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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사과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겉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망망대해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홀로 걸어들어간다. 누가봐도 바다로 들어가 세상과의 연을 저버릴것 같은 여자라 생각할 수 있지만 바다는 마치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져 그녀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마치 그녀가 바다의 수호자처럼 말이다.
'물의가족'은 1994년에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가 된 책이다. 한동안 절판되었으나 2012년에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책이다. 이전에 소개된 책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기에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 기대감이 무척 크다.
책에 소개된 '언어로 표현된 최고의 영상미학' 이란 말이 인정될 정도로 이 책은 영상 시각적 표현이 뛰어나다. 주인공이 도시에서 자신이 살던 쿠사바마을로 돌아오면서 아름답고 훌륭한 쿠사바 마을의 풍경을 멋지게 표현한다. 또한 주인공을 비롯해 그의 가족들의 상태를(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 시각적 표현으로 사용한다. 오감중에 시각만을 사용한 책이라 하겠다.
주인공은 어떠한 나쁜 계기로 쿠사바마을을 떠나 도시로 들어가지만 답답하고 복잡한 도시에서의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엔 병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에게 구성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자신이 없어 사람의 발길조차 없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생활을 하다가 이내 숨지게 된다.
(오두막은 화려하게 비치는 도시생활의 허망을 깨닫고 무너져버린 주인공의 심신을 표현한 장소로써 허름하고 외로운 장소에서 죽음으로써 다시 순수한 영혼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은 자신이 그렇게 염원하던 쿠사바 마을의 물로 화(化)하여 자신의 가족들을 살피게 된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관찰자로서 등장한다. 쿠사바의 물이 되었지만 가족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수가 없다. 자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조부,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총 5명이다. 그 중 여동생만이 야에코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즉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않고 틀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에 대한 애정이 표현되지 않는 주인공의 심리가 비춰진 면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한 애정을 가졌던 야에코는 임신을 하게 되고 쿠사마 마을 물망천 밑에서 출산을 한다. 즉 아기는 야에코를 통하고 물망천을 통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귀산은 그 아이를 인정했다.' - 52P
아귀산은 쿠사바 마을의 산으로써 생과 사를 의미하는 산이다. 두개의 아귀산이 존재하지만 살아있을때는 오직 하나만이 보이고 죽어야만 두개의 아귀산을 볼 수 있다.
아귀산이 인정함으로써 아기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물망천에서 태어남으로써 쿠사바 마을의 물처럼 주인공의 가족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가족들은 아기의 존재를 통해 진정한 '물의가족'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물의 가족은 아름다운 쿠사바 마을과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면까지 시각적 표현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그러나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 근친상간의 소재의 등장과 죽음의 테마가 집중적이기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게 느껴진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회색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번의 통독으로 그 매력을 알기가 힘들다. 두 세번은 읽어봐야 이 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와는 처음으로 만났던 작품이었다. 시각적 표현의 뛰어남과 죽음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이 맘에 들었다. 가족의 대한 애정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