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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 그 추억 속에는 그들의 부모님도 계신다. 어느 시인의 시에 나오듯 늦은 시간에도 허물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친구.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나에게도 부모님과도 같은 분들이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들이 이제 세상을 떠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한다. 친구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볼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나의 추억의 일부분이 차지하고있는 분들이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슬픈 일인데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난다면 어떨까.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않은 일이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이다. 아직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슬픈 일이다.
<상실의 시간들>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49일째부터 99일까지의 이야기를 만날수 있다. 그 뒤로도 며칠의 이야기가 더 담겨 있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49일째부터 99일째 까지의 일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새벽 4시가 넘어 잠이 든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아침 9시경 동생 은희에게 전화를 받는다.
"엄마가 죽었어."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전화를 받은 나는 검은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직면한 것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현실이다. 어떤 옷을 입어야할까라는 현실적인 문제. 또한 그녀는 엄마의 죽음으로 처리해야 일들을 하면서 죽은자가 할수 없으니 남은 사람들이 일처리를 하며 또 한번 죽이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몸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간다. 사망신고를 하고 통신사에 연락해 핸드폰을 해지하고 은행과 보험사에 연락하는 등 엄마는 정신, 인격, 신분을 말소 당해야 죽음이 완성되는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신체의 기능정지라는 자연의 현실과 사회적 인격의 소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일련의 사건이다. 죽은 사람에겐 정지한 몸의 현실에 맞춰 정신을 조정할 힘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그걸 해줘야 한다.
누군가 죽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 본문 17쪽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아버지. 호주로 이민을 간 언니,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동생 은희는 직장으로 돌아간다. 연애소설을 쓰고 있는 나. 자유업에 비혼, 아이가 없으니 홀로 계신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30년 가까이 2형 당뇨가 있었고 몇 년전터는 만성 신부전증과 고혈압이 생겼다. 식이요법을 해야하는 아버지. 늘 엄마의 손길을 받으신 분이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아니 하지 않는다. 그러니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나의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온 이상 우리들은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 우스개 소리로 오는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한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물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분이나 그의 가족들이라면 경우가 조금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지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거의 드물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싶지 않다. 그 이별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럴것이다. 이렇게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 슬퍼할수만은 없다.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많은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들. 남겨진 이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현실은 그들을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간혹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라 원수같은 가족이 될때가 있다. 우리의 현실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늘 사랑스러운 모습만 가진 것인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지만 서로 아웅다웅하기도 한다. 엄마의 죽음은 슬픔 이전에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져온다.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처럼 감상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풀어가고있는 것이다. 너무 현실적이여 더 슬픈 이야기 일수도 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수 만은 현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