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들은 북해의 엘바 강 어귀를 비행하고 있었다. 넓은 바다로 나가서 전 세계 항구로 뿔뿔이 흩어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크고 작은 배들이 많이 보였다. 그 배들은 인내력 좋고 잘 훈련된바다동물들처럼 차례로 열 지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 P11
은빛 날개를 자랑하는 갈매기 켕가는 선박의 깃발들을 관찰하는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깃발들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였으며, 같은 물건이라도 나라와 언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꽤나 복잡한 동물이야! 우리 갈매기들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말 한마디면 다 통하는데 말야." - P12
해안선 저 멀리 진녹색 풍경이 보였다. 드넓은 초원이었다. 바람을 타고 느릿느릿 돌고 있는 풍차 날개가 보였고, 방파제 아래에서는 양 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윽고 선두 갈매기는 무리에게 하강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앞다퉈 하강하기 시작했다. - P12
그것은 바람과 바다의 법칙에 순응하는 갈매기들의 길고도 먼여행이다. 마침내 비스카야 상공에서는 발트해와 북극해, 대서양을 건너온 전 세계의 갈매기들이 모두 모이는 대화합의 장이 열릴것이다. ‘참으로 멋진 만남이 될 거야.‘ - P14
켕가와 같은 암컷 갈매기들은 대연회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데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오징어와 정어리까지 준비된 호화판 축제였다. 그 사이에 수컷들은 벼랑 끝에 둥지를 틀고 암컷들은그 둥지에서 알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위협이 있어도 그 알들을 가슴에 품을 것이다. 조금 지나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에게 깃털이 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가 이번 여정에서 가장 극적인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저 아름다운 비스카야 창공에서 어린 새끼 갈매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말이다. - P15
"너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소년은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계속해서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들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가 가장좋아하는 록그룹 중 하나인 ‘푸르PUR‘의 카세트테이프도 한 개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테이프를 다시 꺼내고는, 그것을 탁자 위에 놓을지 다시 배낭에 집어넣을지 한참을 망설였다. 꽤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방학여행을 갈 때 어떤물건을 가지고 가야 할지, 두고 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P17
‘참 맛있는데! 날생선 내가 나는군! 훌륭한 꼬마야!‘ 고양이는 비스킷을 입안에 가득 넣은 채로 생각했다. ‘훌륭한 꼬마라고? 아냐, 이 세상에서 최고지!‘ 고양이는 입안에 든 비스킷을 꿀꺽 삼키면서 생각을 바로잡았다.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가 소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소년은 그 맛있는 과자를 사기위해 한 달 용돈을 거의 다 쓸 뿐 아니라 소르바스의 집 바닥에 작은 자갈들을 깔아줘 편하게 쉴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또한 소르바스의 용변기도 항상 깨끗이 닦아주었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소르바스에게 충고도 해주었다. 실수를 하더라도 윽박지르지않고 잘 타이르면서 가르쳤다. - P18
소년은 항구에 사는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먼 나라로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다.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는야옹거리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다 물살을 헤치며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한 범선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그렇다. 소르바스는 소년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소년이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 P19
"이제 엄마 젖은 그만 빨아먹자! 너희들은 엄마가 얼마나 야위었는지 보이지도 않니? 이제 우리들도 생선을 먹자. 항구 고양이들은생선을 먹는다고!" 하지만 그가 집을 떠나기 며칠 전, 어미 고양이는 소르바스를 불러 앉히더니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참으로 기특하고 영민하구나. 참 다행이다. 하지만 집을 나가면 안 돼.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사람들이 와서 너와 네 형제들의운명을 결정할 거야. - P20
소르바스는 집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았다. 꼬리를 바짝 세워흔들면서 총총걸음으로 생선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얼마 후,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이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졸고 있는커다란 새의 앞을 지나쳤다. 그 새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부리 밑에는 커다란 모이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 P21
마침내 소르바스는 머리를 밖으로 밀어내고는, 곧바로 몸 전체를내던지며 땅 위로 뛰어내렸다. 소르바스의 몸 전체는 점액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바로 그때 소르바스는 소년을 처음 보았다. 소년은 새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심하게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펠리컨, 너는 눈도 없니? 장님이냐고! 이리온, 고양이야.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 하마터면 저놈의 배 속에서 끝장날뻔했구나." - P24
