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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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훌쩍 넘어 키가 자라도, 발목을 훤히 드러낸 교복 바짓단에 몸을 떨고 마는 열여덟의 아이들은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 합격과 불합격, 사회에 제대로 진입하느냐 낙오되느냐의 경계에 시험당하는 시기다. 화장을 하고 술을 마셔대는 성인, 스무 살의 나이가 되어서도 다르지 않다. 경계선 위의 아이들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지독한 불안은 우정의 그룹 안에서 해소되곤 한다. 그 속에서 균형 있게 자신의 자리를 버티고자 노력하며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팽팽한 균형을 위해 아이들은 또 다른 경계, 진실과 거짓 사이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룹의 기준에 맞게 자신을 제단 하고, 스스로 제 마음속 진실을 가두고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흐트러짐 없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쓰쿠루의 무리가 내세운 첫 번째 규칙은 ‘사랑 금지’였다. 그들은 본능적인 감정 앞에 모두 거짓말을 해야 했다. 둘이 아닌 다섯의 조화를 위해, 쓰쿠루 역시 시로와 구로를 이성(異性)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구속마저 기쁠 만큼 쓰쿠루는 운명처럼 모인 다섯의 그룹을 사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이 내세운 두 번째 규칙은, ‘쓰쿠루 금지’였다. 시로의 거짓말은 그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진실이 되었다. 시로를 지켜야한다는 이유 저편에는 나고야에 남은 무리 속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한다는 이기심이 있었다. 냉정하고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다자키 쓰쿠루(430p)니까, 무리의 따뜻함에 안주하며 나고야에 남은 약해빠진 우리 넷보다는 잘 버텨낼 거라는 자기 합리화로 쓰쿠루는 영문도 모른 채 박탈당한다.  

 

 나고야를 오가던 쓰쿠루와 달리 예민한 시로는 완벽했던 5각이 4각으로, 4각에서 또다시 5각으로 변형되는 과정의 균열을 바로 곁에서 느꼈다. 그리고 쓰쿠루가 도쿄로 떠났을 때 느낀 공허에 자신도 몰랐던 ‘사랑’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곧 그룹의 죽음이었다.   모래성처럼 푸석거리기 시작한 그룹이 규칙을 깨버린 자신 때문에 완전히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 결국 시로는 역으로 진실을 아예 뒤엎는 망상에 빠졌다. 그리고 영원한 ‘쓰쿠루 금지’를 몸소 해냈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불안정을 지켜내려 했던 시로의 마지막 발악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쓰쿠루는 쿨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 색채 없는 이름조차 외로워하며, 떳떳한 일원으로 머물고 싶어 하던 쓰쿠루다. 그는 큰 충격 속에 사건의 진실과 자신의 마음까지 꽁꽁 가둬버렸다. 트라우마는 그를 진실에 아예 등을 돌린 파수꾼으로 만들었다. 하이다 마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떠나자 꿈속의 무의식까지 끌고 와 자책하는 동안 트라우마는 더욱 짙어졌다. 그 후 10년 간 진심 없는 가벼운 만남만 지속한다. 그는 칼날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수록, 이별 뒤에 쏟아져 나올 피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 미리 두려워했다.  

 

 기억은 달라져도, 역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을 죽음까지 몰고 간 절교가 제 탓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색채를 믿지 못한다. 쓰쿠루의 역사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 그들이 감추고자 했던 진실, 그리고 거짓으로 끌어안은 무리는 결국 쓰쿠루와 시로 그리고 운명 같던 다섯의 무리마저 지키지 못했다.  

