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과 복음서들이 쓰인 시점 사이에 긴 공백이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복음서들이 과연 역사의 믿을 만한 길잡이인지를 의심할 한 가지 이유를 제공한다. 또 하나의이유는 복음서들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다. 예수를 따라다닌12명의 제자가 있었다는 데는 모든 복음서가 일치하지만, 그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 P44
복음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따른 또 다른 문제는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려는 집착이다. 특히 <마태오의복음서>가 그렇다. 마태오가 단지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사건을 지어내 자신의 복음서에 적어 넣는 일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지 않은가. 가장 눈에 띄는 예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을 때 처녀였다는 전설을 지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전설은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불어났다. 마태오는 어떻게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그의 약혼녀 마리아가 다른 남성이 아닌 신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라고 요셉을 안심시키는지 이야기한다(루가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직접 나타난다).어쨌든 마태오는 조금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독자들에게 뻔뻔하게 말한다. - P45
마태오와 루가가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한 것도 예언을 실현하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구약>에 등장하는또 한 명의 예언자 미가는 유대인의 메시아가 ‘다윗의 도시‘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요한의 복음서>는충분히 합리적이게도, 예수가 그의 부모가 살았던 나자렛에서태어났다고 추정한다. 요한은 예수가 실제로 메시아라면 어떻게 나자렛에서 태어날 수 있는지 놀라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르코는 예수의 출생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하지만 마태오와 루가는 둘 다 미가의 예언을 실현하고 싶었고, 둘 다 예수의 출생지를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길 방법을 허둥지둥 찾았다. 불행히도 그들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 P47
<도마의 유년기 복음서>에 묘사된 놀라운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는 진흙으로 참새를 빚지도, 자신과 부딪친 소년을 죽이지도, 소년의 부모를 눈멀게 하지도, 목공소에서 각목을 늘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물 위를 걷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등 정경의 복음서들에 나오는 똑같이황당한 기적을 믿을까? 만일 <도마의 유년기 복음서>가 정경에 들어갔다면 사람들은 참새 기적이나 각목을 늘이는 기적도믿었을까? 아니라면, 이유가 뭘까? 382년 로마에 모인 주교들과 신학자들 덕분에 운 좋게 정경에 포함된네복음서는 뭐가그렇게 특별한가? 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가? - P56
이미 말했듯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예수가 실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 ‘예수‘는 여호수아 Joshua 또는 Yeshua 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라틴어 어형이다. 이것은 흔한 이름이었고, 떠돌아다니는설교자도 흔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라는 설교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이 많았을 가능성도 있다. 믿을 수 없는 대목은 그들 중 누군가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또는 진흙으로 참새를 빚고), 물 위를 걷고(또는 각목을 늘이고), 처녀로부터 잉태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런 걸믿고 싶다면 지금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증거를 찾는 게좋을 것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했듯 "비범한 주장에는비범한 증거가 필요하다". 세이건은 아마 유명한 프랑스 수학자라플라스에게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라플라스는 이렇게말했다. "비범한 주장에 필요한 증거의 무게는 그 주장의 이상함에 비례해야 한다." - P57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시조이고, 오늘날 세계 3대 일신교 신앙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창시자였다.하지만 그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아킬레스와 헤라클레스의경우처럼, 그리고 로빈후드와 아서왕의 경우처럼 진실은 알수 없고, 그가 실존했다고 생각할 확실한 이유는 전혀 없다. - P69
<성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권의 책 <전도서>와<아가>는 역사인 척하지 않는다. <구약>의 다른 책들, 예컨대<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 <역대기>는 역사인 척한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모세5경이라고 부른다(그리스도인은 펜타튜크Pentateuch, 유대인은 토라Torah라고 부른다). 모세가 그 책들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진지한 학자라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로빈후드와 그를 따르는 무법자 무리 또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처럼 모세5경에도 어떤 모호한 진실의 조각들이 묻혀 있을지모르지만, 거기에 실제 역사라 부를 만한 것은 전혀 없다. - P71
민족 전체가 노예로 살았던 것이나 몇 세대 뒤 대규모 이주를 한 것은 큰 사건이었다. 여러분은 그 정도로 큰 사건이라면 고고학 기록과 이집트 역사 기록에 흔적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가지 사건 모두 증거가전혀 없다. 유대인이 이집트에 포로로 잡혔다는 증거는 전혀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만, 그럼에도 그전설은 유대 문화에 깊이 새겨져 있다. <성경>에서 신이나 모세를 언급할 때, 그들의 이름 앞에는 흔히 "너희를 이집트에서이끌어낸 또는 이에 상당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 P72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많은 유대인을 수도 바빌론으로 잡아갔다(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부른다―옮긴이). 그로부터 약 60년 후 바빌로니아도 페르시아제국의 키루스 대왕에게 정복당했다. 키루스는 유대인이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허락했고,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했다. 바빌론 유수 동안, 또는 그즈음에 대부분의 <구약>이 쓰였다. 그러므로만일 여러분이 모세나 다윗, 노아나 아담의 이야기가 해당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믿는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구약>에 있는 역사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대부분 훨씬 더 나중, 그러니까 저자들이 기술하는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수세기 뒤인 기원전 600~500년에 쓰였다. - P75
그러면 <창세기> 첫 부분에 나오는 신화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노아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신화인 우트나피시팀전설에서 직접 유래했다. <창세기>가 바빌론 유수 때 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길가메시서사시>에 나오는데, 전설상의 수메르 왕 길가메시가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우트나피시팀으로부터 직접들은 대홍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빌로니아인은 수메르인처럼 다신론자였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바빌로니아 버전에 따르면 신들은 대홍수를 일으켜서 모든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신들 중 한 명인 물의 신 에아(수메르의 신 엔키)가 우트나피시팀에게 거대한 배를 만들라고 알려준다. 나머지 이야기는 노아 버전과 거의 같다. 방주의 자세한 모양과 치수를 꼼꼼하게 명시한 것, 모든 종류의 동물이 배에 오르는 것, 비둘기 · 제비 · 까마귀를 밖으로 내보내 물이 빠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방주가 산꼭대기에 멈추는 것 등등.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또 다른 홍수 신화에서는 노아 역할을아트라하시스라는 인물이 맡는데, 신들이 인간을 물에 빠뜨려죽이려 한 이유는 인간이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야기마다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 P76
아담과 이브 이야기, 노아와 방주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다. 교양 있는 신학자들 가운데 그것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78
에덴동산 이야기는 유대인의 창조 신화이다. 세계 각지의 수천 가지 창조 신화 중 유대인의 창조 신화가 그리스도교 성서인 《성경》에 포함된 것은 단순히 두 가지 역사적 우연 때문이다.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것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것이다. 노아 이야기와 달리 아담과 이브신화는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다. 재미있게도 그것은 중앙아프리카 숲속에 사는 키 작은 사람들인 피그미족의 창조 신화와 비슷하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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