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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공항 ㅣ 벨 이마주 28
데이비드 위스너 그림, 이상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근 100년을 이어져내려온, 여전히 가슴 뛰게하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하나의 상징이다. 지금은 최고 높이의 전망대가 아니지만, 높이, 더 높이 하늘과 닿고 싶었던 바벨의 후손들이 지은 선구적인 마천루임은 틀림없다.
영화 <러브 어페어>(캐리 그란트와 데보라 커 주연의 그 영화,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리메이크작이었던 그 영화!)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같은 영화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당당한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리고 2005년, 우리는 <킹콩>으로 다시 한번 클로즈업하지 않았나. 뉴욕의 자랑스러운 명소이자, 미국을 가장 미국답게 하는 자부심의 심장부에서, 구름이 자욱히 낀 어느 날, 마법의 시공이 열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 장난꾸러기 구름과 마주친 순간, 마음이 통한다. 구름에 올라타고 도착한 곳은 '구름공항', 세계 각국으로 보내질 구름들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엄격한 관리 시스템 속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름'다운 모습으로 찍어내지는 구름들, 빈틈없는 빅 브러더의 냉혹한 감시의 틈 안에서, 공항에 흘러든 다른 세계의 낯선 존재가 혁신을 불러일으킨다.
붕어빵 제조기 비스무레한-ISO2001 환경마크...를 획득했는지 모를- 구름공장에 이방인의 새 디자인이 흘러든다. 더는 몽실몽실해 뵈는 뭉게구름만 만들어내지 않고, 깊은 바다의 심연을 유영하는 온작 바다생물들이, 세계의 하늘로 흘러드는 구름을 양산하는 최전방, 구름공황에 재연되기에 이른다. 하늘하늘한 지르러미를 나풀대는 물고기, 화려한 문양이 꽃을 피운 열대어, 꿈틀대는 촉수가 뻗어나올 듯한 오징어, 끈적끈적한 촉수가 달라붙어올 듯 꿈틀대는 해파리- 이름 붙일 길 없는,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괴상한 모양의 구름들이, 공항에서 흘러나갈 때가 되어서야 공장의 윗선들이 알아챈다. 이미 세계의 하늘은 바다괴물로 뒤덮히게 된 후에야.
고정관념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존재를 인정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락하고 튼튼한 자기 위치를 권력화하고 나면, 더는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은, 수직적인 질서를 위태로운 균형으로 가까스로 지키는 일에 급급해진다. 그 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란 쌍둥이 빌딩 사이에 외줄을 묶고 위태위태하게 걸었던, 그 특별한 남자처럼, 일생에 몇 안되는 특별함인 것이다. 보드라워 뵈는 뭉게구름이고 싶을 지, 비를 촉촉히 품은 먹구름이고 싶을 지, 아무도 묻는 이 없던 구름들아, 이제는 원하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둥둥 떠나닐 수 있으니, 행복하니?
<구름공항>은 볼수록 웅변적인 작품이다. 글이 없었기에, 진정한 그림책으로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처음 읽어주었을 때, 아니 보여주었을 때,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페이지, 한페이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둘러앉은 아이들이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하늘만큼 넓은 여유로움이 자라났다.
63빌딩, 도쿄타워, 에펠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온 세계의 하늘과 맞닿은 마천루에서, 구름이 자욱하게 낀, 어느 한 날, 마법의 시공이 내게도 열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