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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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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쯤에 우연히 발견하고 산 책입니다. 처음 보는 작가였지만 훑어보니 재미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화장대 위에 놓인 미니책장에서 여러 후보자들과 함께 저의 간택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손에 쥐게 된 소설입니다.

간단한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마리 유키코는 인간의 어둡고 불쾌한 내면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이야미스' 장르를 개척하며 기리노 나쓰오, 미나토 가나에 등과 함께 일본의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라고 하네요. 에? 일단 같이 거론된 분들이 워낙에 유명한 분들이라, 이 작가도 그 정도급의 인지도를 갖고 있나보다, 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이 너무나 특이했어요. 중년여성의 한 시기를 지칭하는 '갱년기'와 아직 어린 '소녀'와의 결합이라뇨.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확실히 '이야미스'겠구나, 하는 직감이 퐉! 다가왔습니다.

등장인물들은 1976년에서 1977년 사이에 연재된 <푸른 눈동자의 잔>이라는 순정만화 오타쿠들입니다. 만화는 더 이상 연재되지 않지만, 그 만화는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고, 팬클럽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팬클럽 사이트에서는 팬픽 소설이나, 동인지 만화, 일러스트 등으로 열기를 띠고 있지요.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인 에밀리, 실비아, 마그리트, 미레유, 지젤, 가브리엘 등 30-50대의 중년여성 6명은 그 팬클럽을 운영하는 간사진입니다. 팬클럽 활동을 길게는 20년, 30년씩 해온 사람들이고, 간사진 그룹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기모임이 있는 날에는 무리해서라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비싼 레스토랑과 찻집에서 한껏 그 시간을 누립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 <푸른 눈동자 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푸른 눈동자의 잔>이라는 만화는 단순한 취미이상입니다. 거의 광기어린 종교에 가까울 정도의 관심과 숭배의 대상입니다. 그녀들의 집착은 좀 섬뜩할 정도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소녀이고 싶은 오타쿠 중년들의 폭주 미스터리' 이 문구가 이 책 소개하는 겉표지에 적혀있네요. 그리고 이 문구는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구성은 여섯 명의 등장 인물에게 각각 한 챕터씩 할애하여, 그들의 실제 생활을 보여주고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엇나간 알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줍니다. 18세기 프랑스 백작의 딸이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만화주인공 잔의 파란 만장한 삶과는 일도 연관이 없는, 현실의 그녀들의 삶은 저마다 무겁고 위태합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을 묘사하는 대한 작가의 시선은 가차없습니다. 모임에서는 우아하고 고고한 척 앉아 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피해망상증에, 허언증에.....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같이 한심하죠. 그나마 가장 괜찮은 인물이 가브리엘인데, 가브리엘은 모임 멤버 중 가장 젊고, 빼어난 외모와 친화력을 겸비한, 모임의 아이돌같은 존재이지요. 그래서 다른 나머지 다섯 명의 멤버는 가브리엘의 애정을 독점하기 위한 묘한 쟁탈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현실 속에 쌓아올린 허영심의 탑. 그곳에 그녀들이 위태롭게 존재합니다. 오직 <푸른 눈동자의 잔>만이 그녀들에게 삶의 생기를 주지요.

그리고, 정말 사건이 일어납니다. 모임의 그녀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죽어나갑니다. 각 챕터별로 한 사람씩 개인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챕터별로 중심 내레이션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비아의 에밀리의 경우는 에밀리가 중심이 되어 내레이션을 하지만, 마레유의 경우는 마레유의 어머니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마레유의 이야기가, 마그리트의 경우는 마그리트의 어린 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마그리트의 이야기, 지젤의 경우는 계속되는 악몽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갑니다. 작가가 글쓰기 방법에서 약간씩 변주를 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저는 약간씩 달라지는 이런 글쓰기 방식에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결국 불안한 예감 속에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그녀들, 그 뒤에 이 모든 것의 빅픽처를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누가 결국엔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될까요?

