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동양고전 슬기바다 1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 홍익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옮긴이의 말

『논어』를 펴내며

공자는 성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태어날 때부터 신비로 감싸버린 인물이라면 애초부터 나와는 다르려니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내가 못 알아들을 이야기를 해도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의 고매한 언사라고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공자는 다르다. 태어난 환경부터 나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게 없다. 게다가 공부나 제대로 했는가.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잡일을 배우다가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말하는 것을 봐도 대단한 천재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삶의 모습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점은 분명히 공자의 매력이다.
하지만 『논어』를 통해 만나는 공자에게서는 따뜻한 인간미와 함께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진리만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답답함 같은 것이다. 그런 진리들은 구체성을 띠지 않기 - P4

때문에 시대와 사회의 장벽을 넘어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추상적이라서 세상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이 와닿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바로 이른바 경전(經典)이라는 책들이 갖는 공통점이다.
그런데 경전 중에서도 논어』라면 나도 꽤 여러 번 읽은 책이다. 한문을처음 배울 때 『맹자』다음으로 『논어』를 읽었고 한때는 통째로 암송해 보기도 했다. 어림잡아 따져 봐도 백 번 정도는 읽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중적인 논어 번역본을 새로 만들어 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큰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그 동안 이 정도 읽어 왔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다시 읽으며 그 동안의 생각도 정리하면서 번역하고 주석을 달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번역기간도 출판사에서 제의한 대로 짤막하게 잡아 두었다.
그러나 아뿔싸! 번역작업을 시작한지 일주일쯤 지나서야 깨달았다.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겠다던 5년 전의 다짐. 예전에 영어책이나 중국어책을 몇 권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 지난한 작업에 진저리를 치며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가끔 나를 부추기며 번역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내 인생을 쪼개서 바칠 만한 책을 발견한다면죽기 전에 한 권쯤 ‘진짜‘ 번역을 하겠노라는 말로 이야기를 돌리곤 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사람들은 더 이상 나에게 번역을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5년여 만에 이런 다짐에 대해 나도 잊고 주변 사람들도 잊은 것이다. - P5

물론 『논어』는 내 인생의 한 덩이를 쪼개 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미 한글번역본이 숱하게 나와 있는 터에 더 나은 번역본을 낼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번역본을 내겠다고 달려든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다. 게다가 김학주의 『논어』(서울대출판부) 한필훈의 사람은 무엇으로사는가」(동녘 같은 훌륭한 번역본이 이미 나와 있는것을 보고는 나의 번역작업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회의하기도 했다. 김학주의 논어』는 좀 딱딱하긴 하지만 정확한 우리말 직역이 돋보이는 데다가 간결하면서도 꼼꼼한 주석과 해설을 갖추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사는가』는 지나친 의역이 눈에 걸리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 쉽도록 유려한 현대어로 풀어낸 수작(秀)이 분명하다. 이런 번역본들이 있었다는 것조차 이번 기회에 처음 알고는, 동양철학 전공자로서 그 동안 고전국역에 너무도 무심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논어 번역이 의미를 가지려면 번역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은 쉽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해도 무리한 의역은 피하려 했다. 본래의 뜻을 다치지 않고 의역을 해 낼수 있는 능력을 내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쉬운 우리말로 원전 그대로의 의미와 분위기를 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한글번역본도 많이 참조했다. 주석이라면 오래 전부터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것들을 참고하는 것으로 충 - P6

분하지만, 원문의 의미전달은 무엇보다도 정확한 우리말 어휘의 선택이좌우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의 두 책과 같은 모범적인 번역본의 어휘선택에 주목했다. 그리고 중고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문헌학적인 주석은 가능한 한 피했다.
이 분에 넘치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다만 끊임없이 다듬어야 할 과제를 하나 떠안은 듯하다.
이런 고민과 반성의 기회를 안겨 준 후배 유동환에게 고마움과 원망을함께 전하고 싶다. 그리고 편집부에서 난삽한 원고를 꼼꼼히 다듬어 준 백선해와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않고 뛰어다닌 김근호 등 홍익출판사에 있는 헌신적인 후배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의 책이나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뒤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홍익출판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1999년 7월 25일
옮긴이 김형찬 적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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