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공부를 이룬 성자에게는 반열반般涅槃에 드는 것이요, 공부를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내가 금생에 못 다한 공부를 다음생에 마저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새 계기를 마련하듯이 죽음역시 몸과 마음을 새로이 바꿈으로써 또 하나의 일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향상의 계기를 마련하는 죽음이 되지 못한다면, 그 죽음은 제대로 된 죽음이 못되고 옳은 죽음이 못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26
영가는 지금 경험하는 죽음을 ‘금생에 할 만큼 했는데 이제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새 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심기일전하여 해탈을 향한 큰 걸음을 다시 내딛겠다‘ 하는 다짐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해탈 · 열반을 향한 큰 걸음으로서 죽음을 맞아야합니다. 그러니 죽음은 결코 우리가 슬퍼할 일이 아니고 울부짖고 눈물 흘릴 일도 아닙니다. - P30
이렇게 원인을 따라 주욱 올라가면 죽음의 일차 원인은 태어남이고, 그 다음은 유취-애수촉육처-명색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색신은살·뼈· 오장육부가 있는 인간계의 육신이니 이때의 명색 명名肉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한 명색이 죽음의 깊은 원인이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원인에도 다시 그것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식입니다. - P34
식이란 분별하여 아는 것인데 대상의 차이를 구분하여, 그 차이를 통해서 사물을 아는 능력입니다.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표면상의 차이로 그 대상을 아는 식은 앞의 일종으로 지혜이긴 하나 매우 얕은 지혜입니다. 그얕은 지혜를 넘어서는 차원의 지혜가 바로 반야pania입니다.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나는 고통스런과정을 밟는 것도 결국은 이 얕은 지혜인 식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식에도 다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제행무명 때문입니다. - P35
사성제란 무엇인가?15 부처님이 설하신 최초의 법문이 <초전법륜경Dhammacakkappavattana Sutta>입니다. 부처님은 이 경에서 중도와 팔정도八正道사성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는 고성제苦聖諦,집성제聖諦,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입니다. 부처님은 이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만 진리라는 말을 쓰십니다. - P36
사성제는 모든 존재가다생에 걸쳐 몸을 받고죽고, 또 다시 몸을 받고 죽기를 거쳐 마침내는 깨닫게 되고 또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절대적 진리입니다. - P37
몇 생에 걸치는, 몇 백 생에 걸치든, 다겁생에걸쳐서라도 사성제를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천주교를 믿든, 이슬람교를믿든, 힌두교를 믿든, 무신앙자이든, 과학자이든 간에사성제는 누구든 언젠가는 깨달아야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사성제를 깨달아 아라한이 되면 존재와 삶은완성된 것이고 마침내 할 일을 다해 마친 것이 됩니다. 존재로서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존재의 세계를벗어나게 됩니다. 즉 해탈 · 열반하여 윤회를 끝내게됩니다. - P38
인생은 삶에서 겪는 갖가지 체험들, 아픔, 고통, 시달림 등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목표를향해서 나아가게 되는 흐름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만이 누리는 생, 즉 인생은 목표지향성을 띤 특수한 흐름입니다. 그 목표가 바로 사성제에 대한 깨달음, 즉 해탈 · 열반입니다. - P39
우리가 해탈열반에 들지 못하고 고를 지속하고있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를 지속하려는 열망, 그강력한 집착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죽고 싶다, 존재하기 싫다‘ 하는 것까지도 사실은 존재에 대한 열망입니다. 왜? ‘이런 형태의 삶은 싫다, 내가 원하는 삶의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므로,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다른 어떤 형태의 존재를 갈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P42
그러면 어떻게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존재存在苦에서 벗어나 해탈 · 열반에 드는길, 그 길은 12연기를 순관-관순역관함으로 걷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 P43
우리는 지금 윤회의 현장에 서서 다음생에 몸을 어떻게 받고, 다음생에 대한 원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늙어가고 죽음을 앞두고 있고 또 죽어서 다음 몸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어떻게 하면 존재에 대한 갈애를 없앨 것인가?‘라는 것이고, 그 답은 앞에서 말했듯 사념처를 관함으로써 수와 애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담고 있는 것이 팔정도입니다. 이 팔정도의 실천을 구체화하는 열쇠 중 하나로 우리는 <염신경念身經 Kayagatasati Sutta>21을 발견하게 됩니다. - P46
자기업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 몸뚱이입니다. 우리가 병을 앓는 것도, 죽음을 겪는 것도 모두다 바로 이 몸뚱이를 통해서이니 그만큼 몸을 관하는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향상의 계기도 됩니다. 바깥의 색에서는 해탈의 계기를 결코 찾을 수없습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바로 이 몸身)에서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바른 마음챙김하고, 그 몸을 통해서 겪는 온갖 느낌과 경험들을 대상으로 하여 바른마음챙김 수행을 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 P48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대단히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지요. 그러면 과연불교에서 죽음은 무엇인가? 지금 이 맥락에서는 ‘식이 명색과 헤어지는 것이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은 과거생에 지은 여러 업을 다 함장술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은 다음생의 명색과 만납니다. 식이 명색과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명색과 만나는 과정이 죽음과 재생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식이라는 불변의 실체가 있어 윤회를 겪는 주체인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엄밀한 의미에서식은 불변이 아닙니다. 그 자체는 찰나지간에 변하는 것이어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진리를실증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식이 고정된 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재생하는 것입니다. - P50
영가의 세계가 다른 것이 아니고, 그저 향상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는 도중에 잠시 합쳐졌던 심신이 다시 흩어지는 과정입니다. 심신이 흩어진다는 말은 곧다음생을 향하여 새 출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새 출발을 하려면 새로운 식과 신이 필요한 겁니다. 새 몸과새 환경을 받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커다란 향상의전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그 전기를 잘 살리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일입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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