작가가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잡아내서 가차없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내내 재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깜짝 반전이 있었습니다. 거의 마지막 페이지 직전까지도 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하, 그 반전을 알고 나서야, 그녀들의 행동이 이해되더군요. ^^

하지만 뭔가 중년 여성들의 오타쿠적 열정을 폄하하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 있어서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오타쿠인 사람들은 가정에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고 독특해서 그런거야, 라는 듯한 뉘앙스가 살짝 느껴졌거든요.

현 시대는 인류 역사상 수명이 가장 길어진 시대이고, 그러다보니 충분히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젊은 시절의 삶을 영위하는 첫 세대들이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중년이지만 더 이상 중년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담론들도 많이 등장하고, 충격받지 말고 자연스럽게 중년을 받아들이자는 담론들도 많이 나오고... 여튼 혼란스러운 상황이지요. 그래서 이런 소설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나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모습이 정말 궁금해졌어요. 작가의 외모가 궁금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문체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왠지 기리노 나쓰오처럼 서늘하면서도 강한 인상의 미인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찾아봤는데, 두둥, 아주 푸근한 인상이셨습니다. 이 소설이 그나마 마리 유키코가 쓴 소설 중 가장 읽기 편하고, 친근한 소설이라고 하던데....^^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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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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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된 책을 발견할 때마다 늘 읽게 되는 작가 누쿠이 도쿠로. 작년 가을에 신간이 나왔길래 냉큼 집어들었습니다. 문득 따져보니 누쿠이 도쿠로의 책은 일곱권을 읽었더라구요. 이번이 여덟번째 책이네요. 누쿠이 도쿠로가 문장을 심플하게 쓰면서도 심리묘사를 잘 하는 편이고 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로서는 저랑 궁합이 잘 맞는 작가인듯 합니다.^^

이번 책 '나를 닮은 사람'은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사회비판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 평소 작가의 생각인지, 소규모 테러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위한 포석을 까는 것인지 인물들의 대사 속에 일본사람들의 성향과 사회분위기를 비판하는 내용이 날 것으로 섞여들어 있는 부분들이 꽤 되네요. 덕분에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사회에 대해서도 더욱 많이 알게 된 거 같습니다.

"히데부 씨는 사회에서 떠밀려났습니다. 그건 일본 사회에 관용이 없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에 비해 유독 동질성이 강한 사회를 형성했습니다. 불평등이 만연하고 이질적인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죠. 그래서 약자에게 차갑고, 재능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평범함을 중요시하죠. 일본 사회에서 히데부씨가 살아갈 곳은 없을 겁니다."

"일본인을 정직하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고, 실제로 잃어버린 지갑이나 휴대전화의 주인을 찾아주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어째서인지 개인 수준에서만 그렇다. 집단이 되면 윤리에 반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 또한 일본인의 기질이다."

'난반사'와 '프리즘'에서 보았던, 하나의 사건을 구심점으로 얽히고설킨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풀어내며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작가의 장기가 이 소설에서도 잘 발휘되고 있네요. 이 소설에는 챕터별로 총 열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들은 소규모 테러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저지른 소규모 테러가 이 소설의 사건입니다. 트럭을 몰고 상점으로 돌진한달지, 횡단보도에서 칼을 휘둘러 행인에게 상처를 입힌달지, 본인이 점원으로 일하던 가게에서 점주와 손님을 찌른달지 하는 우발적으로 보이는 소규모 테러의 배후에는 누가 있으며,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요?

