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대기설법機法을 하셨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때그때 근기根機에 맞게 필요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법문 한 마디에 대한 각자를者들이 많이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언제 팔만대장경을읽었습니까? 부처님은 법을 많이 배우고 많이 말하기보다 단 하나의 게송만 기억할지라도 법을 몸으로 체득하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P44
한편 대승경전 중에 초기에 해당하는 경전이 반야부인데 그 반야부 경전이 나온 것도 부처님 돌아가시고 무려 오백 여년이나 지난 후의 일입니다. 오백 년을 내려오는 부처님 법이 엄연히 있고, 그 법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더 적절하게 납득시키고 발심시키려다보니 <반야경> 같은 경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 P47
그러니 아함경은 보지 않고 대승경전만 읽는다면이는 부처님의 근본 경전인 빠알리 경을 보지 못한 채로 후대에 쓴 아비담마만 보고 공부하는 격입니다. 말하자면 교과서는 안 보고 참고서만 보고 공부하는 전통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선종의 조사 스님들이 ‘경을 보지 말고 덮어 두라.‘고 한 것은 참고서를 덮으라는 것이지 교과서를 덮으라는 뜻이 아닌데도 역사적 맥락은 거두절미하고, ‘경은 무조건 안 보는 것‘이라고 되어 버린 거지요. - P48
불교도 만일 하나의 종교로서 근본주의로 돌아가려한다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은 인간의 심성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노력의 체계이지 한낱 종교적 의례의식에 안주하는 신앙 체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 근본으로의 복귀는 안일로 돌아가는 나태한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치열한 노력으로의 복귀입니다. - P52
기존의 편견과 고정 관념을 벗겨내고 인간 심성의형을 찾아 이를 발전의 가능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아니면 지금의 급변기를 감당할 수없습니다. 근본으로의 복귀는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인간 향상을 지향하는 가장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때가 묻지 않고 지역의 때가 묻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으로 복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P53
부처님은 완전한 지혜 자체이십니다. 지혜와 부처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이름 그대로 붓다, 즉 깨달은 이, 지혜의 완성자, 무상정등각자等覺者이십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부처님과 제자들의 지혜와 능력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보여 집니다. 제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탐 · 진·출를 멸하면서(阿羅漢道)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라도(阿羅漢果)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에는 미칠 수없는 겁니다. 따라서 아라한들이나 아라한의 가르침에 의지해 후대의 서나 저술들을 경전과 동일 선상에 세울 수는 없겠지요. - P58
부처님이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 즉 법法에 의지하고 스스로에 의지하라고 하셨지요. 이 말씀은 법이 부처님 당신을 대신한다는 뜻이요, 법이 능히 부처님의 대역을 수행하는 지혜의 총화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봅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즉스승과 가르침과 배움, 이세보물이 고르게 갖추어진다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어떤 문화에서나 삼보가 진정한 보물로서의 가치를 발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P60
우리도 윤회를 벗어날 잠재력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람으로서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윤회를 벗어날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입장에서윤회를 벗어날 때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일단 권위주의부터 청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려면각자가 권위주의적 해석에 지배되고 있지는 않은지스스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권위주의로 점철된 것은 제거하고, 비판적 안목을 세워서 왜곡된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기백을 갖지 않으면 이 시대를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열린 마음을 요구하는시대입니다. 그래서사아리따처럼 위대한 분의 권위라 할지라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시도를 할 수있지 않을까요. - P63
불교의 세계관은 인성의 세계관, 윤리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욕계,색계色界,무색계 삼계계가 중심축이 되어 윤리적인 면, 다시 말해 탐·진·치의 비중에 따라 탐욕심하면 아귀이계, 진심심하면 아수라계치암이심하면 축생계에 태어납니다. 이 탐 · 진 · 치 모두 또는 그 중 어떤 업이 매우 지중하면 지옥에 떨어지지요. - P66
그리고 인간 몸 받았을 때 팔정도를 알게 되어 바른집중, 정정을 닦기에 이르면 그 향상의 정도에 따라사선을 차례로 성취하여 누립니다. 이것이 색계의구도입니다. 그런데 계·정·혜戒定慧가 균형 있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에 치우치면 알라라 깔라마 웃따까 라마뿟따처럼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 들게 되며 여기에 육대에水火風空識)의 공식이 정의를 이루면 사무색정처四無色定處가 되어 무색계가 형성됩니다. 이렇듯 색계, 무색계의 정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욕계의 천상과 악도도 모두 인간의 업이 결정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삼계가 바로 인간의 세계인 것입니다. - P67
인간이 불법을 만나 팔정도를 닦으면 정에서 혜를가 나오고 혜에서 혜해탈解脫이 나오고 다시 혜해탈이 열반의 기반이 됩니다. 열반을 이루면 인간은 삼계를 벗어나 대자유인 즉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고인간과 우주 법계와 진리가 실체로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세계관이야말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세계관이라 할 것입니다. 불교경전은 이러한 인간관, 우주관,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경전이야말로 참으로 깊고 크다‘고 안심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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