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엔리케의 여정(소냐 나자리오 글/하정임 역/다른)

    (엄마를 만나고, 신세계를 찾았어도 엔리케의 여정을 끝이 아니다.

     해피엔딩이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었던 구원을 가장한 생존기.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기차에 오르는 엔리케들에게 안식을...)

 

024 정자전쟁(로빈 베이컨 글/이민아 역/이학사)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너무 코너에 몰아붙이는 책.

     학술적인 관점과 상식의 선에서 화해를 이루기 힘들었던 경험)

 

 

 

025 알렉산더의 연인(샨사 글/이상해 역/현대문학)

    (샨사가 중국을 탈피하면 그 매력이 너무 쉽게 증발되어 버린다는 것을 확인.

    <알렉산더의 연인>보다

    절판된 <바둑 두는 여자>를 받을 수 있어서 탁월한 팩키지같아 보이나,

    억망인 재질을 박스세트로 무마하려는 관행에 또 다시 실망.

    샨사의 차기작이 대륙으로의 회귀와 유려한 서사이기를...)

 

026 겨울이야기(셰익스피어 글/이윤기 이다해 역/달궁)

    (나무랄 데 없는 번역. 스타번역가의 마스터피스가 될 수 있는 한 권.

    그러나 빈약한 포켓용 사이즈에 이해불가한 일러스트,

    과도한 가격은 1+1 행사가 아니었더라면 선뜻 구매하기 힘들었던 구성)

 

027 파이이야기(얀 파텔 글/공경희 역/작가정신)

    (묵혀둔 이야기를 뒤늦게 읽는다해도 그 참신함은 증발되지 않았다.

    그 무국적성이 여느 유명작가를 연상시키기도 했으며,

    분분한 논란 또한 클리셰가 되었으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대단한 필력을 확인)

 

 

 

028 나무야 안녕(도종환 글/황종욱 그림/어린이나무생각)

    (우리 작가 그림책 중에서도 수준급이었던 책이어서 다행이었다.

    시인의 네임밸류만큼 투명하고 건강한 메시지,

    황종욱의 별빛이 쏟아질듯한 유려한 삽화가 인상적으로 어우러진 책)

 

029 내 친구가 마녀래요(E.L 코닉스버그 글/ 장미란 역/문학과지성사)

    (<클로디아의 비밀>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읽은 책.

    너무 늦게 읽었는데도 여전히 도발적이면서 경쾌하다.

    제니퍼를 서글프거나 동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심술궂은 당당함을 부여한 점이

    1971년이라는 발표년도를 무색케한다)

 

030 클로디아의 비밀(E.L 코닉스버그 글 그림/비룡소)

    (몇 번을 읽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ANNE>시리즈와 <초원의 집> 다음으로 많이 읽은 것 같다.

    아동도서이지만 <다 빈치 코드>의 구성보다 더 탄탄하다고 자부함)

 

 

 

 

 

 

 

 

   

 

 

031 바람의 열두 방향(어슐러 르 귄 글/최용준 역/그리폰북스)

    (르 귄의 책들은 절판과 개정판이 공존한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SF의 장르적 특징을 초월해

    가장 인상적인 단편선 중 하나였다.

    '샘레이의 목걸이'의 아련함이 사무치게 기억에 남는다)

 

032 어둠의 왼손(어슐러 르 귄 글/서정록 역/시공사)

    (카트에 담아두었다가 절판이 되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양성 외계 종족의 시선이 인간적인 것의 기준을 온통 헝클어뜨린다.

    후반부가 속도가 나지 않아 고생이 심했던 한 권)

 

033 라마와의 랑데뷰(아서 클라크 글/박상준 역/옹기장이)

    (고려원에서 나았던 7부작 <라마>를

    달랑 한 권만 개정판으로 내놓은 그 센스가 심히 궁금하다.

 

<라마>시리즈의 전반부는 역대 최강의 SF로 꼽을만 하지만 후반부는 지리하다. 

완역만 신경쓰지 말고, 완간해주기를 바란다)

 

 

 

 

 

---------------------------------- 총 11권. 리뷰완료도서는 6권

 

 

 

2월엔 구매한 도서의 박스만 뜯어낸 채,

밀려있던 책들만 읽은 느낌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 5권이 어제 도착했는데

3월 중에 두 권 이상 끝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탈장르화해서 읽은 것 같은데,

문학에 매진하지 못해, 2월의 독서는 생경한 느낌으로 남는다.

가장 좋았던 책은(그리고 속도전에서 패배해버린)

<바람의 열두방향>과 <어둠의 왼손>이다.