작가가 건드리고 있는 문제는 사회의 불평등입니다. 그 불평등은 거품경제의 혜택을 받은 기성세대와 그렇지 못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간의 갈등, 또 같은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엄연한 계층 차이가 존재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 중 현재 불행하거나 사회적 격차 때문에 의기소침한 인물들은 그 원인을 사회부조리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회적 약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규모 테러를 실행하기를 부추키는 인물이 등장하지요. '도베'라는 인물인데요, 그 '도베'라는 인물은 무수히 자기 복제를 하여 주로 SNS 상에서 자신이 조종하기 쉬운 인물들만을 골라서 소규모 테러를 부추킵니다. 이 소설에는 세상에 절망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사회고발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솔직히 '난반사'만은 못했어요. 무언가 조금 완결성은 떨어진다는 느낌? 그리고 무언가 마무리가 미진했어요. 의외의 인물이 최초의 도베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 전개가 좀 급작스러웠고, 별로 궁금한 부분도 아니었어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빨려들어가듯 읽긴했지만 좀 산만한 부분도 있었어요. 뭐랄까 인물수를 줄이고 더 밀도있게 구성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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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나미 아쓰시,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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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읽기에 대한 책에 손이 가게 된다. 그동안 꾸준히 책에 관심을 갖고 읽어왔지만, 무언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나에게 있어서 독서란 휴식과 재미의 기능이 가장 컸던 것이 사실이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업무와 육아에 떠밀려서 '오직 나일 수 있는 시간'과 '현실을 잊고 재미와 휴식을 잔뜩 제공하는 시간'으로서의 독서의 기능을 가장 많이 활용한 듯 싶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좀 더 능동적이고 발전적인 독서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작년부터는 책을 읽고 난 후에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남기는 습관을 키우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별 다른 생각없이 그저 무작정 책을 읽어 왔다면, 최근에  접하게 된 독서법이나 독서와 관련된 에세이 등을 통해 나의 독서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점검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실용적인 팁을 전해주었다.


이 책도 책제목이 문제다. 원제는 이것이 아니었거늘..... 이런 제목 너무 싫다. 독서의 가치를 양으로만 평가하는 것 같아서. 확실히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많이 갉아먹는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이 읽어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다. 기존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독서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하고, 좀 더 쉽고 다양한 방식으로 책에 접근하는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글의 저자는 서평가인데,  여러 정보 사이트에 한 달에 60권 정도의 서평을 기고한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한 달에 읽는 책은 60권이상인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물론, 저자가 '안구 트레이닝'이나 '빠르게 훑기'같은 속독을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저자는 일단 정독의 저주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 내용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하나하나 남김없이 소화해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욕심이며 강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시각이 내겐 좀 뜻밖이었다. 나는 독서라함은 정독을 하는 것이 진리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풀어놓은 내용을 하나도 남김없이 내 것으로 만드는 독서가 최선의 독서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탐욕적 혹은 강박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니 솔직히 신선했다. 그러나 저자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 정독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소화해내어야만 한다 생각으로 독서를 한다면, 독서란 무척 부담스러운 행위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그 내요을 모두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는 책에는 쉽사리 접근하지도 못할 것이고, 중간에 몇 군데라도 빼먹거나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찜찜한 기분은 느끼게 되는 것이..... 하지만, 독서는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는 교과서를 접하듯,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될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신이 깃든 한 문장'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책을 통해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저자는 독서를 레고조립에 비유하고 있는데, 조립식 블록으로 재미있게 놀려면 일정 수 이상의 블록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블록 조각 하나를 얻게 된다고 보았을 때 한 권을 정독하여 단번에 큰 블록을 손에 넣은 게 아니라, 일단 많은 책을 빨리 읽어 수중에 있는 블록의 수를 늘리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독서란 이러한 작은 조각들을 모아 큰 덩어리로 만들어가는 행위로 보고있다.