 

 경계선 위의 파수꾼은 그렇게 각자의 어른이 되었다. 나고야에 머물며 세상에 거짓 아부를 던지거나, 도자기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삶에 따라 경계선을 넘어섰다. 그때, 그들이 시로를 믿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다면 그들의 세상은 더 좋게 변했을까. 관계 속 진실과 거짓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만큼, 결과 역시 쉬이 예측하기 어렵다. 어쩌면 세상은 손톱 아니면 발톱을 뽑아야하는 나쁜 패만 가득할지 모른다. 패를 고를 수 있는 자유, 경계선 위에서 발을 뻗는 의지 그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경계선 위에서 손톱을 뽑을 것이다. 선택의 상처도 새 살도 내 눈과 가까운 곳에서 피하지 않고 돌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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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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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팅, 비밀을 가진 모든 자들의 보험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SNS로 사생활이 전시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진짜 사생활을 그곳에 올리는 이는 없다. 오히려 SNS에 올린 사진을 통해 자신의 속내는 꽁꽁 감추고 포장하는 느낌이다. 비싼 스테이크 사진을 보란 듯이 올렸을지언정, 그 뒤 화장실을 수 십 번 오고 간 속사정은 감춰야 한다. 그럴듯한 삶 이면에는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비밀, 내가 죽는 순간 나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져가길 바라는 것들을 딜리터에게 대신 부탁하는 것이다.  딜리팅이란, 나와 함께 무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이다.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가 고객이 되는 사업, 실제로 찾아가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한번쯤 바라고 찾는 이상의 보험이 아닌가. 소재부터 탁월하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오규원의 <죽고 난 뒤에 팬티>다. 어차피 죽고 나면 수치심을 느낄 수도 정신도 살아있지 않는데 주검이 되어 발견되는 순간 내가 입고 있는 팬티의 상태를 신경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육체는 죽어 없어지지만, 나를 아는 이들의 삶 속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렇기 때문에 조그만 흔적까지 되돌아보며, 남겨진 자신의 모습에 흠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지갑 속에 숨겨둔 첫사랑의 사진 또는 치기어린 시절 써내려간 부끄러운 연애편지 등 팬티처럼 소소한 것들은 '자신의 비밀'로 존재할 때는 무덤을 박차고 나오고 싶을 만큼 커다랗게 불어나는 법이다. 

 


 
비밀은 돈으로 거래될 수 있는가

 

 

 하지만 비밀은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돈으로 뭐든 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텍스트 속에서 자본을 가진 자는 초반에는 떵떵거리다 후반부에는 정의나 사랑 같은 추상적인 것에 막혀 좌절됨으로써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은 아닙니다.”라는 교훈을 주곤 한다. 이 책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비밀이라는 추상은 물질적인 거래로 완벽히 제거될 수 없다. 비밀이 가지는 속성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므로, 결국 타인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꺼란 말이야, 전부. 전부 다 빨리 내놓으라고.(242)
아빠 소유이기도 하고 제 소유이기도 하잖아요.(282)

 

 정소윤은 배후세력을 쫓는 구동치와 서사를 조립하느라 바쁜 독자를 잠시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품고 있는 인물이다. 정소윤은 비밀이 결코 혼자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네가 감춰놓은 보따리에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보물이 들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구동치는 정소윤을 철없이 바라보지만 김인천의 죽음 뒤엔 그녀의 말을 곱씹게 된다.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비밀은 의뢰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눈을 감았던 구동치는 자신의 일이 ‘퐁당’ 소리와 함께 제 2의 김인천을 죽게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는 우물 속에다 돌멩이를 던졌기 때문에 '퐁당'이라는 소리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384)

 

 

 

월요일이던 그림자는 찢겼다

 

 비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딜리팅을 약속했지만, 구동치는 무덤 속이 아닌 자신의 캐비닛에 비밀을 이사시킴으로써 임무를 마무리한다. 그저 다른 세계에 영속된 비밀은 언제나 돌아오는 월요일처럼 기나긴 그림자를 끌고 엉뚱한 사람의 발끝을 휘감아 붙잡을 지도 모른다. 

 

당신도 뭔가 잃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오. (416)

 

 구동치는 마지막 일을 수행하며 비밀을 가득 담던 패딩 점퍼를 바다에 던진다. 누군가의 비밀이 삭제됨으로써 누군가에겐 소중한 것이 사라지게 될 때, 그 보상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비밀을 없애는 자가 가져야 할 책임,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구동치는 패딩 점퍼를 던지며 딜리팅을 관둔다.

