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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물딱지야! ㅣ 하하! 호호! 입체북
키스 포크너 지음, 에릭 스미스 그림, 장미란 옮김 / 미세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변검>이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재빨리 얼굴에 쓴 가면을, 다른 가면으로 바꿔쓰는 중국전통의 기예로, 변검의 달인은 열걸음을 걷는 동안 백 개의 가면을 바꿔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키스 포크너와 에릭 스미스 콤비는 중국의 오지 마을에 사는 변검전수자 밑에서 사사라도 받았을까요?
미세기에서 출간되는 유아대상 팝업북의 ''하하 호호 입체북''의 달인(변검의 달인, 팝업북의 달인, 구매의 달인?)인 키스 포크너는, 때로는 파트너를 바꿔 가면서 리드미컬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스테판 홈즈와 조나단 램버트 등과 가장 많이 일했고, 에릭 스미스와는 첫 작업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키스 포크너의 강점은 아이들에게도 때로는 유치하게 다가갈 만큼, 쉬운 입말로 스토리를 전개한다는데 있습니다. "뭐가 이렇게 시시해?" 하신다면 되 묻고 싶습니다. 4-6세 대상이라고 못받아 놓고 출간되는 양산형 세미 팝업(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수룩한 모습마저 인간적으로 보이던데요?)은, 로버트 사부다가 7년 여에 걸쳐서 한정 제작하는 마스터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와는 태생부터 다른 것입니다.
미세기의 하하호호 입체북 시리즈는 하나같이 시시합니다, 유치합니다, 단순합니다. 그리고 정감이 갑니다. 뭔가가 불쑥 튀어나는 순간 까르륵 웃어주는 아이를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입니다. <야, 이 괴물딱지야!>라는 타이틀에서, 모리스 샌닥을 떠올리지 않을 분은 없을 듯 합니다. 샌닥의 전설적인 작품, 칼데콧 상 수상작이면서도 금서의 리스트에 한 동안 묶여있어 더 회자되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비교해보면, 그 유치함이 더 부각되지 않나 싶네요. 샌닥의 작품이 맥스의 심리에 따라 진행되면서, 아이의 에고가 극명히 표출되기도 했구요. 늑대옷을 입고 엄마가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말썽을 피워대던 맥스가 결국은 한 소리를 듣습니다.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가만히 있는 우리의 맥스가 아니듯,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거야"라고 되바라진 말을 하며, 저녁밥도 못먹고 쫓겨가던 그 모습, 너무 많이 인용되어서 지겨우신가요? 한바탕 괴물소동이 벌어진 후, 현실과 너무나 따스하게 화해하는 모습은("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지금도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문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 괴물딱지야" 라고 타박을 받는 우리의 주인공 잭을 만나러 가볼까요? 에릭 스미스는 아크릴의 강렬한 원색과 커다란 붓으로 대담하게 덧칠하는 터치를 써서 잭의 악동기질을, 거침없이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너무 두텁게 칠해진 나머지 벗겨지고 있는 듯 합니다. 분명 두툼한 종이인데도, 벽화의 겉면을 만지는 듯한 촉감도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팝업은 결국 잭의 얼굴 한 부분일 뿐인데도, 마치 생기있게, 오돌토돌 튀어나올 듯한 아이의 모습을, 적절히 그려내주는 장치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표지를 보세요. 메롱~하고 있는 잭은 삐죽삐죽 네 기둥으로 솟은 성깔있어뵈는 머리모양을 하고, 눈만은 유난히 똘망지게 그려져 있네요. 귀와 손과 달덩이도 울고 갈만큼 커더란 얼굴로 "나, 원숭이 같죠?"라고 묻고 있지 않나요? 돌돌 말린 꼬리는 또 어떻구요? 뉘집 자식인지, 원! 엄마의 약간은 촌스런 나들이 모자에, 항공모함만큼이나 커다란 구두를 꿰신고, 호박목걸이를 걸치고 신나게 노는 잭, "이 개구쟁이 원숭이야!"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쓰~윽 변검의 시범을 시작합니다. (너무 뻔하지만 놀라는 척 해줍시다!) 앗, 원숭이닷! 덕지덕지흙을 잔뜩 뭍히고 집으로 돌아온 잭, " 이 꾀죄죄한 강아지야!"라는 타박에 또 쓰~윽, 분명 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종이보다 소파며, 스탠드, 얼굴에 칠해진 파랑물감이 웬지 의도적으로 보이는 잭, "이 괴물딱지야!" 음, 다음에 어떤 가면이 휘~익 나올지 아이들이 불쑥 맞춰버릴 것 같죠? 맥스가 아직도 따뜻한 저녁밥을 바라보며 엄마와 화해하듯이, 우리의 잭도 쌔근쌔근 잠이 들고서야 "오, 착한 꼬마 천사야!"라고 엄마의 첫 칭찬을 듣네요. 파닥파닥 뛰어나니며, 온갖 장난질을 일삼던, 지나치게 건강해, 과잉행동장애 클리닉에라도 보내야할까, 걱정스럽기도하고 야단스러운 잭도, (아니, 잭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잭에서 뒤지지 않는 우리네 아이들을 생각해볼 때, "뭐야, 이 맹물 같은 반응은???"이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고만 화해합시다!) 천사처럼 잠이 들었습니다. 잠들고 나서까지 변검을 보여주는 센스!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비단 아이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가졌습니까? 언제나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도 그 아이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을 때"라구요. 나는 때로 ''타이거마스크''를 의식하며 쓰고 있나 봅니다. 다 눈치채고, 무서운 척 해주는 녀석들이라니! 권력과 부와 계급에 따라 때로는 얼굴을 바꿔야 하는 어른들에 비해, 자신의 놀이와 친구와 상상의 세계 안에서 마음껏 감정을 표출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의 바뀌는 얼굴만큼이나, 우리를 행복하고, 가슴 철렁이게 하고,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야심한 시각, 천사의 후광을 두르고 잠이 든 우리의 아이에게, 내일은 또 어떤 잔소리를, 몇 번째 가면을 쓰고 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마법같은 평온함 안에서 싸울 힘을 길러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