저자가 권하고 있는 독서법으로는 '플로우(flow) 리딩'이라는 것이 있다. 플로우 리딩이란 책에 쓰인 내용이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이라고 한다. '스톡'형 독서법과 대조되는 개념의 독서법으로 정보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시대에 최적화된 '담아두지 않는 독서법'이다. 플로우 리딩이 몸에 배기 위해서 일상 생활 속에 독서를 하는 행위가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 매일 책을 읽는 시간대를 설정해서 책을 읽으며 생활 속에 독서리듬을 타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어서인지 마치 독서를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한 것이 참 참신하다.^^


이 책에서 제시된 독서법 중 내게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책에 밑줄을 긋느니 리뷰를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밑줄을 그어봤자, 그 부분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밑줄을 그은 부분을 다시 보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또한 직접 손을 움직여서 독서노트나 인용노트 등을 작성해보는 것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독서가 이루어지면 '흥미의 벽을 부수고 취향의 폭을 넓힌다'라는 의견이다.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분야만을 파고들기 보다는 의외의 분야로 취향의 폭을 넓히는 것. 내게 유효한 의견이었다. 사실, 내가 주로 손이 가는 분야는 정해져있으니까....


정독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플로우 기법을 통해 빠르게 책을 읽는 것을 권하고 있는 저자지만, 글을 읽는 목적에 따라서 이 방법을 달리 사용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사실, 주장 콘텐츠인 비지니스서나 자기계발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 방법을 쓸 수 있지만, 소설이나 에세이류의 스토리 콘텐츠는 자신이 즐기기 위한 것이므로 이 방법을 쓰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생각해보면, 내가 주로 읽는 책들이 소설과 에세이류인데, 그렇다면 저자의 독서기법은 그닥 쓸일이 없는 건가? ^^

하지만, 저자의 독서 방법이 내겐 참 인상 깊다. 적어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는 많이 유효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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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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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확실히 심리 스릴러 소설이 대세긴 한가봅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비하인드 허 아이즈>도 비슷한 심리 스릴러였는데, 이 소설 역시 비슷하네요. (게다가 제목도 비슷해서 두 소설이 무척 헷깔렸음)

몇 년전에 영화로 본 '나를 찾아줘'와 비슷한 모티브로 시작합니다. 거기서 나왔던 완벽한 부부, 하지만 사실은 여자쪽이 천하에 몹쓸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반대네요. 남자쪽이 사이코패스고, 여자쪽이 피해자가 됩니다.

'겉으로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가정, 부부, 커플이지만 알고 보면 그들 역시 말못할 정도로 흉포한 위기에 처해 있을 뿐이다.' 라는 메시지는 동서를 막론하고,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정말 인기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인 이상. 그리고 두번째는 대중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찌질한게 아니었구나. 완벽하고 멋진 저 사람들도 알고 보면, 나랑 다를 바 없이 고통 속에서 삶을 사는구나. 라는 관음적 쾌감을, 대중은 원합니다. 게다가 거기에 잘 버무려진 스릴과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지만 너무 진부하진 않은 플롯이 더해진다면, 게임은 끝입니다.