어슐러 르 귄의 절판본 때문에 도서관 출입이 계속될 것 같다.

 

 

역대 최소의 권수를 기록한 2월.

지금으로선 3월의 다양한 독서를 기대하고 있다.

 

 

 

 

(읽고 있는 책)

 

행복을 파는 외계인

셀프

내 이름은 빨강 2

로빈슨 크루소 2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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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010

 

   겐지이야기 전 10권

    (무라사키 시키부, 세토우치 자쿠쵸, 김난주, 한길사)

 

 

(너무나 리스크가 큰 출혈이었던 관계로 고민고민하다가...

    그렇지만 2007년을 고대해왔던 완역판과 시작할 수 있도록

    쉽지 않은 결심을 한 '나'에게 영광을...^^;;

    기존의 극악무도했던 나남판과는 별개의 문학작품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혁신적인 겐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 빨리 읽어버려서 아쉬웠지만,

    몇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을만큼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미덕!

    그러나 비싸다!!! ㅜ ㅠ)

 

 

 

 

 

 011  도쿄타워 (릴리 프랭키, 양윤옥, 랜덤하우스 코리아)

 

(릴리 프랭키는 작가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라고 해야 맞다.

그토록 곤궁하고 눈시울 적시는 인생을 살았던 그가

지금은 SMAP의 노래를 작사하고 버라이어티를 누빈다.

드라마보다 먼저 읽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차 때문에 감동이 퇴색해버렸다)

 

012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양윤옥, 랜덤하우스중앙)

 

(일본이 '순애영화'로 들끓었을 때의 폭풍의 핵에 있던 작품.

문제는 작가와 작품과 영화가 제대로 된 줄긋기를 할 수 없을만큼

다 닮아 있다는 데 있다.)

 

 
 

 

 

     

013  잔혹한 세계사 (테리 디어리 저, 마틴 브라운 그림, 남경태, 문학동네)

 

        (뒤집어보는 세계사 중에서도 가장 피투성이인 책이다.

        도망갈 겨를을 주지 않은 채 폭로하기에 바쁘고, 또한 진실이기에 괴롭다.

        위인이 아닌 악당들에 대해 가감없이 들려주는

        어린이들에게는 감춰두고 싶은 책!ㅡ ㅡ;;) 

   

        014  코스모스 (칼 세이건, 홍승수, 사이언스북스)

 

        (그 많은 저서 중에서 <코스모스>만 읽었다. 그리고 겨우 다시 읽었다.

        진중하고 똑바른 시각으로 우주를 주목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이 이후 우주를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는 한참을 헛돌 것 같은 기분)

 

        015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이난아, 민음사)

 

        (<겐지이야기>를 읽는 틈틈히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잡았던 책.

        웬걸...

        머리를 식히기 위한 책이 아니라 뒷덜미를 붙들고 질식하게 만들었다.

        겨우 1권을 다 읽었고, 천천히 2권에 도전할 생각.

        어렵다기 보다는...

        빨리 읽어서는 절대절대 실례일 듯한 위험한 이스탄불의 향기가...)

 

 

 

 

 

 

016  타샤의 집 : 손끝으로 만나는 따뜻한 세상

       (타샤 튜더, 리처드 브라운, 윌북)

 

        (타샤 튜더 시리즈는 <타샤의 정원> 한 권으로만 접해도 충분하다.

        반복이고 습관이다.

        타샤 튜더보다 리처드 브라운의 사진 때문에 자꾸만 사게 된다.

        이제 시리즈가 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솔직하고, 솔직하게...)

 

       017  세라 이야기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타샤 튜더, 시공주니어)

 

        (벼르고 별러 왔던 네버랜드클래식넘버!

        버넷 부인도, 세라 때문도 아닌 타샤 튜더의 삽화 때문이다!)

 

        018  세드릭 이야기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찰스 에드먼드 브록, 시공주니어)

 

        (<세라 이야기>와 세트격으로 구매.

        세드릭의 삽화가는 타샤 튜더가 아닌 찰스 에드먼드 브록이지만,

        훨씬 호화스럽고 유려하다.

        벨벳 옷을 입고 백합을 든 오스카 와일드처럼...)

        

        019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타샤 튜더, 시공주니어)

 

        (타샤 튜더의 출세작이기도 한 <비밀의 화원>,

        그러나 흑백의 삽화안에서 그녀의 색채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버넷 부인, 전권 완성!)

 

        020  물의 아이들 (찰스 킹즐리, 워릭 고블, 시공주니어)

 

 

    (네버랜드클래식의 30번째 신간이다.

