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상대를 적당히 위협하는 수준이지 죽음으로까지몰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나 몇몇 동물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예전의 많은동물학자들은 이런 절제된 듯한 행동이 그들이 속해 있는 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종족 번식‘ 또는 ‘종의 유지‘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이 종의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인데요, 정말 그런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 P58

집단 수준에서, 개체군 수준에서, 종 수준에서 종의 번식을 위해 또는 종의 유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예들입니다. 무작정남을 돕는 개체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기적인 자기애가 발휘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다윈은 철저하게 개체 수준에서 진화를 이야기했습니다. 다윈에게 있어서 태어나서 살며 경쟁하고 번식하고 죽는 주체는 개체인 것입니다. - P61

이처럼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생명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바꿔놓았습니다. 나아가 서양의 사상 체계, 곧 플라톤에서 시작된 서양철학의 체계를 하루아침에 뒤바꿔 놓았습니다. 서양 철학의 플라톤적 전통은 한마디로 본질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고, 진리는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나아가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이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하는 합목적주의적 세계관을 표방합니다. 플라톤의 본질주의와 기독교적 합리주의가 한데 어우러져서양인들의 사상체계를 만들었지요.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신이 만든 이 세상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일뿐 아니라 신이 창조한 인간의 삶은 궁극적인 목표를 가질 수밖에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세계관들이 서양의 사상 체계를 지배해온 것입니다. - P63

초기 행태학자들은 신호자극과 그에 따른 행동반응 메커니즘에대해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호자극을 받아서 반응하고 적절한 행동을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 바로 뇌 안에 있으며, 이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요. - P72

본능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하품을 멈추지 못하는것처럼 지극히 고정적인 양상을 보이는 행동도 있지만, 더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다듬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행동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지만, 경험과 학습을 통해 다양한 수준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P78

20여년 전만 해도 동물행동학자가 학회에 가서 ‘동물도 배운다고 말하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습니다. 배울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러나 지금은 아주 단순한 동물도배울 수 있고 배운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많이 밝혀졌습니다. - P81

포식동물이 접근하면 얼른 움츠립니다. 군소의 입수공을 작은 막대기로 건드리면 몸을 오므립니다. 그런데 자꾸 반복하면 나중에는반응하지 않습니다. ‘왜 날 이렇게 자꾸 귀찮게 하느냐. 네가 건드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다 알아 하는 식이죠. 아무리 건드려도 그 다음에는 끄떡도 안 합니다. 이런 과정을 ‘습관화 habituation"라고 합니다. - P85

어떤 행동이 습관화하면 참 고치기 힘듭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을 얻으면 끊기가 매우 어렵지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거나 엄청난 사건이 벌어져야 합니다. 동물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습관화된 군소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반응이 줄어든 상태에서 어느 순간에 쏙 건드리면서 따끔하게 전기 자극을 줍니다. 그러면 곧바로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부터는 건드리면또 오므립니다. 아주 강력한 자극, 강력한 경험을 통해 습관이 고쳐지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폐습화‘라고 합니다. - P85

파블로프van Petrovich Pavlov는 유명한 러시아의 생물학자지요. 개를가지고 조건반사 실험을 처음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개한테 먹이를주면서 항상 종을 울리다가, 어느 날은 먹이를 안 주고 종만 딸랑딸랑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먹이와종소리가 늘 함께했기 때문에 종소리만 들어도 ‘아, 먹을 게 들어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이 먼저 나와 먹이를 소화시킬 준비를 하는 거죠. 이것을 조건화conditioning라고 부릅니다. - P86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를여러 마리 함께 길러보면 금방 알게 되지요. 이들은 크면서 허구한날 장난을 칩니다. 서로 치고박고 물고 뜯고 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물어뜯어 피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은이것을 ‘놀이행동play behavior‘ 이라고 부릅니다. - P87

어떤 때 개의 행동을 보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먹을 걸 바닥에놓아주면 이놈이 멀리서 놀다가도 뛰어옵니다. 그런데 줄이 나무에걸려 꼬이면 풀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생각하기엔 조금 되돌아가서바른 길을 잡으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대개의 경우 개들은 그렇게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고력 또는 통찰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꼬인방향의 반대로 돌아가서 되돌아오면 끈이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을못 하는 거죠. - P89

너무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미 새가 새끼 새가 싫어한다고 나는 법을 가르치는 걸 포기하나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놈이 몇 번씩 땅에 떨어질 때까지 악착같이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새끼 새가 지금은 왜 날아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날아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어미새는 알기 때문이죠.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이 측은하기는 합니다만 가르칠 건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하겠지요. - P92

DNA는 이중나선 구조로서 두 가닥의 실이 꼬여 있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 클린턴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성추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풍자해 클린턴 대통령의 DNA가 바지 지퍼처럼 쫙 열려 있는 만화가 나온 적이 있었죠. 그렇지만 실제 DNA는이 만화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DNA를 가진 개체가 어떤 특성을 보이게 될지 그처럼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요.
이처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해서 하나의 형질을 발현하는 것을 ‘다인자발현polygeny‘ 이라고 합니다. 여러 인자가 함께 하나의 형질발현에 관여한다는 뜻이죠. 반대로 ‘다면발현pleiotropy‘ 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 발현에 관여한다는 뜻입니다. - P99

실제로 캐나다의 곤충학자 윌리엄 케이드william Cade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꽤 많은 수컷이 하룻밤 사이에 반시간도 울지 않습니다.
어떤 수컷은 거의 열 시간을 울어대는데 어떤 수컷은 반시간도 울지 않습니다. 아주 얌체인 놈부터 아주 성실한 놈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죠. 그런 특징들을 인위선택합니다. 얌체를 인위선택하고 또 성실한 귀뚜라미를 인위선택하여 몇 세대만 지나면 그 개체군은 굉장히 많은 얌체와 굉장히 성실한 개체들로 확연히 나뉩니다. 인위선택을 통해 특별한 성향을 가진 것들끼리 교배하고, 또 그렇지 않은 것들끼리 교배하면, 그다지 오랜 세월이 흐르지 않아도확연하게 다른 두 집단으로 분명히 나눌 수 있습니다. - P101

오늘날에는 분자유전학의 발달로 우리 인간 유전자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방법들은 모두 간접적인 증명입니다. 인위선택과 이종교배의 결과를 보고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전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유추해보는 수준에서 이제는거의 직접 실험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특정한 행동의발현에 중심적으로 관여하는 유전자를 그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아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개체의 발생과정에서 치환실험을 하면 새로운 유전자로 대체된 개체에서 홀연 새로운 행동이 나타나는 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앞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올 겁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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