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
고종석 지음 / 로고폴리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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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라는 분은, 내 관심 분야인 우리말에 대해 자기만의 보는 눈과 위치를 터잡고 있는 사람이다. 기자로서 그의 칼럼을 보면 정치에 대한 입장이 우리 글에 대한 입장과 조금 어긋나보이기도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있다.

한동안 절필을 선언하셔서 이 분의 책이 언제 나오나 싶었는데, 강의활동은 절필 기간에도 하셨나보다. 그가 대중에게 했던 4번의 강의를 모아서 나온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기자로, 언어학자로, 한때의 법학도로 두루두루 알고 있는, 미국의 문화와 영어에 쏠리지 않고 프랑스어나 라틴어, 그리고 옛날 우리말과 한자, 일본어와 예전 일본의 글쓰기 작품 등 여기 저기 넘나드는 그의 박식함, 읽다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재치스러운 글짓기 솜씨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책을 다 읽게 되었다.

고종석의 책을 읽으며, 민족과 국가라는 애매하고도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이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말은 과연 어떻게 규정지어야 하고, 우리가 쓰는 이 말을 과연 우리 민족만의 특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근대 유럽에서 형성되어 꽃피고 있는 서양 문명과, 그에 대한 전수자인 일본 문명이 우리의 말과 얼을 뒤덥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를 별개의 민족으로, 우리 말을 별개의 말로 나눠서 지키고 그러면서도 서양의 말과 적절하게 잘 섞여야 하고, 슬기롭게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빨아들여야 하는 이 어려운 숙제가,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맞을까? 우리에겐 이렇게 가만히 뒤돌아볼 새도 별로 없다. 빠름이라는 이름 속에 우리의 모든 것이 이름붙여지면서, 뒤돌아보기는 커녕 무섭게 봇물 넘치게 들어오는 새로운 뜻과 말, 기술에 그 의미를 하나하나 따지다보면 더 밀고 나간 뜻과 말과 기술이 우리를 몰아세운다. 하나 하나 따라가다보면 허덕이고, 허덕이다보면 거리는 더 벌어지고, 이러면서 무언가를 먼저 치고 나가기는 더 힘들어지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어떤 다른 대안으로 이렇게 하자고 말하지도 못하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답답함을 글로 토로하는 노인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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