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등으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20세기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급성장세를 주도한 작가들은 주로1960년대의 붐 세대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뒤를 계속해서 이어갈포스트 붐 세대의 젊은 작가 층도 꽤나 두텁다. 이는 라틴아메리카문학이 향후의 새 시대에도 세계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1999년 중앙일보에서 선정한 ‘떠오르는 밀레니엄 작가 20인 중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유일한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칠레 출신의 소설가 루이스 세뿔베다는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청년 시절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타파하고자 반정부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것은 바로 피노체트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 P159
인권 탄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결과 그는 23세 때부터 오랜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 시기의 망명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였다고 술회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중시했는데, 망명도 그러한 경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망명 생활이 오히려 조국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세뿔베다는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지에서 연극단체를 설립하였을 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런가 하면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린피스 일원으로 환경보호와 소수민족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러한 내용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는 지성‘ 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세뿔베다는 시, 희곡, 라디오 드라마, 에세이, 단편, 중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출간했다. 1969년 쿠바의 ‘카사 데라스 아메리카스‘에서 수여하는 단편소설상 수상을 시작으로, 세계 연극 페스티벌에서는 살찐 자와 마른 자의 삶, 정열 그리고 죽음》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를세계적인 작가의 위치로 올려놓은 결정적 작품은 1989년에 발표한<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이 소설이 유럽과 미국에서 번역되면서 본격적인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 소설로 ‘띠그레 후안‘ 상을 받기도 하였다. - P160
세뿔베다는 자연과 환경을 중시하는 환경작가다. 이 작품 역시그러한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간이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빚어지는 폐해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이 이 작품의 창작 동기라고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현대 문명이 야기한 자연과 환경파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고양이 소르바스와 갈매기 켕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동물들이 목격한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흑해의 기름덩어리를 온 몸에 뒤집어쓴갈매기는 죽어가면서도 인간의 해양오염 실태를 폭로하는가 하면, 고양이들조차 인간의 근시안적 자연파괴 행동을 측은하게 여긴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환경오염에 대한 인간의실수와 무지를 꼬집고 있는 것이다. 환경작가로서의 세뿔베다의 모습은 다른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는 아마존 밀림의 한 촌락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군의 개성을 보여주면서, 생명의 근원이며 신성한 영역으로 남아야 할 자연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지 마을에 금을 찾아서 몰려온 외지인들이 원주민의 생활에 끼여들면서 발생하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통해 자연과 문명의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된 《세상 끝으로의 항해》도 환경보호를 주테마로 - P161
하고 있다. 남극해에서 불법 고래잡이를 하는 일본의 해상 가공선에 맞서서 외롭게 투쟁하는 늙은 뱃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뿔베다 특유의 간결하고 선명한 언어는 독자들에게 남극의 바닷물과 같은 청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루하루 지구촌의 숨통을조이고 있는 환경파괴는 비단 고래나 코끼리의 살육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화학물질이나 핵폐기물의 불법 처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경고한다. 작가는 이런 문제를 개발국들이 저개발국들의 환경을 임의로 파괴하는 현실과 연결시키며, ‘가진 나라‘들의 ‘못 가진 나라들에 대한 기만적 약탈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과학과 진보에 편향된 인간들의 편의적 시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광기‘야말로 인류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뿔베다가 구사하는 문장과 언어는 간결하고 섬세하다. 그러나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강렬하고 엄격하다. 그는 서로 다른 존재를포용하고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즉 타자와의 따뜻한 의사소통을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행복과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쉬운 문체로 풀어간 이 소설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게 해주고, 세상을 좀더지혜롭게 가꿀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감동적인 작품이라생각된다. - P162
참고로 이 작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뚜스켓Tusquets 출판사가1996년에 펴낸 작품을 번역한 것임을 밝혀둔다.
2000년 6월 옮긴이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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