괘가 상징하는 상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역점법은 주희가 설명한 것이 내려온 것으로, 춘추전국시대 주역점을 본 것과 맞지 않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원래 점법은 20세기 들어와서 재발견되었다.
















재발견한 주역점법으로 춘추전국시대 글들을 살펴 본격적으로 연구한 책도 나왔다.















역전이 생기기 전에, 괘상, 괘사와 효사로 열심히 점을 풀이한 점이 흥겹고, 철학화이전의 원형스러운 모습이 많이 느껴진다.

한의학분야에서 오행을 이용한 다양한 분류와 주역의 상이 어떻게든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연관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행사상이 활발하게 유행한 후에 한의학분야에서 오행사상과의 접목이 일어났고, 이는 한대 초반무렵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대 후반까지 가야 한의학의 오행과 주역의 접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접목순서가 해당시기 책을 볼때 흥미를 제법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거 같다. 오늘날 보면 그게 그거인 듯 보이는 사상들이, 당시로는 발상의 전환에 해당할만큼 신선한 영역이기도 한 점이 재밌다.

하지만, 한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의학인데, 오늘날 관점에서 과학이 아닌 오행사상이, 의학을 다루는데 유효한 방식일 수 있을까? 이 의문은 한의학의 형성과정과 밀접하고 오늘날은 알쏭달쏭해 보이는 한의학 여러 지식들을 어느 선까지 이해하는데도 밀접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중 하나는 의학을 성립시킨 논리의 영역인, '범주화' 작업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범주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로, 소 원숭이 바나나 를 두 부류로 묶으라고 하면 서양인들은 동물인 소와 원숭이, 식물인 바나나 로 구분하지만, 동양인들은 많은 수가 원숭이와 바나나 vs. 소 로 분류한다. 여기서 고대 중국인의 범주인식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서양과학과는 다른 기준의 범주를 갖고 있는 고대 동아시아 정신세계를 염두에 두고 다시 고전문헌 읽기를 하면 소소한 즐거움이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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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의 토대인 정주성리학은 어떤 의미일까? 이를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이들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 어떠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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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익숙하기만 하고 그 진가를 헤아리지 못해서 동아시아 문화를 포함해 우리 문화를 온전히 못누리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음양이론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한 성리학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비판들은 오늘날 현대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고 동시대인 관점에서 뛰어난 점을 알 수 있어야 타당한 비평을 할 수 있을거 같다.

예~전에 영어논문 글쓰기를 진짜 전문가에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영어작문외에도 문학비평이나 미술비평 분야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근사한 미술비평 글쓰기를 엄청 즐겁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또, 잠깐 본 일본만화에서, 박물관과 절을 돌아다니면서 불상을 감상하는 불상동호회를 보고, 와아 이런 건 해볼만 하겠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문학 책들은 단어 찾기가 찾기가 구찮고, 문학이 추구하는 내용들이 계속해서 흥미롭지는 않았다. 미술비평은 서양미술의 접근성이나 담은 내용들이,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전통 문화를 포함한 우리문화 감상에 대한 것들은, 많이 본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질리거나 지침없이 꾸준히 욕구가 간직된거 같다.

점차 우리문화에 대한 대중서들이 수준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재밌는 비평들을 손에 접할 수 있게 된거 같다. 예를 들어 도올 김용옥의 동양고전 번역도 좋고, 김상섭의 고증주역에 관한 책들도 좋다. 

조선의 정주성리학 얘기는 곧잘 들어왔고, 조선 후기 진경시대 얘기도 가끔 들었다. 마침 배경지식을 주는 책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진경시대에서 대표 미술양식인 진경산수화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진경산수화에서 '진경'과 '산수화'의 진면목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본격적인 조선시대 미술비평이라 할 만한 책을 만나니, 깜짝 놀랐고,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이성현의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정말 본격적인 조선미술비평이다. 그림은 물론, 한문고전, 당시 정치상황, 화가의 상황까지 모두 끌어모아 진정스러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전 고전해설과 미술비평들의 허술한 점들을 송곳처럼 지적하고 해결로써 자신의 대안과 주장을 차분히 설명한다. 무척 재밌고 통쾌하고 짜릿하다.


성리학과 주자성리학은 인간의 내면중 어떤 것을 잘 잡아놓은 것으로 보여 융의 심리학의 '개성화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많이 생각했고, 수묵화 그림은 주역에서 '상'을 잡는 것 같은 측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있었다. 아직 생각만이지만, 이런 단초들로 글을 쓰면, 그런 것들이 소소한 동아시아 문화 비평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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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은 책 중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상하이에서 고대 중국을 거닐다>, <마음이 아플 때 불교심리학>들이 어떤 점에서는 뛰어난 기획을 했지만, 뒷받침할 점들이 모자라서 중간 정도 넘어가면 엉성함이 느껴진다. 