        이로써 총 30권 중 20권을 모았다.

        빨리 허클베리 핀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신간을 기다리는 묘미가 좋다.

        <물의 아이들>의 광고문구가 너무 많은 클리셰로 작용한 것은 감점!)

 

 

 

 

 

       021 ~ 022  80일간의 세계일주 1, 2 (쥘 베른, 김주열, 창비)

 

        (일단 너무 화가 난다.

        2005년의 쥘 베른 서거 100주년 기념판 완역본들이 절판투성이인게!

        창작시대의 스칼라월드북스 <80일간...>이 절판이며,

        열림원의 김석희번역판도 절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창비판으로 사서, 시공주니어레벨문고 옆에 두었다.

       

        다시 읽을수록 스테레오 타입의 영국인에 대한 묘사에 느껴지는

        쥘 베른의 속좁음에 실소가...ㅡ ㅡ;;)

 

 

 

 

 

<겐지이야기>만 읽기로 하고 전집을 산 것인데,

온통 계획이 헝클어져버렸다.

1월에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한 3월까지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정도다! 

(과연???)

 

 

2007년의 최고의 책으로 미리 뽑겠다.

<겐지이야기>!!!

 

 

 

 

1월엔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고전으로 시작했다.

 

<겐지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을터인데!

 

2007년도 문차일드 도서관은 시작부터 파란만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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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취해버린 소녀는 말도 하지 못했다.

마차에 기대어 뼈가 앙상한 두 손을 마주잡고 머리 위에서 빛나는 하얀 꽃을 황홀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차는 그곳을 지나 뉴브리지로 가는 기다란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지만

소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입도 열지 않았다.

여전히 황홀한 표정으로 저녁놀 진 서쪽 하늘을 저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듯한 배경의 앞을 가로질러가는 화려한 환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지나온 그 새햐얀 길, 그곳을 뭐라고 부르지요?"

 

"<가로수 길> 말이냐? 아주 예쁜 곳이지."

 

"예쁘다고요? <예쁘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요. 어울리지 않아요.

<아름답다>로도 안되고요. 모두 모자라요. 아, 멋있어요! 정말 멋있어요!

그토록 완벽하게 멋있는 곳은 처음 보았어요. 여기가 뿌듯해지는 것 같았어요."

 

소녀는 한 손을 가슴에 갖다댔다.

"이상하게 이 언저리가 쑤시는 듯했지만 기분나쁜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런 아픔을 느껴 본 적 있으세요? 크스버트 씨?"

 

"글쎄다, 생각나지 않는구나."

 

"나는 가끔 그래요. 굉장히 아름다운 것을 보면 반드시 그래요.

그토록 아름다운 곳은 <가로수길>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런 이름은 아무 뜻이 없어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환희의 하얀 길>이라면 어떨까요?

멋있는 공상적인 이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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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은연중에 집어 드는 다국적 기업의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기아로 고통 받는 제 3세계의 사람들을 더욱 사지에 몰아넣는 일에 동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서늘해져온다. 유기농, 친환경, 웰빙을 표방하며 생산되는 먹을거리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폭력적인 논리 안에서 기아 난민의 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불편한 깨달음에 전율했다.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절식과 소식과 식이요법에 강박적으로 시달려야하는 시대를 사는 나는, 내외부적인 부조리 탓에 생존을 위한 식량을 원천적으로 허락받지 못하는 세계의 10억 인류들을 잠시나마 직시하며 내 죄책감의 무게가 허상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루 10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게 되었는지의 모순을 다각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 아시아의 정치적 혼돈, 중동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폭압, 남미의 환경난민, 북한의 한계에 다다른 식량사정... 지글러의 말대로 굶주리고 있지 않은 자들은 의식적으로 기아의 존재에 대해 봉인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절대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는 안도감과 함께.


