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차를 타는 건 정말 별로다. 특히 뒷좌석에서 폐가 찢어질듯이 천시가 울어댈 때는 더더욱 그렇다. 별다른 뜻은 없다. 저 사람이 자기 엄마라는 사실을 알면 나라도 저렇게 울어젖힐 테니까. 하지만 7개월짜리 아기가 그걸 알고우는 건 아닐 테고, 천시는 그냥 운다. 배가 고파도 울고, 배가 불러도 울고, 피곤해도 울고, 심지어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난 후에도 운다. 쉽게 말하면, 천시는 ‘일‘로 끝나는 요일에는 무조건 운다고 보면 된다. - P9
그리하여 나는 그리니치 중학교 앞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 새학기 첫날 등교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힐끔거리며 내게 눈길을 주는 애들도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아무도 전학생에겐 관심 없으니까. 나는 단기 전학생이다. 친엄마가 유타 주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몇 달 동안만이 학교에 있을 예정이다. 우리 엄마는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영화 촬영을결정적인 기회로 여기고 있다. 여러해 동안 시트콤이나 광고에 군데군데 출연하며 겨우 공과금이나 내는 정도였는데, 마침내 독립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나는 영화를 촬영하는 8주 동안이나 엄마와 함께 갈 수는 없었다. 나까지 초대받은 게 아니니까. - P11
나는 학생들의 하차 장소에 있는 벤치에 앉아 팔걸이에 가방을기대놓았다. 생각해보면 새엄마(진짜 이름은 루이스)가 그렇게 괴물같은 건 아니다. 아빠에 비하면 간섭도 훨씬 덜하다. 아마 아빠보다는 새엄마가 나랑 나이차이가 덜 나기 때문이겠지. 중학교 3학년짜리를 돌봐야 하는 새엄마 역할을 새엄마는 그다지 좋아하지않았다. 그래도 나한테 잘해주려고 노력은 한다. 그 노력이 오래가지 않을 뿐이지. 학교에 등록시켜줘야 하는 이 시점에 나를 이 낯선 학교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버려놓은 것처럼. - P12
나는 스스로 해결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서류 작성 정도는 내가먼저 가서 해도 될 것 같아서. 행정실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행정실에서 북적거리는 애들은1)수업시간표를 잊어버렸거나, 2)수업시간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3) 수업을 변경하려는 애들이었다. 업무에 찌든 행정실 직원에게 부모님이 와서 등록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대꾸도 없이 손가락으로 구석 의자를 가리켰다. - P14
"있잖아, 언터처블스, 그러니까 이 반 아이들은 건드릴 수 없어(untouchable), 왜냐면, 가르칠 수가 없는(unteachable) 애들이라서, 그럼 잘 가." 그 애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을 더듬더니 복도로 뛰어가버렸다. 나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 애 표정에도 나타났지만, 사실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0.5톤 트럭으로 책가방을 망가뜨릴 수있는 애가 속한 반이 어디겠는가. ‘언터처블스‘는 구제불능반이다. - P17
구제불능반이든, 고장 난 기관차든, 언터처블스든 무슨 상관이람? 어쨌든 그 애들도 다른 애들과 똑같은 학생일 텐데. 파커도마찬가지다. 운전대를 잡으면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다른애들처럼 그 애도 평범한 3학년일 뿐이다. "아무리 언터처블스라 해도 심각해봤자 얼마나 심각하겠어. 나는 문을 열고 117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P18
유일하게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 있는 쓰레기통에서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애들이 그 주위에 모여서, 필기용 연필 끝에 마시멜로를 끼워 불에 굽고 있었다. 파커도 거기 있었다. 파커의 마시멜로는 이미 석탄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짜증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문 닫아! 복도 화재감지기 울리게 하고 싶냐?" 맙소사. 내가 정말 언터처블스에 왔구나. - P19
새 학기 첫날. 그 설렘을 기억한다. 가르치게 될 새로운 학생. 지식으로 채워질새로운 마음, 그리고 완성될 새로운 미래. 이 문장의 핵심 단어는 기억한다이다. 30년 전 이야기니까. 나는그때 젊었다. 학생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을만큼. 교사가된다는 건 직업 그 이상의 일이었다. 교사란 소명이고, 미션이었다. 정확한 표현이다. 미션 임파서블. 그 시절의 나는 그걸 몰랐다. 그저 ‘올해의 교사‘로 뽑히고 싶었고, 실제로 그 목표를 이뤘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지. - P20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바로 은퇴다. 새 학기 첫날이라는 건, 앞으로 겨우 10개월 남았다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숫자나 세고, 은퇴 계획이나 세우면서, 학교와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고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23세의 나는 꿈에도 상상못 했겠지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 P21
시작이구나. 핵심은 이거였어. 올해가 지나면 내가 조기은퇴 자격이 된다는 것을 테디어스 교육감은 알고 있는 거다. 그는 교육청이 내가 죽을 때까지 연금을 줘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테지. 우리 커밋 가문의 남자들은 수명이 최소 95세다. - P22
