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자국의 유독성분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수출’하는 선진국, 쓰레기더미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생존해나가는 세계 각지의 구석진 곳의 아이들, 마약에 취한 채 내전에 끌려가 살인기계와 총알받이가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 갓 10대가 되어서 결혼해 노예처럼 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인생편력을 가진 소녀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카카오 농장에서, 카펫을 짜는 공장에서, 양귀비꽃밭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하는 짙은 피부색의 작디작은 아이들... 제 3세계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리우는 세력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일곱 살 벨키와 다섯 살 엔리케, 두 남매를 먹여 살릴 길이 없는 온두라스에 사는 싱글맘이다. 극한에 달하고,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택한 것은,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아이들에게 돈을 송금하는 것이다. 엄마가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온다고 달래고 달래던 엄마는 십 수 년이 흘러도 만나볼 수가 없다. 풍족한 것도 아니지만 엄마가 상실되었기에 누릴 수 있던 모든 것들은 벨키와 엔리케 같은 아이들에게 결코 감사의 대상이 아닌, 한없는 증오와 그리움에 다다른 애증의 대상일 뿐이다.

갓 10대를 넘긴 아이건, 장성한 나이가 되어 희미한 엄마의 잔상만 남은 아이건, 미국으로 떠나버린 엄마를 가진 중남미 국가의 엔리케들은 거리와 사춘기와 마약을 거쳐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지붕과 화물칸을 넘나들 수 있어야하며, 갱들과 갱보다 더 무법자인 현지경찰, 이민국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 당해야하고, 구타, 강간, 굶주림, 강도, 공포, 고독, 죽음을 겪어내며 멕시코의 리오그란데 강까지 이르기 위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거듭될 여정을 떠난다. 오직 엄마를 만나기 위해.

소냐 나자리오는 엔리케가 122일 동안 8차례의 시도 끝에 다다른, 엄마에의 사투를 5년의 추적과 고증 끝에 세상에 내 놓았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던 아이, 엔리케, 엔리케들은 죽음의 기차에서 살아남았고, 인간보다 아귀를 닮은 법망을 뒤집어 쓴 무법자들의 총검을 피해 살아남았고, 절망과 희망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마의 리오그란데를 살아서 건넜으니, 엄마를 만나 해피엔딩의 후일담을 들려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겨내고 신세계에 건너온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타인과 다를 바 없는 엄마와 새 가족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아웃사이더가 된 자신, 또 다시 거리와 마약과 알콜로 내몰리는 현실의 문제이다.

엔리케가 라우데스를 포용하지 못한 채, 현실과 맞닥뜨려 결국은 엄마와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장면에 이르면 <엔리케의 여정>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기본적인 메시지로 회귀한다. 여전히 중남미의 가진 것이라고는 모성뿐인 절망에 빠진 엄마들이 선택해야하는 밀입국, 여전히 죽음의 기차를 타고 ‘엄마’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의 모든 부분에 치명적인 상흔을 얻는 아이들, 미국의 이민정책의 양면성으로 괴로워하는 불법이주민들과 그 자녀 사이의 격한 단절감. 대체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야 죽음의 기차의 핏빛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으로 끊임없이 밀입국을 감행해야 하는 싱글맘과 노동자들을 포용할 길 없는 중남미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피폐함을 회복시킬 수 없고, 미국이 불법이민자들로부터 얻는 산업적인 성과와 희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으며, 죽음의 기차에 매달려 희망처럼 포장된 구원이라고 믿는 해후에 배신당하고 마는 엔리케들을 감싸안아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 을 떠나 물질로 행복을 보상하려는 엄마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실행하려는 움직임들을 멈추지 않을 계기가 되어 줄 수는 있다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세상에 뚝 떨어진(!) 순간부터, 다른 어떤 것에도 눈 돌리지 않은 채, 책읽기에만 몰두한다. 또래와 어울리는 것도 잊은 채, 잠 자는 시간, 수업 시간, 걷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청소를 할 때도, 시장을 볼 때도, 무엇보다 노년을 맞이하는 그 때 즈음에도.  