  제 3세계 국가들이라고 해서 만성적인 기아와 빈곤을 조장하고 방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패에 찌든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정권을 세우고 빈민구제와 경제회복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입장에서는 그네들의 자립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금세기 초에야 공개되었던 CIA의 비밀문건들에 남겨진 추악한 진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오히려 미국이나 프랑스 등은 군벌들의 쿠데타를 도모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자국의 대기업의 독점적 경제 지배를 위해 개혁정책을 전복시킨다. 살해당한 칠레의 아옌대 대통령과 브루키나파소의 상카라의 후계자들이 극악한 국제적인 질서 속에서도 자본의 정의만이 승리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지고 고군분투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프리카에도 거대하고 비옥한 농토가 있다. 그렇지만 생존에 필요한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농작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거대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존의 원시림은 군부의 묵인 아래 서구의 거대자본을 불리는 방편으로 계속 잘려나가고 있으며, 세계의 대도시 곳곳에서는 부자들의 쓰레기 더미를 생명줄로 삼아 연명하는 극빈층들이 있다. 평화유지군이 철수하면서 안전하게 전해지지 못하는 국제구호품들은 군벌들이나 독재 권력의 부로 축적되고 있으며, 후진국들이 민중정부를 세우지 못하도록 경제봉쇄를 풀지 않는 미국의 값싼 동정심은 지뢰밭이 가득한 곳에 한 끼 식량을 투하하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결국 가난한 자들이 생존할 권리는 점점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협약이나 다보스 포럼, 시카고 곡물 거래소 같은 국가보다 부유한 개인들의 부를 보장하기 위한 파워게임의 결과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신자유주의에 거세게 반발하며 불법과 준법의 경계를 넘다들며 활동하는 NGO들을, 오히려 더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더 많았던 것을 인정한다. 김혜자 씨나 구로야나기 테츠코, 안젤리나 졸리의 월드비전, 유엔친선대사 활동들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사정거리 밖에서 관망하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아가 가난을 척결해주고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잉여인구를 해소하는 필요악이라는 자연도태설에까지 동조할 수는 없다. 지글러의 결론처럼 우리네의 의식의 변화가, 다시 사람만이 희망인 그런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되어, 기아와 싸울 수 있는 저력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난민캠프의 어린이 무덤을, 끔찍하게 느린 시간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다 지는 생명을,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아이를 낳느라 생을 바치는 어머니들을, 비타민 A의 결핍으로 실명하는 아이들을, 지배층의 부패와 정권유지의 방패막이로 내몰리는 북한의 주민들을, 낙인처럼 대물림되는 가난함 속에서도 생존할 권리를 지켜내려는 그들의 아픈 생들을 직시해야만 한다. 눈 돌리고, 저만치 밀쳐놓으면 내 삶이 윤택해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 정신은 죄의식으로 물들 것이다. 구조적, 경제적 기아를 동정과 적선으로 몰아낼 수는 없지만, 자체적인 기억상실로 간과해버린 지금까지의 나태한 의식으로는 절대 맞설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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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반걸음만 앞서가라
이강우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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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사이사이에 삽입된 수채화들을 보고 있자니,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건강하고 맑은 내면이 보인다. 아마추어 치고도 썩 잘 그린 그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담아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아주 적절한 시도라고 보여 지는 것 같아,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 각국의 명소를, 프로의 기술로 찍은 사진이나 본인이 등장하는 배경의 컷으로 내세웠다면 분명, 반발심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강우의 <딱 반걸음만 앞서가라>의 쉽고도 소박한 기치와 제법 어울리는 효과적인 장치였다고 책을 덮은 지금도 선명한 색채가 기분좋게 남는다.


  광고계의 거인이고 전설이라는 이강우에 대해, 책날개에 적힌 이력을 보고서야, ‘아, 그 광고’라는 단순한 기시감을 확인했을 뿐이다. 후기에 붙은 이만재라는 카피라이터의 글처럼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이강우를 모를 리 없다”는 자부심이 이 책의 출판논리와 관통해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들은 저자의 인품과 평판이나 전설적인 에피소드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강우스러움’이 묻어나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부유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저자가 밝힌 대로, 신변잡기적인 일상과 광고계의 일화들을 소소히 풀어나가는 책을, 에세이라는 광범위한 경계 안에는 놓을 수는 있다. 일독하면서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인기 좋은 블로그의 주인장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를 알지 못하면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수많은 직함과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인맥을 거느리고, 칭송받는 광고계의 ‘난 사람’인 이강우가 들려주는 ‘반보주의’는 평범함 속에 깃든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술술 풀려가는 일상 속에는 후덕한 중후함과 성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깃들어 있다.


  그가 만든 광고는 너무나 유명해서 TV를 몇 해째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억될 정도이다. 오래 남을 만한 것, 여유와 정감이 감도는 사람냄새,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씀씀이... 이강우의 광고에, 글에, 인생에 묻어나는 그만의 일관된 철학이 억지스럽지 않아 책을 읽는 내내 평안함을 느꼈다. 그가 그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분초를 다투는 광고 안에, 유행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식되는 그 치열한 세계 안에, 너무 바삐 살아가다 놓쳐버릴 수 있는 작은 것들의 귀한 가치를 녹여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나도 별다른 것은 없지만, ‘딱 반걸음만 앞서가는’ 것을 실천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 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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