이 소설도 어쩌면 영화화되기를 작정하고 썼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합니다. 소설을 읽긴 했지만, 마치 영화를 한 편 본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스토리자체는 너무 뻔했어요.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잘생기고 완벽한 남자와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진한 여자, 그러나 신혼의 단꿈에 채 빠지기도 전에 그 남자는 사실 누군가가 공포에 질린 것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 남자는 여자를 감금하고, 감시하고, 약점을 잡아서 괴롭힙니다. 그 완벽한 집요함에 토할 정도입니다. 여자는 백전백패의 승률로 당하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실낱같은 기회를 잡고, 남자의 악을 징벌합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되는 답답함과 분노로 책장을 넘기게 하다가, 마지막 파트에서 속이 뻥 뚫리는 미친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해주는 류의 소설이지요. 사실 새로운 것은 없었고, 충분히 예상했던 전개였어요. 그래도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알기 알지만, 대체 어떻게 괴롭히고, 어떻게 복수하는지 그 디테일을 세세히 알고 싶어서죠. ㅎㅎㅎ
그리고 재미있었어요. 책을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과거-현재가 교차되면서 서술되는데, 전 그 구성이 나쁘지 않았어요. 현재를 읽으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갖게 해주었고, 바로 과거로 가면 그 궁금증이 해소되는 구조였거든요.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레이스의 부모가 많이 짜증났어요. 자신의 둘째딸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해요. 첫째딸인 그레이스에게 모든걸 떠맡기고 자신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하죠. 딸들이 그렇게 고통을 겪는지도 모르고 자기들만 뉴질랜드로 획하니 떠나서는 삶을 즐기죠. 헐....이건 뭔가요? 했네요. 그 무책임하고 몰인정한 부모가, 그레이스의 사이코 남편에게는 최고의 장인, 장모가 되었죠. 마음껏 부인과 처제를 조종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평범한 눈이란게, 참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겉으로 보여지는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죠. 아무도 그레이스가 피해자고, 남편에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성공한 변호사이자 말끔한 외모와 말솜씨를 갖고 있는 남편의 말만을 믿지요.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하지만, 이 책은 참 교훈적인 책이었어요.
그 교훈이란, 아, 세상에 거저는 없구나. 돈많고, 잘생기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멀쩡한 남자가 평범한 여자에게 (그것도 장애가 있는 동생을 부양해야하는 처지의) 다가와 한눈에 반했다면서 사랑을 속삭일 때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심해야하는구나. ㅋㅋ 즉, 분에 넘치는 행운과 호의는 경계를 해야하는 거구나..  왠지 슬픈 교훈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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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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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같은 삽화 때문에 만화같이 알콩달콩한 학원물일거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 겉표지의 소설이다. 일본 소설의 특징일지도 모르는데, 왜 일본소설은 고등학교가 배경이 되고, 고등학생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지 모르겠다. 이것도 또 하나의 의문사항 추가!

 서장에서 주인공 니시하라의 여동생 하루미가 심장에 구멍이 생겨서 아프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있고, 이 이야기는 소설 전체에서 약간 붕 뜨는 이야기기 때문에 결국 사건의 근원적 동기나 범인과 동생과는 무언가 연관이 있겠다,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잠깐 사귀고 꽤 깊은 단계까지 갔던 미야마에 유키코의 죽음을 추적하던 니시하라는 뒤이어 일어난 미사키 선생님의 살해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된다. 유키코의 죽음에 대한 책임 그리고 미사키 선생님의 살해 용의자 누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니시하라는 사건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추적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두 번의 죽음과 한 번의 사고가 있었지만, 결국, 범인은 없다.  첫 번째 죽음이었던 유키코는 이유야 어찌 되었던 사고사였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조금 어이없게도 자살로 판명되었다. 이 부분이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12킬로짜리 아령을 동원하면서까지 굳이 교실 한 복판에서 줄을 연결하고 자살을 하려는 미사키 선생님의 의도가 잘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화끈하게 살인사건(?)으로 처리해버려도 좋았을 죽음이었는데.....

 그리고 이 모든 사건 이면에 숨겨진 니시하라와 히로코의 관계. 나는 이렇게 사건을 벌여놓고, 아픈 동생과 어떻게 연관을 짓나 했더니 의외로 니시하라와 히로코의 훈훈한 우정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니시하라가 의심받는 내내 함께한 가오루와 가와이의 우정도 있었고. 그래서 제목이 '동급생'인가?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작가의 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사를 너무나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 세 권에서 모두 교사가 등장하지만, 전부 뭐랄까 비호감 캐릭터로 나온다. 소심하고 능력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고, 사욕으로 가득 찬... 그런 류의 인간...... 무언가 트라우마가 있는 걸까. 어떤 기억들이 작가에게 그런 느낌을 심어준 것일까.

 그런 작가의 의식이 담겨있는 탓인지 이 책 <동급생>에서도 학교측의 교사들은 정의보다는 자신의 체면과 학교의 이미지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한심한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통털어서 교사에 대해 그닥 부정적인 기억이 없다. 성장과정에서 나를 서운하게 하거나, 분노하게 했던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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