한국어판 서문에는 위 책을 쓰게된 계기가 훌륭하게 설명되어 있다. 간략하게 줄이면, 한국은 '강한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강한 사회'를 갖는데 성공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이런 지적을 뒷받침할 얘기가 체계적으로 설명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 뉴스처럼 자극적이고 눈길을 끌지만, 서문에서 밝힌 의도와 직접적으로 부합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관련이 되면 끌어오는 식으로 각장의 소재와 제목을 잡고, 해당 글도 가벼운 기행문이나 기사 같은 느낌의 글이 많아서, '강한 사회'가 없게 된 과정과 그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잘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대안으로 제시한 방식은 만족스럽지 않다. 문제의식이 좋아서 감정에 대한 허술한 점을 잘 연구해서 그 허술한 점을 잘 설명해주지만,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대한 답은 많은 부분을, 우리가 불교에서 접할 수 있는 지식을 큰 체계나 진전없이 나열하고 만다.















이 책을 쓴 심재훈 교수님에 대해서는 일종의 팬심을 갖고 있어서, 이 책을 보게 된 것이다. 원래 교수님은 고대 중국 서진시대와 춘추전국시대 에 대한 전문적인 글을 쓰시는 분인데, 다음카페 '동아시아출토문헌연구회'에서 그 분의 글이나 강연 같은 것을 접하고 팬심이 생겼다. 원래 이 책도 다음카페에 일기식으로 올린 글을 먼저 읽었다가 책으로 보면 좀더 입체적으로 기행문을 감상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읽었지만, 일기에 텍스트로만 올린 글과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쪼금 실망스러웠다. 일단 지도가 없다. 지도가 없으니 교통편 정보를 올린 것도 감이 오질 않고, 저자가 방문한 장소에 대한 감각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이런 것을 포함한 부가정보를 조금만 더 넣고 책을 만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뻔 했다(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좀 가볼만한 도시나 장소같은).















이 책은 정말 제목 그대로다. '불교'+ '심리학' 이다. 심리학을 다루는 다른 외국인 저자들보다는 '불교'에 능통하지만, 저자가 대상으로 삼는 독자는 아무래도 불교에 배경지식이 없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다루는 문제들도 이들 독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많은 거 같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어서, '구사론'이나 '아비담마불교'같은 것들에 대한 해설서보다는 조금만 대중적인 방향이기를 바랐는데, 많이 서양대중적인 방향이어서, 많이는 아니고 약간 다소 아쉬웠다. 얼마전 읽었던 테오도르 준 박 의 <참선 1,2>와는 비슷하면서 결이 달랐다. 테오도르의 책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한국선전통의 소개를 깊이있게 전달했지만, 잭 콘필드의 책은 괜찮은 부분부분들이 많았음에도 전체적으로 충분한 깊이를 만들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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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도올의 노자 책<노자가 옳았다>이 출간되었다. 최근까지 고전읽기의 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그의 책들은, 풍부한 고전읽기와 최신 논문까지 섭렵하여 간혹 과한 부분도 있지만 언제나 그의 박식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넋놓고 읽고 있기 일쑤였다. 이 책도 그러리라 짐작되지만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다.

노자 해석도 방향성을 잘 설정하고 의미를 붙여야 훨씬 설득력있고, 내용도 풍부해 보이는 거 같다. 노자를 불교시선으로 해석한 성현영의 <노자의소>, 기수련 관점으로 본 하상공주 도덕경, 왕필의 도덕경 모두 도의 의미를 설정한 방향대로 잘 보여준다.
















방향설정을 해야 좀더 깊이있고 제대로된 해석이 나오는 거 같다. 성현영의 해석을 보면 불교와 도교가 공유하는 지점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공유되고 그리고 유교의 영역까지 어떻게 확장되는지가 잘 보인다.

<기수련으로 보는 도덕경>,<노자도덕경과 왕필의 주> 모두 김학목님의 번역인데, 전자는 다른 분과 공역이다. 후자를 너무 재밌게 읽고서 전자를 주문했는데, 후자는 깊은 이해와 연구가 함께해서 번역자가 관련해서 연구해 놓은 논문도 같이 수록할 정도지만, 전자는 서두에 간단한 소개만 올리고 본문에 하상공 주석을 딱 번역하고 더는 없어 서운할 정도였다.

하상공주를 모를 때는 도서관에서 기에 관련된 도덕경 책들을 보고는 어이없어 냉소를 지었지만, 뒤늦게 그 중에 멀쩡한 책도 있었겠다 싶었다.

이러한 하상공주를 포함해, 한의사도 겸하는 도올의 해석은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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