소리가 들리자 식구들이 멀리 떠나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해 창문쪽으로 뛰어갔다. 창문에서는 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는 모처럼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4주 동안은 내 세상이다! 그러나 이웃집에 사는 소년의 친구가매일 올 것이다. 소르바스에게 통조림 먹이도 주고 작은 자갈이 깔린 고양이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러 말이다. - P25
켕가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쭉 폈다. 그러나 커다란 파도가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가까스로 물 위로 떠오른 켕가는 머리를 힘차게 흔들어 젖혔다. 눈앞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듯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켕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염된 바닷물의 기름 탓이라는 사실을 - P27
켕가는 온몸의 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마침내 기름 덩어리의 중심부를 벗어나 비로소 깨끗한 물과 만날수 있었다. 눈에 묻은 기름을 씻어내기 위해 머리를 물에 담그고 수없이 눈을 깜빡였다. 마침내 눈가의 기름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제야 켕가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다와 광활한 둥근 하늘 사이에 끼여 있는 몇 조각의 구름뿐이었다. 아레나 로하 등대의 갈매기 떼들은 이미 멀리, 저 멀리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 P28
그는 은빛 날개로 하늘을 날며, 바다를 오염시키는 인간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따금 정박 중인 대형 유조선들은 안개가 짙게 깔린 틈을 이용해서 탱크 속을 청소하기 위해 먼 바다로나갔다. 그들은 독한 유해물질 수천 리터를 바다에 내버렸다. 그러면 거기서 쏟아져 나온 이물질과 찌꺼기는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 P29
켕가는 힘없이 물 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생중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죽음의공포에 떨면서 자문해 보았다. 혹시 죽음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모습의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고기 밥이 되는것보다 더 끔찍하고, 질식의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굶어 죽는 것이 아닐까? 그는 죽음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통 전체를 뒤흔들어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기름에 젖은 날개가 몸에서 떨어진 것이다. 은빛 깃털은 검은 농축 물질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날개는 최소한펼 수 있었다. - P30
켕가는 다섯 번 시도한 끝에 간신히 날 수 있었다. 그러나 방향을마음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몸에 달라붙은 기름 덩어리의 무게 탓이었다.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날갯짓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날갯짓을 한 번만 쉬더라도 곧바로 물속으로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켕가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근육의 움직임에는이상이 없었다. - P32
켕가는 머지않아 자신의 체력이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켕가는 내려가서 쉴 만한 곳을 찾기 위해 구불구불한 엘바 강의 녹색 선을 따라 내륙으로 비행했다. - P33
고양이가 등에도 햇빛을 쬐려고 천천히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 물체가 윙윙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자신에게 다가오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경계하며 벌떡 일어섰고, 발코니에 떨어지는 갈매기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매우 더럽고 지저분한 갈매기였다. 몸통 전체가 검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물질로 흠뻑 젖어 있었다. - P35
"너는 죽지 않을 거야! 잠깐 쉬고 나면 금방 회복될 거야. 배고프지? 기다려 내가 먹을 것 좀 가져올 테니까, 죽으면 안 돼." 소르바스는 탈진해서 축 늘어진 갈매기에게 다가가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갈매기의 머리를 열심히 핥아주었다. 갈매기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그 물질의 맛은 지독했다. - P36
소르바스가 밤나무 쪽으로 갈 때였다. 갈매기가 소르바스를 불렀다. "왜? 뭘 좀 먹고 싶어서?" 소르바스가 지레짐작으로 물었다. "나는 곧 알을 낳아야겠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알을 낳고말거야는 말인데어?" 친구, 넌 참 착하고 고상한 고양이 같아. 그래서 하…………. 내게 세 가지를 약속해 줬으면 해. 약속할 수 있겠…………. - P38
"그래, 알을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소르바스가 되뇌었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알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해줘." 갈매기가 가까스로 목덜미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그 알을 보호해줄게." "마지막으로,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약속해줘." 갈매기는 고양이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자소르바스는 이 불쌍한 갈매기가 단지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을 약속할게. 그러니 이제 좀쉬어, 내가 도움을 청하러 갔다올게."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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