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법출생분>에서 밝힌 중요한 뜻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은 법이 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경이 불법의 모체라는 말이다. 불모(佛母)인 이경을 수지함으로써 얻는 복덕이 우주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배를 사용하여 보시를 하는 복덕보다 많다고 하였다. - P73

경을 수지하는 공덕은 장차 깨달음을 얻어 생사를 해탈할 수 있지만 일곱 가지 보배의 보시는 세속적 은혜일 뿐 해탈을 얻는 것과다르다. 따라서 유루복은 무루복에 미치지 못한다. 유루의 가치는무루의 차원에서 보면 보잘것없으며, 실상은 항상 비어 공하여 그자리에 깨달아 들어가야만 부처님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중생의세계에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던 것이 부처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불법이 불법이 아니라 하였다. - P74

경전은 부처님이출생하는 근본이니, 경이 없으면 부처님이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經)의 정체가 무엇인가? 우리는 경을 책으로 된경전으로 이해하며, 이를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전(聖典)이라 한다. 그런데 경전에 설해져 있는 진리 자체를 두고 말한다면 이는 문자와 상관없는 것이며, 단지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문자라는 형식을 빌어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책으로 된 경전을 그릇에비유한다면 그릇 속에 담겨진 내용물이 글자이고, 글자 속에 들어있는 참뜻은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되는 것이다. 바로 부처님을 출생시킨다는 ‘경‘은 글자를 떠나 있는 진리 그 자체를 지칭해 하는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 자체가 ‘경‘이 되어버린다. - P75

我有一經卷 (아유일경권)
不因紙墨成 (불인지묵성)
展開無一字 (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 (상방대광명)

내게 한 권의 경이 있으니
종이와 글자로 된 것이 아니다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
항상 큰 광명을 놓네. - P75

마음이 바로 경이다.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중생의 마음 자체가 깨달음의 본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에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하였다. 또 「열반경』의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切衆生悉有佛性)는 말도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경(經)이 있는 것이다. - P76

초기불교의 전형적인 수행자들을 성문(聲聞)이라 불렀다. 이성문들이 번뇌를 끊어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궁극의목적을 이루기까지네단계의 지위를 두고 있다. 그 단계별 지위는수행의 성숙 정도의 차별을 나타내준다. 즉, 번뇌를 끊어 가는 과정이 선후의 단계가 있다고 보고,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의 계위(階位)에서 끊는 번뇌를 구분하였다. - P80

「금강경」이 대승을 시작하는 법문이므로 초기불교의 성문사과四果)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이 사과(四果)의 성자들이 모두 자기 수행의 지위를 얻었지만, 한 사람도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장을 <일상무상분>이라 했다. - P81

무쟁삼매三昧)는 주객의 대립이 없어 갈등이 일어나지 않으며, 욕심의 번뇌가 다하여 고요히 스스로가 공(空)의 진리에 머무는상태를 말한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아란나행(阿蘭那行)수행을 가장 잘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란나행이란 고요함을 즐기는선정의 수행으로, 공(空)의 원리를 알고 법을 관하는 수행법이다. - P82

사리불은 자주 부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어느 때 부처님은다른 제자들 앞에서 사리불은 공부가 다 되었다고 칭찬을 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사리불은 자신의 공부가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섰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것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여도 수행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된다는 뜻이다. <일상무상분>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을 설해 놓았다. - P83

사리불이 어느 날 이런 독백을 하였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도 아니하고, 죽는 것을 원하지도 아니한다. 품팔이가 품삯을 기다리듯이, 나는 내게 올 인연을 기다릴 뿐이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도 아니하고, 죽는 것을 원하지도아니한다."
세속의 범부들은 곧잘 햄릿식의 독백을 하고 산다. 세익스피어의작품 속의 주인공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To be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말을 했는데, 사리불의 말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P83

부처님께서 다시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생각을 굳혀 고집을 만듦이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른바 선(禪)에서말하는 무심도리(無心道理)이다. 유심(有心)은 항상 객관대상에 집착하여 시비와 분별을 일으킨다. 곧 번뇌의 세계에 들어가 나쁜 업을유발하기 쉽다. 하염없는 의식이 정화된 세계는 명상(相)에 머물지 않으므로, 이름이 가지고 있는 내용의 실체를 모두 부정하여 현실의 집착을 벗어나게 한다. - P86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조의 발심을 유발시킨 구절로 알려져 유명한 어구가 되었다. 「금강경」이 중국 선종사에서 중요시 여겨진 동기는 바로 이 구절을 듣고발심하여 출가한 육조 스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금강경」은 일체의 관념적인 고집을 없애라는 대의이다. 마음속에 그릇된 선입견따위가 들어있어서는 안 된다. 육조 스님의 서문에 ‘무상(無相)으로종(宗)을 삼고, 무주(無住)로 체(體)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일체의 상을 부정하고 어떤 대상의 경계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무주의 도리를 밝힌 법문이다. - P88

부처님은 갠지스강의모래알의 수를 제곱한 수만큼의 많은 세계에 칠보의 보석을 보시하는 복과 경의 네 구절을 익혀 지니는 복을비교하여 무위복의 수승함을 말했다.
무위(無爲)란 원래 범어 ‘아삼스크르타‘(asamskyta)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인연에 의하여 조작되지 않고 생멸변화를 여읜 상주절대의 법을 가리키는 말로 ‘열반‘ 과 같은 의미이다. 이는 곧 진여의 세계로, 여기에 들어가면 깨달음을 얻는다. - P91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는 ‘호세학도란‘ (豪勢學道難)이라 하여 부귀와 세도를 누리는 이들은 도를 배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참된 수행자는 세상의 복을 원수처럼 본다‘ 라는 말도 있다. 삼생(三生)의 원수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한 생은 복을 짓느라고, 또한 생은 복을 누리느라고, 나머지 한 생은 복이 다하여 빈천해져 도를 닦지 못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 P92

만약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 수인(囚人)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때, 때로 가족이 면회를 가서 위로하고 사식(私)이나 의복을제공해 준다 하여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되는 일은 감옥에서 석방이 되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감방에서 좋은 옷을 입고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하여도 갇혀 있는 죄수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한 감방 안에서 수용하는 좋은 의복과 음식은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무위복은 바로 감옥을 벗어나는 일과 같고, 유위복은감방에서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유위복은 복을 누리면 없어진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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