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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평점 :
권지예씨의 가장 첫번째 소설집인 듯 싶다. 아마도 대부분 프랑스에 체류할 무렵에 쓰여졌나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편의 단편들이 전부 얼마간은 이국적인 색채를 머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소설들이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불륜과 이국적인 색채, 이 두가지고 이 소설집을 아우르는 가장 주요한 코드인듯 싶다.
그녀의 글은 재미있고 또 잘 읽힌다. 플롯들도 대부분 완성미가 있는 것들이어서 다 읽고 나서 '애걔, 그래서 이게 뭐야?'하는 식의 허탈감을 안겨주는 소설들이 적다. --->이건 정말이지 엄청난 미덕이다. 요즘 작가들이 너무 김빠진 소설들을 써대는 분위기에 비하자면. 나는 늘 플롯이 훌륭한 소설들이 좋다.
어쩌면, 그녀가 요즘 팔리는 책들의 기호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매혹적이면서도 이국적인, 그리고 조금은 위험한 여자들의 이야기들. 그녀의 소설들 속엔 절대로 구질구질하고 질퍽한, 무언가 아줌마스러운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외롭고 슬프지만 그 슬픔마저도 왠일인지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아마도 그녀의 감성적인 문체 탓이리라.
소설들 전체에 흐르는 몽롱하면서도 이국적인 외로움들이 좋다. 생의 이면을 아프게 들춰낼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을 하는 인물들을 엿보는 내내, 나는 그들에게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소설들을 만난다는 것. 예전엔 몰랐는데,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 읽다가 왠일인지 지루해져서 한쪽 편으로 미뤄두고 있는 소설집들이 꽤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이국의 외로움 속, 무모하리만큼 돌발적인 사랑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여자들, 그것은 충분히 절망적인 생의 또 다른 표현은 아닐런지. 결국, 그렇게 사그라져가는 삶의 생생한 순간들, 순간들. 그 안에서 그녀들은 좀 더 자유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