 

그림자를 남겨두고 가는 기분이었다. (398)

 

 구동치에게 돌려받은 사진을 뽑아 인화하며, 돌아서는 길에 정소윤은 하얀 눈이 쌓인 길가에 냅다 드러누우며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마치 그림자처럼 새겨진 실루엣은 언젠가 다시 내린 함박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에게 전해진 사진은 누군가의 비밀이었고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달력을 넘기면 격주로 돌아오는 월요일이 아니다. 칸 마다 텅 빈 캐비닛과 버려진 패딩점퍼. 그는 그렇게 딜리팅의 기록을 딜리팅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그러나

 

 의미심장한 제목, 독특한 소재에 비해 서사방식은 전형적인 추리물이다. 하나의 사건과 감춰진 배후세력을 추리해가는 과정, 드러나는 악의 무리들,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고 떠난 동료 형사의 죽음, 사건의 마무리 그리고 직업에 대한 회의. 어찌 보면 진부하지만, 그만큼 많이 익숙해져있는 장르문법은 오히려 대중의 입맛에는 탁월하게 들어맞다. 

 

 흥미로운 사건과 다양한 인물 덕분에 독자는 서사를 쫓아가느라 바빠진다.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서사가 움직인다기보다, 서사의 흐름 사이사이에 메시지가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눈에 띄게 불거진 메시지는 허리 숙여 줍기 쉽고, 굳이 땅을 파내거나 깊은 사유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땀을 식힐 여운은 조금 줄어들지 모른다. 재미있는데다가 사회적 메시지도 있으니,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 600만 돌파를 앞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나는 지금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 그저 그런 대중소설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맨부커상 후보작을 고르는 기준에 ‘가독성’을 내세워 일대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가독성이 문학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많은 평론가들이 앞 다투어 의견을 냈다. 나는 최근 누보로망의 대표작인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읽었다. 가독성 점수를 주자면 5점 만점에 –5점을 줄 정도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이 싫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좋았다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좋은 문학의 기준에 ‘가독성’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잘 읽었다는 말에 ‘가독성’은 큰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대중적인 요소가 곳곳에 감초처럼 들어있어 단숨에 읽기 쉽다. 간혹 ‘대중적’이라는 말을 ‘상업적’과 같은 말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대중적일지 몰라도 결코 상업적이지는 않다. 김중혁은 늘 쓰던 대로 매력있는 문체로 이야기를 풀었으며, 그 이야기의 장르가 ‘추리’였고, 그 소재가 모든 이의 공감을 부르는 ‘비밀’이었다. 목적이 아닌 결과가 대중을 향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다. 최근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밌다. 두번 더 읽고 싶어지는 책이며,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쉽게 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심심풀이는 아니다. 책이 던진 '비밀'이라는 키워드에 뻗어나오는 사유는 꽤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이 소재로 또 다른 텍스트를 맛볼 수 있기를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중혁의 다음 작품 역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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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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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내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

  

 

 

 3월 말, 아직 미련이 남은 겨울 공기가 방안을 서늘히 감싸던 그 무렵 나는 아주 특별한 과제를 수행 중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나만의 글로 기록하는 인터뷰 과제였다. 인터뷰 대상은 누구라도 상관 없었다. 나는 대상을 정하기 위해 머릿 속을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가상으로 그려보았다. 고심 끝에 한 명 앞에 멈추어 섰다. 나는 손을 잡았다. 네 인생이라면 그럴듯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6년 째 사귀고 있는 친구였다. 그 중 4년은 멀리 떨어져 지내며 일 년에 한 두번 얼굴을 보고, 한 달에 한 두 번 연락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친구와 깊숙이 연결돼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의 경우는 어떨 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렇다. 말그대로 나는 그와의 관계를 자부(自負)한다. 그를 친구로서 매우 사랑하고, 일상과 떨어진 세계에 머무는 듯한 그의 자유를 동경했다. 그가 내 친구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그는 학교의 규칙이나 교육 시스템 전반에 불만이 많았다. 눈에 띄는 반항아는 아니었으나, 조용히 경계선 위에 앉아 안쪽 세상을 관조하는 타입이었다. 그와 친구가 되려면 나 역시 경계선에 발을 딛어야했다. 꽤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해오던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었다. 우리는 수업이 듣기 싫을 땐 뒤로 나가 연습장에 낙서를 하며 놀았고, 야자 시간 중간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달을 보며 종종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원에서 나눠주는 공책을 주욱 찢어 한 바닥을 가득 채운 편지를 수없이 주고 받았다. 그는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나는 영화와 노래를 좋아했다. 우리는 익숙지 않았던 영역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었다. 생일선물을 주고 받고 급식을 같이 먹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그런 친구였다.

