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고 부르는 책을 마주보면서 느끼는 나쁜 버릇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 우리 조상보다는 현재의 우리가 더 고민이 많고, 더 어렵고, 사회를 보는 눈은 좀더 떠 있다는 등등으로 은연중에 우리가 좀더 낫다는 그런 뜻이 숨겨져 있다. 나 스스로도 종종 그런 모습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은 1500년대 활동한 라 보에티라는 작가가 쓴 책이다. 책의 내용이 많지도 않고 9개의 소주제로 모여있어서 읽기 편하다. ‘읽기 편하다’는건 앞서 말한 가벼운 분량과 짧은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쉽다는 말이지, 그 내용이 아주 간단하지 않다. 고전을 읽는 건, 우리 자신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나와 우리’를 보는 거울의 하나로 고전을 본다. 그러다보니,고전 책 하나 하나를 내가 처해진 상황을 투영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요즘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정치, 사회 등 우리 삶에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 사람이라는 무리가 언제부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의 사회 형태를 갖추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회의 발걸음이 한발짝 앞서서 나가는건, 마치 거대한 맘모스가 뱃속에 곧나올 새끼를 잉태한 채 힘들게 겨우 한걸음 나가는 모습처럼 힘겨워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그 한발을 내디뎓다가 두세발짝 뒷걸음 치는 등 숱한 실수와 문제를 꽁꽁 싸매고 나가는 듯 싶다. 그런 어려운 한걸음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사회 운영 체제를 만들어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이상에 비해서 유지하고 나아간다는게 참으로 어렵다. 왕이나 신이 다스리는 옛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독재를 행하는 모습은 전세계에서 아직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점에서부터 보에티의 책을 시작한다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독재다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로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적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기이하지 않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은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강한 권력에 의해서 강요당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꿈꾸고 손에 잡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를 그저 열망하기만 하였으며 단순히 그러한 의지만 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실제로 언젠가는 반드시 자유를 쟁취해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자유라고 말한다 [많은 선 가운데는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치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그러지 못한 그때 사람들에게 외친다. [아, 인민들이여, 너희는 불쌍하다. 왜냐하면 너희는 자신의 불행에 관심 없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참으로 어리석다. 왜냐하면 스스로 찾아야 할 행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가장 귀중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강탈당하고, 수확물을 도둑 맞으며, 거주지를 빼앗기고, 상속 받은 가구들을 빼앗겨 질질 끌고 가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모든 것을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배우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자! 위를 향하여 응시하자! 우리의 명예를,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선을 위하여! 우리의 행동을 깨닫고, 우리의 오류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게 하는 신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서, 나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즉 신은 저 아래의 전제 군주와 그 패거리들에게 어떤 특별한 형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신은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즉 선량한 자와 신의 은총을 받는 자라면 누구든지 폭정을 가장 저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