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코, 기시 유스케, 아야츠지 유키토 등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 역시 유명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명으로서 이들의 작품을 많이 접해왔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작품들에서는 신선함보다는 익숙함이 자리를 잡았고 점점 이들의 작품에서 초창기의 느낌의 충격과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시점에 시마다 소지라는 처음 듣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첫 작품이기에 어떤 느낌을 줄까?..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화가 존재할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고 시마다 소지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전철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주면서 살아가는 부랑자 노인 나메카와 이쿠오는 어느날 건어물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소비세 12엔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인 사쿠라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인을 살해하게 된다. 주변에 목격자가 많았기에 명백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었고 이전의 아이유괴살인이라는 전과기록과 가족도 없는 부랑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용의자 그것도 사회의 밑바닥 취급을 받는 용의자가 되어 경찰서에 수감된다.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요시키는 이번 살인이 단순살인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되고, 점차 사건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 숨어있는 엄청난 사연을 알게되는데... 서평을 쓸 때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너무 많은 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추리소설의 서평은 더욱 조심하게 된다. 모든것을 공개하면 그것은 책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서평을 적어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의 구도는 시발점이 되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점차 사건의 확대되고 그 안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이 책 역시 그 구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사건을 풀어과는 과정에서 요시키는 이번 살인이 과거의 인연에서부터 비롯된 것을 알게 되고 그 안에 숨어있는 비극을 알게 된다. 이 비극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우리의 역사의 비극이다. 즉 과거 일제시대의 강제징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과거의 인연에는 또 다른 살인사건이 숨겨져 있고 요시키는 지금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살인사건을 풀어야만 했다. 하지만 과거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이 아닌 까다로운 퍼즐조각 같은 의문투성이만이 존재했고 요시키 본인과 지인들의 힘으로 퍼즐조각을 맞추며 과거 살인사건의 진실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즐이 완성된 순간 그 안의 상처와 슬픔을 알게 되고 노인을 바라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연관시킨 추리소설을 처음 읽어보았기에 그 감동은 여타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랐다. 탄탄한 구성력과 사건들의 연계성이 매우 뛰어났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이 길게 되면 독자가 지루함을 느낄수 있는데 그 과정 역시 흥미진진하게 구성되었기에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작가의 스토리 전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기존의 추리소설을 다 읽고 나가면 의문의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후련함 때로는 허탈함이 느껴졌지만 이 작품은 슬픔만이 느껴졌다. 왜일까? 우리의 역사가 등장하기에 그것이 소설속의 허구가 아닌 현실이였기에 그런 감정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주인공 요시키가 느끼는 감정 전달이 너무나 크게 와 닿게 되었다. 마치 내가 요시키가 된 것 처럼 말이다. 사건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모습까지 살펴보는 것에서 고마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유지 혹은 치안유지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에 불합리한 폭력입니다.' 요시키가 나메카와의 과거를 조사하던 중 같은 교도소에서 지냈던 하타노에게 들은 말이다. 하타노는 나메카와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한다. 과거 아이유괴살인사건 역시 나메카와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누명을 당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 하타노의 대사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보내는 메세지라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기에 역사의 피해자라는 관점이 강하게 들었기에 보다 중립적으로 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사람들 또한 한국인이기에 공감을 할 것 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참 뜻깊은 책 한권을 접하게 되었다. 추리소설속에서 느끼는 보통의 감동과는 다른 보다 큰 범위의 감동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긴 했지만 왠지 이 책은 일본사람들보다는 한국사람들에게 더 읽혀질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정말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