 

과제를 위해 5일 가까이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갓난아기때부터 유치원 시절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않고 그가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들었다. 인생을 논하기엔 파릇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시간은 느리고 지독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불편한 가정사, 내팽개쳐진 사춘기, 예상치 못한 자유 아래 그는 삶을 버텨왔다. 그는 하수구 같은 세상을 가리키며 욕하길 좋아했지만, 그로 인해 토악질을 하는 모습은 내비친 적이 없었다. 나는 가시지 않은 추위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뒤늦게 그로부터 덤덤한 표류기를 전해 듣게 된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 사실 강에 빠져 죽으려고도 했어. 나는 대꾸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파울은 베른하르트의 삶을 지탱해준 사람이다. 죽음을 갈망하는 원인 따위를 분석해 병명을 붙이는 것이 아닌, 베른하르트 속에 있는 광기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바닥난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천재와 광기의 경계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정신병'을 "자기 삶의 내용" 또는 "예술"로 발전시켰다. 상업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예술 아래 그들은 가식적인 포장을 뜯어내며 '진짜'를 찾는 여정과 대화를 나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정상을 욕하는 그들은 비정상이 되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지만 둘은 혼자가 아니기에 더 당당할 수 있었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을 정말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죽어가는 순간을 차마 곁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아마 베른하르트는 반짝이던 그가 죽음의 그림자 아래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지않았을 것이다. 결국 베른하르트는 파울의 죽음을 외면한다. 장례식에서 연설을 해달라던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기록했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건 그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광기를 천재성으로 향상시켜준 그의 업적에 따라, 글로써 그 연설을 대신한다. 그가 말한 것 처럼 200명의 사람은 무덤에 모이지 않았으나, 베른하르트는 그를 알지 못한 전세계인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더불어 그의 삶을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울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하지만, 그만큼 폭력적인 수식이다. 한 개인에게 '유명인의 친척'이라는 존재성을 부여하는 순간 대중이 보내는 선입견의 감옥에 갇혀야한다. 정작 파울은 비트겐슈타인과 단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하더라도. 그 수식으로 인해 파울은 쉽게 재단되고 비교 우위 아래 조롱 받는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이 비트겐슈타인 만큼 혹은 비트겐슈타인보다 더 뛰어난 철학적 지식을 파울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은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유명세를 통한 흥미유발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온다. 하지만 결국 책을 덮었을 때 파울은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아닌 독립된 한 명의 개인으로 남게 된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을 누군가의 조카가 아닌, 나의 소중한 친구, 나의 정신적 동반자, 무엇보다 '파울'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나는 과제를 통해 내 친구를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나는 최대한 나의 시선이 아닌, 그의 모습 그대로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 내가 느낀 그의 모습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애쓴 점도 있다. 그걸 포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몇 안되는 분량에 그를 나타내기위해선 인위적 편집이 불가피했다. 베른하르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를 책 속에 녹여내고, 그의 마지막 유언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때론 그의 또라이같은 면을 더 부각시켰을 지 모른다. 결국, 이 책 역시 베른하르트의 기억과 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울의 모든 면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무덤 속 '파울'이 베른하르트의 어깨를 다독이지 않을까. 꽤 들을만한 연설이었네, 친구!

