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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콘트라베이스>
이 책은 한 사람의 혼잣말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고,
그래서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유머를 믿었기에 이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과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의 애독자인 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해박한 음악적 지식이 저의 진취성을 만족시켜주면서
유감없이 발휘되는 작가의 유머 때문에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의 <콘트라베이스>란 어떤 악기일까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으로 콘트라베이스란 악기를 검색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콘트라베이스란 현악기는
첼로보다 몸체가 더 크지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35세의 젊은 남자 주인공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 형제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님이야, 그를
사랑했겠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데야 어쩌겠어요.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던 부모님에 대한 분풀이로
예술의 길에 들어섰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데 자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베이스란 악기가 없으면 안 될만큼 중요한 악기의 주자이기 때문이지요.
지휘자는 사실 음악사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19세기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국립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도 가끔은 지휘를
전혀 따르지 않고 단원들 마음대로 연주할 때도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지휘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발장단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연주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지휘자가 단원들 앞에서
자기 맘대로 허우적거리게 놓아둔다고 합니다.
첼로보다 크고 이동이 불편할 정도로 큰 이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는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 같기도 하지만 헤어지기 어려운 오래
된 애인과도 같습니다. 마치 주인공의 삶처럼 말입니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도약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주인공은 호소합니다.
해박한 음악적 지식과 현대까지도 명성을 누리는 음악가들의 성품, 에피소드들을
꽈배기처럼 틀거나 양말 속처럼 뒤집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이고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그의 직업은 공무원인만큼
정해진 근무 시간만 잘 지키고 성실하다면 평생동안 신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입니다.
1년에 휴가도 5주일이나 받고 월급도 2년마다 자동으로 오르고요.
하지만 주인공은 이처럼 안정된 직업을 가진 현재의 삶에 마음 편히
안주할 수가 없습니다.그의 말에 의하면 오랫동안 밀체된 공간에서
단체에 맞추어 살아야 했던 고정된 직업에서 비롯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체로 소속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콘트라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주인공 혼자서는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주인공이 캑의 도입부에서부터 수없이 풀어놓았던 혼잣말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은 자신이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이고,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만큼 자부심과 긍지가 있었는데
왜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메조소프라노 가수의 노래에 감동하고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인공은 20대 후반인 그 아가씨 노래를 듣고난 이후로 줄곧 그녀만 생각했으니까요.
주인공은 상상으로라도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여러가지 길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또, 그 아가씨와 주위 사람들의 관계도 생각해 보고요.
하지만 주인공의 현재 성격을 보나 단체에 매인 직장 생활에서 볼 때,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없으며, 더구나 꿈에도 그리는
그녀와의 관계는 더욱 가질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지만, 그럴 경우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단체에 소속되지 않으면 콘트라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주인공의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가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콘트라베이스 주자만 가지는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사람은 항상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질적인 준비, 마음의 준비 같은 것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현재 35세인 것으로 보아 십수년정도 단체에 소속된
생활을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우리네 가정의
가장님들과 주부님들 또한 이 콘트라베이스 주자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변화시키지 못하는 심정 말입니다.
그래서 이 도발적인 사랑의 감정은 그 사람의 일생을 한 순간에 파멸시키거나
뒤집어놓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가정의 가장님과 주부님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 바로 콘트라베이스 주자입니다.
그는 아직 35세이고, 젊습니다. 인생의 중반에 들어섰고, 변화를 시도해 볼만한 나이라고 봅니다.
나이 40이 되기 전에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처럼 그 소프라노 가수와 맺어지지 않더라도
변화할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단체에 소속되었을때만 연주하던 자세를 고쳐야만 합니다.
주인공의 방음된 방을 떠나서 말입니다.
새벽 기차를 타고서 하루 종일 걸려서라도 닿을 수 있는 시골이 있다면
그곳을 찾아가서라도 혼자서 콘트라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휴가 기간에도 두려움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방음된 자기 방에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니까 하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음악당에 가서 그가 흠모하는 여가수의 이름을 외쳐 부를 것이 아니라
그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악상을 떠올려서 작곡을 해 보는 것입니다.
주인공 남자가 그 여성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여가수의 노래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무의식적인 내면이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건조하게 살아왔던 삶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남자들의 무리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진 여성성(아니마)을 해방시켜야만 합니다.
이것이 콘트라베이스 주자에게 선물하는 저의 마음의 선물입니다.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를 읽고......ⓒ金慶子(함초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