시험지를 유출했으니 점수가 높을 수밖에. 모든 사 "실이 탄로 났을 때, 이전에 갈채를 받았던 것과 똑같이, 그 비난도테디어스가 감당했을까? 그럴 리가. 그건 모조리 교사의 책임이었고, 그 교사가 바로 나였다. 그리니치 교육청 전체에 불명예를 안겨준 학급의 담임 교사. - P24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사실, 언터처블스가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는가? 태도 불량, 학습 불량, 청소년 범죄, 뭐 그 정도? 테디어스는 내가 30년간 교단에 있으면서 이런 아이들을 다뤄본적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태도 불량? 아이들이 처음부터 나쁜 태도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나의 불량한 태도에 비하면 너무나 양호한 수준에 불과하다. 언터처블스 아이들은 뭔가를 가르치려고 시도할 때만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P25
나는 나의 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쓰레기통에서 치솟는 불길.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연기, 마시멜로를 연필 끝에 끼워 굽고 있는 아이들. 불붙은 연필 지우개도불에 타는지 확인해보는 예비 방화광 하나. 건물 밖 덤불에 숨어서 겁먹은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겁쟁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자는 녀석. - P26
나의 하루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학교에 가는 게 정말좋다. 운전하고 그러는 게.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고 나면, 그다음은 별로다. 학교 건물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저 어쩌다 보니 내가 중요한 것마다 망치는 장소가 돼버렸을 뿐이다. - P32
"읽어봐!" 키아나가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읽지 않았다. 읽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그럴 기분 아니야." "바보같이 굴지 마. 그냥 선생님께 말씀드려 문제가 있다는 걸알리지 않으면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어!" 키아나가 충고했다. - P35
키아나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나는 그애 때문에 골치가 아플줄 알았다. 새 학기 첫날, 그러니까 마시멜로를 구워 먹던 날, 나는 새로 전학 온 키아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줬다. 연필에 마시멜로를 꽂아 주고, 불 앞에 그 애자리까지 만들어줬다. 그런데 그렇게 무례할 수가! 그 애는 내가 준 마시멜로를 ‘비위생적‘이라면서 거절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이상 신사처럼 굴지 않는다. - P36
우리 담임, 커밋 선생님은 분명 50대일텐데 900살은 족히 된 사람 같다. 솔직히 말하면, 눈을 반쯤 감고 책상 위에 구부정하게 엎드린 모습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 근육도 절대 안 움직인다. 숨을 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고도 밝은 조명 아래서 휘청거리지 않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커밋선생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무지하게 복잡한 십자말풀이를 하면서보낸다. 선생님은 나를 엄청 싫어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쓰레기장 같은 곳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싫어하는데, 이선생님만 다를 리가 없으니까. - P38
커밋 선생님은 교사로는 별로인 것 같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본적도 없지만, 절대 뭘 가르치는 법이 없다. 소리 내서 말하는 적도거의 없다. 그냥 하루 종일 문제지만 나눠준다. 따분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공부를 안 하면 야단을 친다. 커밋 선생님은 아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든 말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 P39
"진짜 싫다. 이반!" 나는 책가방을 집어 들어 문을 향해 던졌다. 하필이면 커밋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에 내 무거운 가방이 선생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화가나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상태라서, 선생님이 내 가방에 맞아 내가 정학을 당하든지, 퇴학을 당하든지, 아니면 동네에서 쫓겨나든지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화가 난 순간에도 내가 놀랐던 건, 선생님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복도로 뛰쳐나가면서문이 부서질 만큼 세게 문을 닫았는데도 말이다. - P43
"버킷 필러 (bucket-filler)는 누구나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버킷, 그러니까 바구니를 애정이 담긴 축복의 말과 긍정적인 반응으로채워주면서 상대방을 특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잖아요. 다른 학생들한테 방해가 되거나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건버킷 필러가 아니라 버킷 강도죠." 엠마 선생님이 알도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설명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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