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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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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팅, 비밀을 가진 모든 자들의 보험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SNS로 사생활이 전시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진짜 사생활을 그곳에 올리는 이는 없다. 오히려 SNS에 올린 사진을 통해 자신의 속내는 꽁꽁 감추고 포장하는 느낌이다. 비싼 스테이크 사진을 보란 듯이 올렸을지언정, 그 뒤 화장실을 수 십 번 오고 간 속사정은 감춰야 한다. 그럴듯한 삶 이면에는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비밀, 내가 죽는 순간 나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져가길 바라는 것들을 딜리터에게 대신 부탁하는 것이다.  딜리팅이란, 나와 함께 무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이다.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가 고객이 되는 사업, 실제로 찾아가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한번쯤 바라고 찾는 이상의 보험이 아닌가. 소재부터 탁월하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오규원의 <죽고 난 뒤에 팬티>다. 어차피 죽고 나면 수치심을 느낄 수도 정신도 살아있지 않는데 주검이 되어 발견되는 순간 내가 입고 있는 팬티의 상태를 신경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육체는 죽어 없어지지만, 나를 아는 이들의 삶 속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렇기 때문에 조그만 흔적까지 되돌아보며, 남겨진 자신의 모습에 흠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지갑 속에 숨겨둔 첫사랑의 사진 또는 치기어린 시절 써내려간 부끄러운 연애편지 등 팬티처럼 소소한 것들은 '자신의 비밀'로 존재할 때는 무덤을 박차고 나오고 싶을 만큼 커다랗게 불어나는 법이다. 

 


 
비밀은 돈으로 거래될 수 있는가

 

 

 하지만 비밀은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돈으로 뭐든 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텍스트 속에서 자본을 가진 자는 초반에는 떵떵거리다 후반부에는 정의나 사랑 같은 추상적인 것에 막혀 좌절됨으로써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은 아닙니다.”라는 교훈을 주곤 한다. 이 책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비밀이라는 추상은 물질적인 거래로 완벽히 제거될 수 없다. 비밀이 가지는 속성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므로, 결국 타인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꺼란 말이야, 전부. 전부 다 빨리 내놓으라고.(242)
아빠 소유이기도 하고 제 소유이기도 하잖아요.(282)

 

 정소윤은 배후세력을 쫓는 구동치와 서사를 조립하느라 바쁜 독자를 잠시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품고 있는 인물이다. 정소윤은 비밀이 결코 혼자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네가 감춰놓은 보따리에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보물이 들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구동치는 정소윤을 철없이 바라보지만 김인천의 죽음 뒤엔 그녀의 말을 곱씹게 된다.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비밀은 의뢰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눈을 감았던 구동치는 자신의 일이 ‘퐁당’ 소리와 함께 제 2의 김인천을 죽게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는 우물 속에다 돌멩이를 던졌기 때문에 '퐁당'이라는 소리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384)

 

 

 

월요일이던 그림자는 찢겼다

 

 비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딜리팅을 약속했지만, 구동치는 무덤 속이 아닌 자신의 캐비닛에 비밀을 이사시킴으로써 임무를 마무리한다. 그저 다른 세계에 영속된 비밀은 언제나 돌아오는 월요일처럼 기나긴 그림자를 끌고 엉뚱한 사람의 발끝을 휘감아 붙잡을 지도 모른다. 

 

당신도 뭔가 잃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오. (416)

 

 구동치는 마지막 일을 수행하며 비밀을 가득 담던 패딩 점퍼를 바다에 던진다. 누군가의 비밀이 삭제됨으로써 누군가에겐 소중한 것이 사라지게 될 때, 그 보상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비밀을 없애는 자가 가져야 할 책임,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구동치는 패딩 점퍼를 던지며 딜리팅을 관둔다.

 

그림자를 남겨두고 가는 기분이었다. (398)

 

 구동치에게 돌려받은 사진을 뽑아 인화하며, 돌아서는 길에 정소윤은 하얀 눈이 쌓인 길가에 냅다 드러누우며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마치 그림자처럼 새겨진 실루엣은 언젠가 다시 내린 함박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에게 전해진 사진은 누군가의 비밀이었고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달력을 넘기면 격주로 돌아오는 월요일이 아니다. 칸 마다 텅 빈 캐비닛과 버려진 패딩점퍼. 그는 그렇게 딜리팅의 기록을 딜리팅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그러나

 

 의미심장한 제목, 독특한 소재에 비해 서사방식은 전형적인 추리물이다. 하나의 사건과 감춰진 배후세력을 추리해가는 과정, 드러나는 악의 무리들,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고 떠난 동료 형사의 죽음, 사건의 마무리 그리고 직업에 대한 회의. 어찌 보면 진부하지만, 그만큼 많이 익숙해져있는 장르문법은 오히려 대중의 입맛에는 탁월하게 들어맞다. 

 

 흥미로운 사건과 다양한 인물 덕분에 독자는 서사를 쫓아가느라 바빠진다.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서사가 움직인다기보다, 서사의 흐름 사이사이에 메시지가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눈에 띄게 불거진 메시지는 허리 숙여 줍기 쉽고, 굳이 땅을 파내거나 깊은 사유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땀을 식힐 여운은 조금 줄어들지 모른다. 재미있는데다가 사회적 메시지도 있으니,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 600만 돌파를 앞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나는 지금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 그저 그런 대중소설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맨부커상 후보작을 고르는 기준에 ‘가독성’을 내세워 일대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가독성이 문학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많은 평론가들이 앞 다투어 의견을 냈다. 나는 최근 누보로망의 대표작인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읽었다. 가독성 점수를 주자면 5점 만점에 –5점을 줄 정도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이 싫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좋았다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좋은 문학의 기준에 ‘가독성’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잘 읽었다는 말에 ‘가독성’은 큰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대중적인 요소가 곳곳에 감초처럼 들어있어 단숨에 읽기 쉽다. 간혹 ‘대중적’이라는 말을 ‘상업적’과 같은 말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대중적일지 몰라도 결코 상업적이지는 않다. 김중혁은 늘 쓰던 대로 매력있는 문체로 이야기를 풀었으며, 그 이야기의 장르가 ‘추리’였고, 그 소재가 모든 이의 공감을 부르는 ‘비밀’이었다. 목적이 아닌 결과가 대중을 향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다. 최근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밌다. 두번 더 읽고 싶어지는 책이며,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쉽게 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심심풀이는 아니다. 책이 던진 '비밀'이라는 키워드에 뻗어나오는 사유는 꽤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이 소재로 또 다른 텍스트를 맛볼 수 있기를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중혁의 다음 작품 역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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