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고객의 쇼핑 패턴은 언제부터 연구되기 시작했을까? 이른바쇼핑의 과학science of shopping이라 불리는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인바이로셀Envirosell의 최고경영자인파코 언더힐Paco Underhill이다. 1979년부터 행동심리학적인 관점에서고객의 쇼핑 패턴을 조사하고 도시 건축 설계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1989년 인바이로셀을 설립하고 백화점, 은행, 의류점, 레스토랑 등의매장 설계 및 판매에 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인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맥도날드, 스타벅스, 앱, 에스티로더, 씨티은행등이 그의 자문을 받아왔다고 한다. - P168
파코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쇼핑의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도시인류학자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yte(1914~2000)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윌리엄 화이트는 공원이나 빌딩 플라자(대광장혹은 건물 내 쇼핑몰)와 같은 도시 내 공공장소를 설계할 때 시민들의이용 패턴이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믿었다. 컬럼비아대학에 다니던 시절 파코는 윌리엄 화이트의 연구 업적에 관한 강의를 듣고 싶은 감명을 받았다. ‘공공장소 프로젝트project for public spaces‘를 주도했던 윌리엄 화이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과 그렇지 못한 공원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뉴욕에 있는 공원에 카메라를 설치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했다. 윌리엄 화이트가 얻은 결론은 사람들은조경이 근사하거나 설계가 멋진 공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나 잔디밭이 많은 공원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공원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편히 쉴 공간이 필요해서 ‘이기때문이다. - P170
그렇다면 파코 언더힐의 ‘쇼핑의 과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쇼핑의 과학이 ‘고객을 위한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기업이 고객의 쇼핑 패턴에 맞게 매장을 설계하고 상품을 진열한다면 소비자들은 좋은 상품을 효과적으로 찾고 구매할 수있을 것이다. 뉴욕 T. G. I. 프라이데이스를 찾는 미국 고객의 소비 패턴과 서울 T. G. I. 프라이데이스를 찾는 한국 고객의 소비 패턴은 다를 것이다. 프랜차이즈라 하더라도 각국 혹은 각 지방 고객의 특성을고려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쇼핑의 과학‘은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실상 파코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서좋은 판매 전략을 세우고 매장 설계와 진열에 이를 응용하자는 것이지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판매 전략이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 P171
이렇듯 고객을 위한 설계와 이윤을 위한 설계가 정면으로 대치할때 가게 주인은 반드시 이윤을 택하게 마련이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파코 언더힐의 ‘쇼핑의 과학‘이 윌리엄 화이트의 공공장소설계 원칙과 다른 점이다.
손님이 왕이라고? 손님은 주머니에서 돈이 지불되기 전까지만 왕이다. 백화점의 복잡한 미로에서 잠시 정신을 잃는 사이, 오늘도 수십만 명의 왕들은 그곳에서 돈을 잃는다. - P173
우리가 주류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레옹 발라 이후 체계가 잡힌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말한다. 신고전주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경제 주체는 완전한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항상 최선의 선택을하고 자신의 효용이나 이윤을 최적화한다. 경제학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한계 효용이 체감하는 효용 함수(수학적으로말하자면 2계 도함수의 기울기가 항상 음인 함수)와 한계 비용이 체증하는비용 함수 (2계 도함수의 기울기가 항상 양인 함수를 만들어 최적화 문제를 푼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개별 주체의 공급 곡선과 수요 곡선을 수평합하면 시장에서의 공급 곡선과 수요 곡선이 얻어진다. 이 두 곡선이만나는 점에서 가격과 판매량이 결정된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기본 아이디어다. 더 나아가면 모든 주체가 합리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모든 시장은 동시에 균형을 이룬다는 일반균형이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자일까? 세상에 누가 미분을 해서 자신의 소비를 결정하는가? 어느 기업이 자신의 비용 함수를 계산해서 이윤을 최대화하는가? 이 질문은 물리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에 도전장을 던지기 전부터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 P179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경제 현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른바 ‘복잡계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패러다임은 경제를 ‘안정된 평형 상태에 놓인 시스템‘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환율이나금리, 물가, 주가지수 등 다양한 경제지표들에 나타난 복잡하고 불규칙한 등락의 원인을 간단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수확 체감의 법칙이나 음의 되먹임negativefeedback에 의한 평형, 환원주의적 분석만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물리학자들은 ‘수확 체증의 법칙‘과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으로인한 시장의 비평형성, 그리고 불안정성을 인정한다. 그들은 초기의작은 차이가 나중에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만큼 시장은 불안정하며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 고착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든 경제 주체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각자 개성과 특성을 가진존재들로 인식한다. - P181