마르고, 눈 나쁘고, 수줍은 많은 아이로 (아니, 누군가와 어울려 본 적이 없는 탓에 그렇다고 짐작할 뿐!) 세상에 뚝 떨어진,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정체성은 <책벌레>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약속된 끝으로 다다르는 노년의 순간까지, 모든 인생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낸 기념비적인 인물인 것이다. 고립되고, 비사교적이며, 외통수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전재산, 즉 천장부터 바닥까지 '잊혀진 책들의 묘지'를 형상화하며 쌓인 책 무덤을 바라보다가, 시에 기부하는 장면이야말로, 책벌레(오타쿠적인 폄하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광적인격체)가 사회와의 극적 소통을 이루는 통쾌한 커밍아웃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끝장을 보기 전에 절대로 손에서 놓은 수 없는 경험, 마지막으로 언제였나요?" 내가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도서관>을 보다가 세상에 묻고 싶어졌던 말이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대기에서 고립무원의 외골수이기도 하지만, 책벌레에 대한 진정한 찬사를 볼 수 있었다. 책벌레, 독서광이 아니여도 좋다. 지금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장에 충실하려는,  유쾌하고, 단순명확한 역할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독서란 취미도, 생활도 아닌, 인생 그 자체를 걸고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것을, 지금쯤 깨달았을 당신들을 위한 바이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서바이벌 독서 현장을 생생히 중계하는 데이비드 스몰의 삽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스토리이다. 메인 삽화, 사이사이의 조각그림이 보여주는 위트의 참신함은, 언제, 어느 때, 어느 페이지의 인생을 펼쳐 보아도, 늘 해답을 던져주는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데이비드 스몰과 사라 스튜어트 커플의 모든 작품에 매진하게 만드는 입문서가 되기도 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인생을 마음껏 살아가고 있는 엘리자베스 브라운, 어떤 장애물도, 망설임도, 좌절도, 실망도 없이, 그 세계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그녀가 내게는, 천상의 시간을 지상에서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세상의 마지막 시간, 당신은 무얼 하겠습니까? -라는 클래식한 질문에 "<도서관>을 읽겠습니다" 라고 말할 준비, 만난 순간부터 정해버렸다.  

음지에서, 양지에서 '엘리자베스 브라운'적인 삶을 꿋꿋이 누리고 있을 당신, 내게 있어, 당신의 삶처럼 드라마틱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공항 벨 이마주 28
데이비드 위스너 그림, 이상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근 100년을 이어져내려온, 여전히 가슴 뛰게하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하나의 상징이다. 지금은 최고 높이의 전망대가 아니지만, 높이, 더 높이 하늘과 닿고 싶었던 바벨의 후손들이 지은 선구적인 마천루임은 틀림없다. 

영화 <러브 어페어>(캐리 그란트와 데보라 커 주연의 그 영화,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리메이크작이었던 그 영화!)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같은 영화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당당한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리고 2005년, 우리는 <킹콩>으로 다시 한번 클로즈업하지 않았나. 뉴욕의 자랑스러운 명소이자, 미국을 가장 미국답게 하는 자부심의 심장부에서, 구름이 자욱히 낀 어느 날, 마법의 시공이 열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 장난꾸러기 구름과 마주친 순간, 마음이 통한다. 구름에 올라타고 도착한 곳은 '구름공항', 세계 각국으로 보내질 구름들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엄격한 관리 시스템 속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름'다운 모습으로 찍어내지는 구름들, 빈틈없는 빅 브러더의 냉혹한 감시의 틈 안에서, 공항에 흘러든 다른 세계의 낯선 존재가 혁신을 불러일으킨다.  

