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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제목부터 인상 깊었다. 배를 엮는다고 한다. 배는 보통 만들거나 건조한다고 하지 엮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슨 의미일까?
처음 제목만 봐서는 배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배와는 전혀 무관한 사전(辭典)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전만들기와 제목과의 관계를 유추해보면서 책을 읽었다.
일본 출판사 겐부쇼보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출판하고 있는 곳이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목조건물에는 사전을 만드는 사전편집부가 있다. 건물에서 보듯이 이 부서는 겐부쇼보에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오로지 사전편찬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유행과 흐름에 관계없이 말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편집자 아라키, 감수자 마쓰모토 선생, 유일한 정직원인 분위기메이커 니시오카, 계약직 사사키는 '대도해'라는 이름의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큰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인원충당을 위해 본사에서 적합한 인물을 섭외하는데 그가 바로 마지메. 마지메는 성실하기는 하나 말주변도 없고 항상 지저분한 상태로 다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마지메의 능력을 알아본 아라키의 적극적 권유에 의해 사전편찬부에 들어오게 되고 점점 사전만들기의 자신의 적성을 찾아간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대도해라는 사전 편찬에 집중되어 있다. 사전편찬에만 내용이 집중되었다면 조금은 지루할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남녀간의 사랑, 부서원들과의 우정등이 등장하여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은 보기에는 사전을 편찬하는 것이 목적처럼 느껴지지만 사전편찬을 통해 점차 발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 하겠다. 마지메가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짝사랑하는 여인 가구야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는 용기있는 모습까지의 변화를 보인다. 사전편찬에 별 관심없이 일을 하던 니시오카가 사전편찬에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성실히 임하는 모습, 후배로 들어온 기시베가 사전편찬의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전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게 된다.
사전이라는 것이 그저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는 용도로만 생각해왔다. 더욱이 전자사전과 스마트폰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시기에 종이사전에 대한 기억은 점차 사라져간다. 이 책은 과거에 우리들이 사용하던 손때묻은 종이사전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시대 아이들은 모를 아날로그 사전에 대한 기억을 말이다.
또한 사전 편찬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사전 하나가 출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와 정성이 담겨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저 하나의 서적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사전들이 새삼 위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구레빌라 연애소동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였다.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이지만 뜨거운 열정과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미우리사온만의 독특한 작품관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작가의 작품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전편찬이라는 조금은 낯선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흡입력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우리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