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처님은 여느 때처럼 1,25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기원정사에 계시다가 사위성 시내에 나가 탁발을 하셨다. 밥을 얻어 다시 정사로 돌아온 부처님은 평소처럼 공양을 드시고, 바리를 거둔후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바로 이 장면이 「금강경」무대의 서막이다.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묘사된 이 이야기에서「금강경』 법문이 설해질 동기가 마련되고 있다. 마치 어떤 비밀이숨어 있는 것처럼 이 평범한 일상사의 배후에 반야바라밀법이 숨어있는 것이다. 도(道眞理)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그곳은 사람 사는일상생활 속이다. 다시 말해, 진리란 보편적이고 가장 가까운 우리들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 P25
기원정사는 당시 강대국의 하나였던 중인도에 위치한 코살라(Kosala) 국의 수도인 사위성(城) 밖에 있던 절이었다. ‘기수급고독원‘은 범어로 ‘제타바나 아나타핀다시아라마‘ (Jetavanaanāthapindasyārāma)인데, 여기에는 기타 태자와 수닷타장자 두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기타(陀, Jeta) 태자가 소유했던 동산에 있던 땅을 수닷타(Sudatta) 장자가 사서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친 데서 유래한다. 아나타핀다시(anāthapindasy)는 ‘급고독‘ (給孤獨)이라 번역되는 말로 수닷타의 별명이고, ‘기수‘樹)는기타 태자의 동산을 의미한다. - P26
수닷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원과얻었다. 그를뒤 수닷타는 부처님을 사위성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싶어 부처님께 간청을 하였다. "원하옵건대 저희를 위하여 사위성에 오셔서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 P27
수닷타장자가 절을 지을 터를 물색하다가 마침 기타 태자의 원림 안에 좋은 터가 있어 이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주인인 기타 태자는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였다. 만약 땅을 사려면 땅 위를 모두낄 수 있을 만큼의 금을 주면 팔겠다고 했다. 이는 팔지 않겠다는뜻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수닷타장자가 수레에 금을 싣고 와 실제로 땅에 금을 깔기 시작하자 그 의지에 놀라고 감동한 기타 태자는 땅을 파는 것과 동시에 동산의 숲을 함께 기증하여 ‘기수급고독원‘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 P28
수닷타장자는 자선사업가였는데,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보시하는 법을 설한 「수달경」須達經)이라는 경전도 있다. 또 옥야경經)이라는 경전도 있어, 이 경(經)에는 여성의 처신과 부덕(婦德)에대한 설법이 담겨있다. 옥(玉)라는 여성이 바로 수닷타장자의며느리로 나온다. - P30
‘아늑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보통 줄여서 ‘보리심‘ (菩提)이라 하며 ‘구도심‘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보리심을 내었다‘는 말은 가장 깊고큰 마음을 내어 진리를 알고자 하는 최고의 의지를 가졌다‘는 뜻이다. - P36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 다르다.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 에 따라서 물론 인격의 차이가 나타난다. "어떻게 머무느냐?" 이 질문은 금강경 법문의 실마리를 푸는 말로 "어떤 자세로 수행에 임하느냐?" 하는 물음과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키느냐?"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답을 올바로 알아 바르게 실천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대승의 완성자가 된다는 것이 <금강경>의 주내용이다. - P37
제자의「금강경』에 등장하는 수보리(須菩提)는 해공제일라 불렀다. ‘해고‘ (解)이란 공의 이치를 잘 안다는 말이다. 수보리가 금강경』에 나오는 것은 공(空)의 이치를 설한 경이 바로 『금강경」임을 상징한다. 수보리는 범어 수부티 (Subhüti)를 음사한 말인데, 의역할 때는 선길(吉), 선현(善現), 선업(業), 선실(實) 등으로 번역하고, 때로는 공생(生)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 P39
중국 당나라 때 규봉(圭峰) 스님은 금강경」의 이 대목을 해석하면서 9류 중생 모두를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광대심‘(廣大)으로보았고, 무여열반에 들게 하겠다는 마음을 제일심第一心)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되 실제로 한 중생도 제도된 바가 없는 마음을 ‘상심‘ (常心)으로, 네가지 상(相)이 없는 마음을 ‘부전도심‘ (不顚倒心)으로 설명하였다.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존재가 가장올바르게 머무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어떻게 머무느냐의 물음에대한 답은 바로 이 네가지 마음에 머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43
또한 중생의 업(業)은 근본무명과 화합하여 능(能)·소(所)가나누어지지 않고 혼돈되어 이것은 곧 알과 같다고 한다. 다시 말해무명의 껍질이 알의 껍질과 같다는 것이다. - P46
보시를 할 때 무상(無住相)보시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무주상보시‘ 란 상(相) 없이 하는 보시이다. 내가 남에게 무엇을 줄 때준다는 생각을 내세우지 말고, 주는 나와 받는 상대 그리고 준 물건에 대한 관념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삼륜공적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삼륜(三輪)이란 주는 자 [] 받는 자] 그리고 주고받는 물건 [物]을 말한다. - P49
고집이란 자아의식이 응고된 이기적인 에고이즘(egoism)이다. ‘나‘라는 고집과 ‘내 것‘ 이라는 고집으로 자기의 업보를 만들어 그속에 갇혀 버리는 자들이 중생이다. 자아에 대한 고집을 ‘아집‘(我이라 하고, 객관 대상에 대한 고집을 ‘법집‘(法)이라 하여, 고집도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고집이란 막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의 통로가 막혀 갇힌 상태이다. 고집불통이라하듯이 통하지 아니하면 결국 속박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의 마음이 졸이고 억압된 상태에서는 고통의 무게만 더할 뿐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된다. - P50
감각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중생들은 모양에 끌려가며 또 모양에현혹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실상의 진리에 미혹되는 원인이 된다. 모양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인식이란 끊임없는 분별과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에 그것을 불식하기 위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야한다. 또 이 모양[相]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물의 형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들 의식 속에 굳어진 관념적인 생각들로, 달리 말하면 생각이 응고된 고집이다.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는 개개인의 소견 따위가 모두 ‘상‘ (相)이라는 개념 속에포함된다. - P51
자아에 대한 고집, 인간에 대한 고집, 중생에 대한 고집, 수명에대한 고집, 이른바 사상(四相)이라는 네 가지 고집이 없다면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어디에도 붙들림없는 무애자재한 대행(大行)이 될것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으로 통하는 묘행(妙行)이다. - P52
‘명상(相)의 모습은 허망하다‘고 한 것은 상(相)을 부정하고 공(空)을 드러내는 말이다. ‘형상의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면여래를 본다‘고 한 말은 공한 속에 실상의 참 모습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진공묘유의 도리‘ 라 한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에서 공의 이치를 설파해 놓은 것은 공을 통해서 유를 찾아내는 도리이다. - P55
『금강경(金剛經)의 사구게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卽見如來)‘라 하여 중요시여겨온 이 경문이 바로 모양 없는 모양인 여래를 보는 도리를 밝혀놓은 것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여 색과色卽是空공을 등치시킨 이야기는, 색을 공으로 보고 공에서 색을 보아 색과공이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중도(中道)의 이치를 천명한 것이다. 또한 이 중도(中역시 진공묘유의 도리를 달리 말한 데 지나지 않는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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