붕어빵 제조기 비스무레한-ISO2001 환경마크...를 획득했는지 모를- 구름공장에 이방인의 새 디자인이 흘러든다. 더는 몽실몽실해 뵈는 뭉게구름만 만들어내지 않고, 깊은 바다의 심연을 유영하는 온작 바다생물들이, 세계의 하늘로 흘러드는 구름을 양산하는 최전방, 구름공황에 재연되기에 이른다. 하늘하늘한 지르러미를 나풀대는 물고기, 화려한 문양이 꽃을 피운 열대어, 꿈틀대는 촉수가 뻗어나올 듯한 오징어, 끈적끈적한 촉수가 달라붙어올 듯 꿈틀대는 해파리- 이름 붙일 길 없는,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괴상한 모양의 구름들이, 공항에서 흘러나갈 때가 되어서야 공장의 윗선들이 알아챈다. 이미 세계의 하늘은 바다괴물로 뒤덮히게 된 후에야.  

고정관념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존재를 인정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락하고 튼튼한 자기 위치를 권력화하고 나면, 더는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은, 수직적인 질서를 위태로운 균형으로 가까스로 지키는 일에 급급해진다. 그 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란 쌍둥이 빌딩 사이에 외줄을 묶고 위태위태하게 걸었던, 그 특별한 남자처럼, 일생에 몇 안되는 특별함인 것이다.   보드라워 뵈는 뭉게구름이고 싶을 지, 비를 촉촉히 품은 먹구름이고 싶을 지, 아무도 묻는 이 없던 구름들아, 이제는 원하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둥둥 떠나닐 수 있으니, 행복하니?  

<구름공항>은 볼수록 웅변적인 작품이다. 글이 없었기에, 진정한 그림책으로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처음 읽어주었을 때, 아니 보여주었을 때,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페이지, 한페이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둘러앉은 아이들이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하늘만큼 넓은 여유로움이 자라났다.  

63빌딩, 도쿄타워, 에펠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온 세계의 하늘과 맞닿은 마천루에서, 구름이 자욱하게 낀, 어느 한 날, 마법의 시공이 내게도 열릴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괴물딱지야! 하하! 호호! 입체북
키스 포크너 지음, 에릭 스미스 그림, 장미란 옮김 / 미세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변검>이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재빨리 얼굴에 쓴 가면을, 다른 가면으로 바꿔쓰는 중국전통의 기예로, 변검의 달인은 열걸음을 걷는 동안 백 개의 가면을 바꿔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키스 포크너와 에릭 스미스 콤비는 중국의 오지 마을에 사는 변검전수자 밑에서 사사라도 받았을까요?

미세기에서 출간되는 유아대상 팝업북의 ''하하 호호 입체북''의 달인(변검의 달인, 팝업북의 달인, 구매의 달인?)인 키스 포크너는, 때로는 파트너를 바꿔 가면서 리드미컬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스테판 홈즈와 조나단 램버트 등과 가장 많이 일했고, 에릭 스미스와는 첫 작업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키스 포크너의 강점은 아이들에게도 때로는 유치하게 다가갈 만큼, 쉬운 입말로 스토리를 전개한다는데 있습니다. "뭐가 이렇게 시시해?" 하신다면 되 묻고 싶습니다. 4-6세 대상이라고 못받아 놓고 출간되는 양산형 세미 팝업(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수룩한 모습마저 인간적으로 보이던데요?)은, 로버트 사부다가 7년 여에 걸쳐서 한정 제작하는 마스터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와는 태생부터 다른 것입니다.