 

 여전히 그는 파울이라는 이름 대신 '비트겐 슈타인의 조카'라는 수식으로 더 많이 불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그 수식은 선입견의 감옥이 아닌 편의상의 수식으로 남았을 뿐, 그렇게 우리는 파울을 알게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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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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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길을 걷다 눈앞으로 오토바이가 스쳐간다. 그 바람에 옷자락이 휘날릴 정도다. 불쾌한 굉음이 흩어지며 떠난다. 너는 죽을 뻔 했네 말하며 다시 가쁘게 걷는다. 3분 후면 지하철이 도착한다. 놓치면 그대로 지각이었다. 너는 눈앞에서 차를 놓친다. 지하철에서는 ‘그’가 옆 병실에서 첫 번째 죽음을 목격했다. 12층을 오를 엘레베이터를 놓친다. 난간을 붙잡고 기어가며 읊조린다. 죽을 것 같아. 수업을 마치고 순환 버스 안에서 납작 찌그러진 채 또 한 번 토해낸다. 딱 죽겠다. 너는 오늘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뉴욕 맨해튼 폭발 사망자가 7명으로 늘어난 것을 본다. 밥알을 씹어 삼킨다.

 

너는 경주 리조트 사건이 터졌던 밤, 잠들 수 없었다. 너는 일어나 물 두 모금을 마셨고, 그동안 두 발자국 더 죽어가고 있을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언젠가 버스에 앉아 바라봤던 반대 차선의 소방차를 떠올리며 너는,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너는 사망자 명단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그 자리에 새기는 악몽을 꿨다. 그날부터 너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걸음마를 일찍 뗀 너는 바퀴벌레를 보고 도망치다 넘어져 머리가 찢겼다. 수건 하나를 새빨갛게 적셨지만 죽지 않았다. 모닥불에 엎어져 손을 태우기도 했다. 한 달 동안 너는 유치원에서 유일하게 교정 받지 않는 왼손잡이였다. 아토피가 심해 죽고 싶었다. 30도가 넘는 날씨, 넌 진득한 붕대를 감고 누워 아프지 않게 혀를 깨물어봤다. 새로운 하복으로 갈아입고 등교했던 아침에 너는 옆 반에 놓인 국화꽃 하나를 보게 된다. 짝지가 말했다. 아파트에서 떨어졌대.

 

죽음의 기억은 추억이 되지 못한다. 너는 한동안 죽음의 단상들이 뻗어낸 가지들에 찔렸다. 두려움은 어느새 굳은살이 되어, 어느 순간 너는‘죽을 뻔 했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뉴스에도 무심한 척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너는 머리카락을 헤집어야 찾을 수 있는 흉터를 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너는 죽음의 테두리를 만지듯 민둥한 자국을 짚어냈다. 위장된 버릇은 오래된 습관을 이길 수 없었다. 너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어려서부터 병은 늘 그를 따라왔다. '그냥 오는 대로,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젊은 날의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늙어서는 통하지가 않았다. 늙어버린 그는 삶에 대한 갈망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는 어떻게든 견디어야 했다. 혼자 하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이제부터 정말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그는 지난 날 자신을 오고 간 많은 사람을 훑는다. 그리고 순간, 억울해 지쳐버렸다.

 

피비에게 마비가 왔다.젊은 날을 함께 한 동료 중 한 명은 정신이 상했고, 한명은 죽었다. 그는 죽음이 가지는 현실과 더욱 가까이 마주쳤다. 그리고 오히려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이 부당해서가 아닌, 그저 열여덟로 돌아갈 수 없기에 우는 부인을 만난다. 남편의 질책에 그는 부인 대신 혼이 났다. 부모님의 무덤, 여전히 존재하는 그들의 뼈를 보며 사라지는 것의 두려움을 위로받는다. 무덤 파는 남자를 긴 시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사라졌다.