그렇다면 먼저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복잡계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s의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주류 경제학은현실경제의 안정과 균형의 원인을 ‘수확 체감diminishing returns의 법칙‘ 으로 설명한다. 수확 체감의 법칙이란 두 번째 먹은 사탕은 첫 번째 ‘먹은 사탕보다 덜 달고, 비료를 두 배로 쓴다고 해도 수확은 두 배에미치지 못하며,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늘어나는 수익성은 투자량에못 미친다‘는 이론이다. 그렇게 되면 사탕에 싫증이 난 사람들은 초콜릿을 찾게 될 것이고, 농부는 비료를 적당한 양 이상은 사용하지 않을것이다. 수확 체감은 어떤 회사나 상품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만큼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는 늘 다양하고 조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두 번째 먹은 사탕이 더 달게 느껴지는 일은없을까? 그래서 한번 그 사탕을 맛본 사람들이 계속 그 사탕만 먹게되고 그것이 독점을 만드는 일은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걸까? 스탠퍼드대학 경제학과의 브라이언 아서 Brian W. Arthur 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P182
물리학자들이 주류경제학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이른바 데카르트적 환원주의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환원주의란 최소 구성 단위의 성질을 이해하면 전체 시스템의 성질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환원주의자들에게 전체란 단순히 구성단위들의합에 불과하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모래알처럼 독립적인 개인의 경제 행위를 단순히합하면 한 사회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기술할 수 있다는 방법론에 입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제주체들은 서로 영향을주고받으며 행동한다. 경제 현상의 주체는 개인과 가정 혹은 국가로,이들은 상호작용하며 경쟁과 연합의 원리를 근간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 P186
주식시장에 관한 최초의 수학적 연구는 1900년에 프랑스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 Louis Bachelier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투기 이론Theory ofSpeculation>이라는 논문에서 주가의 움직임을 물리학에서 잘 알려진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브라운 운동이란 얕은 접시에 물을 담고 그 안에 꽃가루 입자를 떨어뜨렸을 때입자가 물분자들과 충돌하며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꽃가루 입자는 밀도나 농도 차이에 의해 확산되면서 물분자들과 충돌해 불규칙한 궤적을 만들게 되는데, 이 운동은 물리학 분야에서 대표적인 랜덤워크 문제random walk problem 로 알려져 있다. 이때 우리는 꽃가루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고 다만 확률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바슐리에의 연구는 이제껏 비과학적인 주먹구구식 분석에 그치던주식시장의 움직임을 과학적 시각에서 관찰하고 분석한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연구 이후 주가는 물론 이자율, 환율 등에 관한 금융시장 연구에 수학적 확률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 P193
물리학자들이 증권가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분야에서 물리학자들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금융 이론은 고도로 다양화되고 복잡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냈다. 금융 전문가들은 복잡계 과학과 카오스 이론, 컴퓨터 모델링과 확률 이론 등 물리학자들이 고안해낸 방법론에서 그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분석적인 사고에 능한 물리학자들이 경제학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작게는 개인 투자자의 투자전략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금융 정책 수립, 국제 무역수지의 균형,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점점 늘고 있다. - P196
랜덤 워크 이론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의 가격 변동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오늘의 가격은 미래 가격을 예측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카오스 분석은 이 이론이 사실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주가 변동에도 ‘숨겨진 질서나 규칙‘이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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