미세기의 하하호호 입체북 시리즈는 하나같이 시시합니다, 유치합니다, 단순합니다. 그리고 정감이 갑니다. 뭔가가 불쑥 튀어나는 순간 까르륵 웃어주는 아이를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입니다. <야, 이 괴물딱지야!>라는 타이틀에서, 모리스 샌닥을 떠올리지 않을 분은 없을 듯 합니다. 샌닥의 전설적인 작품, 칼데콧 상 수상작이면서도 금서의 리스트에 한 동안 묶여있어 더 회자되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비교해보면, 그 유치함이 더 부각되지 않나 싶네요. 샌닥의 작품이 맥스의 심리에 따라 진행되면서, 아이의 에고가 극명히 표출되기도 했구요. 늑대옷을 입고 엄마가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말썽을 피워대던 맥스가 결국은 한 소리를 듣습니다.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가만히 있는 우리의 맥스가 아니듯,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거야"라고 되바라진 말을 하며, 저녁밥도 못먹고 쫓겨가던 그 모습, 너무 많이 인용되어서 지겨우신가요? 한바탕 괴물소동이 벌어진 후, 현실과 너무나 따스하게 화해하는 모습은("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지금도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문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 괴물딱지야" 라고 타박을 받는 우리의 주인공 잭을 만나러 가볼까요? 에릭 스미스는 아크릴의 강렬한 원색과 커다란 붓으로 대담하게 덧칠하는 터치를 써서 잭의 악동기질을, 거침없이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너무 두텁게 칠해진 나머지 벗겨지고 있는 듯 합니다. 분명 두툼한 종이인데도, 벽화의 겉면을 만지는 듯한 촉감도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팝업은 결국 잭의 얼굴 한 부분일 뿐인데도, 마치 생기있게, 오돌토돌 튀어나올 듯한 아이의 모습을, 적절히 그려내주는 장치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표지를 보세요. 메롱~하고 있는 잭은 삐죽삐죽 네 기둥으로 솟은 성깔있어뵈는 머리모양을 하고, 눈만은 유난히 똘망지게 그려져 있네요. 귀와 손과 달덩이도 울고 갈만큼 커더란 얼굴로 "나, 원숭이 같죠?"라고 묻고 있지 않나요? 돌돌 말린 꼬리는 또 어떻구요? 뉘집 자식인지, 원! 엄마의 약간은 촌스런 나들이 모자에, 항공모함만큼이나 커다란 구두를 꿰신고, 호박목걸이를 걸치고 신나게 노는 잭, "이 개구쟁이 원숭이야!"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쓰~윽 변검의 시범을 시작합니다. (너무 뻔하지만 놀라는 척 해줍시다!) 앗, 원숭이닷! 덕지덕지흙을 잔뜩 뭍히고 집으로 돌아온 잭, " 이 꾀죄죄한 강아지야!"라는 타박에 또 쓰~윽, 분명 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종이보다 소파며, 스탠드, 얼굴에 칠해진 파랑물감이 웬지 의도적으로 보이는 잭, "이 괴물딱지야!" 음, 다음에 어떤 가면이 휘~익 나올지 아이들이 불쑥 맞춰버릴 것 같죠? 맥스가 아직도 따뜻한 저녁밥을 바라보며 엄마와 화해하듯이, 우리의 잭도 쌔근쌔근 잠이 들고서야 "오, 착한 꼬마 천사야!"라고 엄마의 첫 칭찬을 듣네요. 파닥파닥 뛰어나니며, 온갖 장난질을 일삼던, 지나치게 건강해, 과잉행동장애 클리닉에라도 보내야할까, 걱정스럽기도하고 야단스러운 잭도, (아니, 잭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잭에서 뒤지지 않는 우리네 아이들을 생각해볼 때, "뭐야, 이 맹물 같은 반응은???"이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고만 화해합시다!) 천사처럼 잠이 들었습니다. 잠들고 나서까지 변검을 보여주는 센스!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비단 아이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가졌습니까? 언제나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도 그 아이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을 때"라구요. 나는 때로 ''타이거마스크''를 의식하며 쓰고 있나 봅니다. 다 눈치채고, 무서운 척 해주는 녀석들이라니! 권력과 부와 계급에 따라 때로는 얼굴을 바꿔야 하는 어른들에 비해, 자신의 놀이와 친구와 상상의 세계 안에서 마음껏 감정을 표출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의 바뀌는 얼굴만큼이나, 우리를 행복하고, 가슴 철렁이게 하고,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야심한 시각, 천사의 후광을 두르고 잠이 든 우리의 아이에게, 내일은 또 어떤 잔소리를, 몇 번째 가면을 쓰고 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마법같은 평온함 안에서 싸울 힘을 길러두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마워요, 아빠 아기동물 사진 그림책 4
우치야마 아키라 글 사진, 이선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아기동물 사진책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제일 먼저 보았던 것이 눈보다 더 하얀 솜털이 유난히 뽀송뽀송해보이는 아기 하프물범 이야기였다. 하프물범은, 딱 20일 동안만 엄마가 새끼를 키워주고서 먼 바다로 돌아간다. 아기 물범이 엄마와 있을 때, 방긋 웃고 있다거나, 헤어질 때, 눈물 자국처럼 보이는 것이 나 있다거나, 일주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 사진책을 완성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만큼, 한 생명체가 반듯한 존재로 자랄 때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성으로 가득했다. 6살 조카에게 읽어주었더니, 엉엉 울어버려서 당황했던 일도 있었다.  