 

죽음의 두려움은 죽어서야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죽음의 전에 만난 늦지 않은 마주침. 그것은 죽음은 모든 평범한 이에게 찾아온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였다. 예상치 못한 죽음은 어제도 오늘도 쏟아진다. 죽음의 폭격 아래 안전지대란 없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것, 결국 '그냥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너는 아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서둘러 죽음의 진리를 새기며 초연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는 아직 젊다. 너에게 그런 마주침은 조금 더 늦어도 괜찮다. 다만, 너는 조금 달라진다. 너는 죽음에 애써 태연한 척하지 않고 그대로 슬퍼할 것이며, 죽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살아 있다는 말에 익숙해질 것이다. 느려도 괜찮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조급해 할 일이 있다. 언젠가 그의 모습이 될 너의 아버지를 위해, 한 걸음 더 마주쳐야 함은 벌써 조금은 늦어버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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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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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졸업을 1년 앞둔 한 여대생은 요즘 ‘왜?’라는 주위의 물음에 시달린다. 국어국문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이번 해에 문예창작을 복수전공으로 택하였기 때문이다. 국문과의 존폐 위기에 각종 매스컴이 떠들어 대는 시점에서 경영도 아닌 문예창작이라니. 부모님, 친구들, 친척 오빠까지 그녀를 향해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순수한 물음의 ‘?’가 아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에 가까운 질문이다. 그녀는 1년 가까이 고민해왔던 자신을 위한 선택임에도 괜스레 몸이 움츠러든다. 왜, 나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 안 돼?

 

 

20대여, 쫄지 말고 상상해봐. 혁명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2009.9)의 저자 우석훈은 20대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가슴 시리도록 현실적인 이름을 달아준 이다. 그가 앞서 저술한『88만원 세대는 사회과학 출판 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숫자가 놀라운 것은, 책을 기피하는 20대들이 40%의 구매층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과 '미친 세상'에 쿨 한 척 고개를 돌리다가도, 결국 자신이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답함을 『88만원 세대를 통해 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88만원 세대는 여느 사회과학 서적이 그렇듯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저자가 젊은 감각으로 친근하게 써내려갔지만,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경제학 용어 때문에 한 번에 책을 완주해내기는 어렵다.

그러한 이유인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88만원 세대의 속편 격인 책이 나왔지만, 전보다는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유행을 타듯 우후죽순으로 나온 '청춘 위로 마케팅'의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문제의 개선방향보다는 '자기 계발서'에 그친 수준이었다. 결국 책은 자신들의 현실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회의가 20대들을 점령했고 청춘마케팅의 유행은 점차 식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시금 책을 놓고 시니컬해진 20대에게 출간된 지 4년이 지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그 답을 던지고 있다. 당신들이 바꾸고자 하는 현실과 문제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혁명'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88만원세대 새판 짜기. 제목과 부제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88만원 세대가 20대를 관찰하고 그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붙을 수밖에 없는 시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자신이 이름 붙인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그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야말로 조용히 '혁명'을 준비함으로써 88만원 세대의 새판을 짜는 책이다.
 

 

무기력한 20대, 추해서 못 참겠다

 

 이 책은 제일 먼저 20대들이 ‘혁명’을 꿈꿀 수 없는 이유와 무기력해진 그들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을 제시한다.

 90년대 말, 케인스 시대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가 시대적 대세로 떠오르면서 대기업의 CEO가 새로운 ‘영웅’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역시 IMF 이후 본격적인 CEO 찬양 시대가 열리더니, 08년도 대선 때 이명박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금의 20대는 이처럼 CEO가 영웅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시기에 10대를 보냈다. 학벌주의와 빈부격차가 따라오는 사교육을 볼 때 신자유주의는 어떤 선진국보다도 뼈저리게 체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20대는 경쟁 안에 갇혀있다. 경쟁에서 실패한 20대 혹은 여전히 경쟁에 시달리는 20대 모두 사회적 존재감은 매우 낮고, 그들에게 집단적으로 무엇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이들을 움직일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원동력을 ‘간지’에 목숨을 거는 20대들의 특성에서 바라본다. 이는 한예종 학생들이 든 ‘추해서 못 참겠다.’라는 피켓과 ‘옳다/그르다’의 접근이 아닌 ‘싫다/보기 싫다’라는 말로 이명박 시대에 몸서리쳤던 20대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못 참는 20대들의 감성에서 ‘혁명’의 씨앗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陣) 짜는 법, 친구들아 모여라

