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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역사는 거대한 강과 같다. 큰 강의 모습에서 웅장함과 위대함을 느끼는 것처럼 역사도 웅장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이 되는 물줄기를 찾아보면 보잘 것 없다. 작은 물줄기 하나하나가 웅덩이를 이루고 그 웅덩이가 모여 천(川)을 이루고 천이 만나 강을 이루게 된다. 작은 기반 하나하나가 모여서 강을 이룬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기반들이 모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라는 큰 강을 만드는 것이다. 그 기반은 사람 또는 사건이 된다.
<도쿠가와 에이야스> 출처 : 구글
일본의 전국시대, 이른바 군웅할거의 시대이다. 훗카이도, 규슈, 혼슈, 시코쿠로 이루어진 4개의 땅덩어리를 두고 수많은 가문과 인물들이 자신들의 명예 혹은 부귀영화를 위해 끊임없이 타존재와 경쟁을 해온 시대이다.
영웅은 난세일때 출현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 난세속에서도 불세출의 영웅 3인방이 탄생한다.
일본의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근대시대를 연 오다노부나가, 최하층의 신분에서 단숨에 천하를 거머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에도막부를 창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패왕의 가문'은 이 세사람 중 마지막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일본역사문학에 대해서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시바료타로이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일본인작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1996년에 이미 작고했지만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패왕의 가문 역시 작가의 그런 열정으로 인해 태어난 작품이다.
이야기는 미카와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카와, 이에야스의 고향이며 그의 가문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미카와는 다른 의미로 이에야스와 그의 사람들의 기질을 표현하기도 한다. 화려함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주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미카와라는 말로 빗대어 사용하는 것이다.
작가는 미카와를 유독 강조한다. 이에야스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고 나아가 에도막부 전체의 색깔이 되는 기질이였기 때문이다.
오와리와 스루가 사이의 끼어있는 형국의 땅 미카와, 마츠다이라라는 약소 가문에서 태어난 이에야스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난세의 약소국의 군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그의 어린시절은 이미 불행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이에야스에게 천재일우의 만남이 생긴다. 바로 오다노부나가의 만남이다. 어린시절의 이 만남은 노부나가가 미츠히데에게 죽음을 당할때까지 노부나가-이에야스 동맹이라는 끈끈한 연결선의 고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 히데요시와의 고마키-나카쿠테, 미츠나리와의 세키가하라 전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스토리는 진행되고 이에야스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읽는 동안 역시 시바료타로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의 기록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하면서 이에야스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가면서도 독자들의 흥미를 잡기위해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난세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인물들의 내적갈등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읽는동안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오타들이 많다는 것이다. 재판인쇄에서는 보완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책 한권에 담으려다 보니 생략되는 부분들이 많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에서 바로 미카타가하라로 이어지는 스토리, 일본 통일의 결정적 전투인 세키가하라의 빠른진행등을 예로 들수 있겠다.
물론 책한권에 담으려다 보니 작가의 인상에서 굵게 남은 사건들이 우선시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서는 충분히 수긍하지만 말이다. 마치 한권으로 읽는 삼국지라는 느낌이랄까?
재밌게 느낀것은 작가가 이에야스를 일본인들처럼 충분한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야스라는 인물을 일본통일에 있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그가 가지는 미카와의 색깔, 의학에 능통하면서도 자신의 일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널리 보급시키지 못했다는점 등 일본이라는 나라의 관점에서 크게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작가의 이에야스의 평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세키가하라전투에서 그는 시마사콘의 생각을 빗대어 이에야스를 평가한다.
'히데요시는 긍정적인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모살이나 닌자의 사용을 꺼려한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와는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 분명 이에야스의 인품에 그늘이 될 부분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세의 시대, 약소국의 군주의 아들이라는 불행의 배경을 안고 태어났지만 천하통일로써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이에야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또다른 난세이다.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 남들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에야스의 모습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에도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볼 수 있던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