두 번째로 본 것이 황제펭귄 이야기, <아빠, 고마워요>이다. 그저 첫 번째 책이 좋아서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는데, 기대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극장에서 <펭귄:위대한 모험>이 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260일간의 치열한 삶과 죽음의 기록인 그 다큐멘터리 한 편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으니까.  

펭귄은 딱 하나의 알만을 낳아,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품어주며, 소중하고, 소중하게 생명을 탄생시킨다. 엄마가 먹이를 구하러 바다러 간 사이, 아빠는 발 위에 알을 올리고, 얼음 위에 닿을 새라 두툼한 뱃살로 최대한 감싸준다. 바다까지 갔다오는 시간은 최소한 3~4달은 걸린다는데, 그동안 자기 체중의 절반을 잃어가며 새끼를 지켜낸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면, 그 빈사의 몸을 이끌고 바다에 간다. 자기몸의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 온 가족이 나누게 될 식량을 품어 오기 위해서.  

아기 하프물범 못지않게, 뽀롱뽀롱 뽀로로~를 닮은 귀여움의 결정체, 뾰샤시한 아기펭귄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기들의 '무언가를 호소하는 눈빛광선'에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한다. 옹기종기 모여서, 번갈아가며 먹이를 구해오는 단란한 가족을 생각한다면, 마음을 바꾸기를 권한다.  

여기는 남극이고, 펭귄의 땅과 바다는 쉬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다해도 수 개월간 극도로 쇠잔한 몸을 이끌고 목숨을 걸고 걷고, 걸어서 도착한 바다는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만, 바다표범같은 천적에게 단숨에 먹히게 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영화에서 흐르는 그 나레이션. "그녀가 세상에 사라지므로써 두 생명이 함께 죽게 되었다." 가족의 구성원 중 한마리라도 불의의 사고가 생긴다면, 펭귄 일가는 더는 생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다 극복한다고 해도, 극지방에서 하루하루 생명을 지키는 것은 사투이다. 연약하고 무리의 경계에 머물러야 하는 몇몇은 끝내 생명을 놓아야만 하고, 뽀송뽕송한 솜털이 채 가시기 무섭게 이별이 다가온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한계를 초월해가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무리를 목격하고나니, '귀여워~'라는 단순한 일갈이 더는 나오지가 않는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미물이 이렇게까지 존경스러울 수도 있다니. 사람이 가장 생명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든다. 생명이 생명으로 전해지는 그 귀한 경험을 사람도 하루하루 하고 있을진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면한다면, 썩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아니, 없을 것 같다!),  

아기를 발 위에 올려놓는 그 한 장면을 담기 위해 2년에 걸쳐 남극을 오가야했다는 사진작가의 혼신의 한컷한컷 앞에, 장황한 묘사며, 입밖으로 내어야만 흡족했던 그간의 책을 읽는 고정된 모델이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본능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제자리를 지키는 그 원시의 모습 앞에, 종을 떠나, 세대를 떠나, 매체을 떠나, 진실하게 흐르는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 하나만을 남기게 된다.  

 

사랑은 나를 송두리째 소중한 존재에게 주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