 

 다음으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는 이러한 20대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존재감 있는 세대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가장 큰 맥락은 20대 스스로 그 방향에 참여하는 ‘당사자 운동’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저자는 20대가 짤 수 있는 진의 형태를 추측한다. 80년대 대학생들은 교문 돌파를 위해 펼쳤던 직사각형의 가투 진을 짰지만 지금 20대들에게는 어떠한 진도 없다. 오로지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한 자신들만의 진(陣), 즉 ‘스펙 쌓기’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진들은 커다란 사회 구조 앞에서 무기력하다. 국가 재정 활용 방안에 20대를 고립시키고 20대 신입사원들의 월급을 깎아도 속수무책이다.

 

 이들의 진(陣)은 어떻게 짜일 수 있을까. 20대에게 유신세대의 상명하복 소통 구조와 386세대의 ‘결정되었으면 따라야지’라는 민주집중제는 어울리지 않는다. 권위를 앞세워 이끈다고 이끌려 가는 세대도 아니며, 다 같이 모여 의견을 모으지도 않는다. 긍정적으로 이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싹틀 수 있는 터가 20대에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수평적인 진. 저자가 말하는 20대의 진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陣)을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진(陣)을 만들어 낼 20대 영웅이 등장하기엔 사회는 너무나도 부패하여있으며, 강남/비강남 수도권/비수도권의 구도 아래에서 20대들은 서로가 공동의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20대들의 진(陣)을 구축하기 위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찾는 것을 첫 번째로 본다. 누군가 진(陣)을 만들어보자고 나설 때, 그를 ‘엄친아’나 질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수평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로 바라봐주는 것.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때 혁명을 위한 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혁명은 어떻게? 조용히

 

 현실적인 해결방안으로 저자는 시민운동과 정치운동, 그리고 노조설립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시민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를 후원하고 활동가를 길러 내는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형이든 개별적인 별도의 조직이든, 시민운동이 확대될 때 이는 혁명이 된다. 정치 운동은 작은 공간에서 출발하여 정당을 활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내세운다. 지역의 20대가 당사자 조직을 꾸리기 위해서는 기초의원 선거부터 출마하여 지역에 뿌리를 둔 실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곳곳에 널린 ‘알바’들이 자신들의 노조를 구축할 때, 이들의 운동은 대리인 운동인 동시에 당사자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20대 혁명의 모델로 68운동과 차티스트 운동을 세운다. 그는 20대의 혁명이 68혁명의 은유를 유지하되 차티스트의 운동과 같이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과 입법을 포함한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권리 선언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권리들을 제시한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큰 틀과 함께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발이 들었던 이들에게 친절한 매뉴얼을 건네주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제시한 방안이 지금의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이뤄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때문에 이 책은 '그럼에도' 현실을 타파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무기력한 20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라며 기를 죽이지도, 자신감을 사디슴 적으로 주문하지 않는다. 20대를 이해하고 관찰하여, 그들의 혁명이 가능하게끔 원동력을 끄집어내 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진(陣)도 리더도 아닌 20대들이 서로 부대끼며 지낼 수 있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당장 큰 변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엄친아’라며 누군가를 배척하지도, 나는 SKY대고 너는 지잡대야, 라며 저들끼리의 계급을 나누지 않고 20대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서로가 우정을 회복하는 것. 그러한 조용한 혁명에서부터 세상을 바꿀 혁명은 이루어질 수 있다. 20대의 ‘혁명’을 통해 그가 이뤄내고 싶어 하는 세계 역시 소박하다. 

 

 20대가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그는 불신 지옥의 대학에서 한방의 취업을 노리는 고독한 저격수가 아닌, 명랑하게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20대의 세상을 꿈꾼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왜?’라는 물음에 시달리는 국문과 여대생을 포함한 수많은 20대에게 이러한 말을 전한다.

 

쫄아있는 ‘당신들’, 혁명을 꿈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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