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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해서 그랬어!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
정연철 지음, 조미자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11월
평점 :
'속상해서 그랬어!'
살다보면 어른에게든 아이에게든 속상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속상한 일이 발생했을 때 꾹 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참지 못하고 이를 박으로 분출하는 사람도 있다.
'속상해서 그랬어!'라는 제목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속상함을 참지 못하고 세상과 타인을 향해 분출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책 표지 그림에서도 아이가 캔을 힘껏 발로 차고 있는 모습에서 이 아이에게 뭔가 속상한 일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속상한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이 책에서는 주인공들이 어떤 행동들을 보여주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은 여럿이다.
어린이인 진수, 기열, 두호와 어른인 미숙이다.
그리고 어린이인 진희, 어른인 두호의 아빠 그리고 어르신인 진수 할머니, 기열 할머니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 중에서 속상한 일이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주인공은 진수, 기열, 미숙이다.
나무 배, 나무 물고기, 나무 새라는 제목 아래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 편의 동화가 아니라 하나의 동화가 느티말이라는 시골 동네를 하나의 배경으로 하여 각기 다른 줄거리로 전개된다.
'머릿속에 안 좋은 기억을 갉아먹는 벌레가 살았으면 좋겠다.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 건 정말 괴롭다. 어른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던데 내 시간은 불량품인 모양이다. 아직 그때 일이 또렷한 걸 보면.(p.8)' 이라는 글과 함께 진수의 이야기로 동화가 시작된다.
표현이 동화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수준이 높게 느껴졌고, 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많았다.
진수는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아빠에 의해서 동생과 함께 시골에 있는 할머니집에 맡겨진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진수의 아빠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고, 속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동화의 첫번째 속상함은 진수의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진수네 가족의 속상한 일에 따른 결과는 그렇게 진수네 가족들이 서로 헤어지는 것이었다.
진수네 가족은 속상해서 그랬던 것이다.
진수 할머니가 사는 느티말 시골에 있는 민박집에 두호네 가족이 온다.
두호네 가족은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빚을 많이 지게 되어 시골로 피신을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속상함의 원인은 결국 빚이었다.
도시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온 두호네 가족은 진수를 무시하지만, 결국에는 두호는 진수와 어울리게 된다.
빚에 시달려 도망온 가족의 아이가 가진 자존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동안 두호와 친하게 된 진수는 다시 시골을 떠나는 두호에게 나무 조각배를 선물한다.
두호는 시골을 떠나지만 진수는 여전히 시골에 남아있어야 했다.
진수가 두호에게 준 나무 조각배는 곧 항해를 앞두고 닻을 올리는, 새출발을 준비하는 배를 의미한다.
진수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까칠이 친구가 있다.
도시에서 아토피를 앓다가 시골로 온 기열이다.
아토피 때문에 시골로 왔다고 하지만 기열이 시골로 오게된 정확한 이유는 기열 부모의 이혼때문이다.
곧 이혼을 앞두고 있는 기열의 엄마는 아토피 치료를 위한다는 이유로 기열을 시골 할머니집으로 보낸다.
기열은 피부에만 아토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아토피가 있는 아이였다.
까칠함의 대명사격인 기열은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고, 선생님과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할머니와 외삼촌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토피를 자극하는 인스턴트 식품을 읍내에서 사먹고, PC방을 다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수시로 다투기도 한다.
기열은 이런저런 속상함때문에 그렇게 까칠하게 행동한 것일까?
속상해서 그랬던 것일까?
기열이 진정으로 치료를 해야하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를 다치게 한 벌로 진수와 진수 할머니를 돕던 기열은 진수와 친하게 되면서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진수 할머니와 함께 산에서 버섯 따는 일을 한 기열은 산에서 내려와 가려움과 땀을 없애고자 개울가에 몸을 던진다.
진수의 개울 약국에 기열도 몸을 던진 것이다.
그래서 기열이 치유의 행운을 얻게 된 것일까?
진수집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저녁식사를 하고 가는 기열에게 진수는 나무 물고기를 선물로 준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십여 년만에 느티말 시골 민박집에 온 미숙의 이야기이다.
미숙은 다단계회사에 들어가 산더미 같은 빚을 져서 빚독촉을 피하러 시골로 도망을 왔다.
미숙은 오년 전에 자신의 딸 희주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느티말 시골에 와서 만난 진희를 보면서 미숙은 희주를 그리워한다.
미숙, 진수, 기열, 진희 사이에 여러 일들이 발생하면서 미숙은 느티골 시골을 떠나 다시 도시로 올라가 정리를 한 후 다시 인생 2막을 살 것을 다짐한다.
미숙의 마음이 변화하게 된 사건에도 느티골 개울이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미숙이 온 이후로 기열의 까칠했던 마음도 많이 변하였고, 느티골 시골을 떠나는 미숙에게 기열은 나무 새를 선물한다.
나무 배, 나무 물고기, 나무 새는 새로운 출발과 치유를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가 두호에게 준 나무 배가 그랬고, 진수가 기열에게 준 나무 물고기가 그랬고, 기열이 미숙에게 준 나무 새가 그랬다.
모두 속상함을 떨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격려의 선물이었다.
이 책은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부모의 이혼, 할머니와 사는 결손가정의 아이들, 사기, 다단계회사, 몰락, 카드빚, 빚독촉, 도망...
이 책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동화이지만, 내용은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느티골 시골을 배경으로 참 잘 쓴 소설같은 동화였다.
깊은 공감이 가게 하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은 책이어서 읽는 동안 작가의 필력이 탁월함을 연신 느끼며 읽었다.
'나는 내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는 게 싫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그 속으로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것 같다.(p.12)'
함께 있던 사람과의 이별을 정말 잘 나타낸 표현이었다.
'난 아빠와 엄마가 미워 눈물이 났다. 개울에 몸을 푹 담갔다. 신기하게도 개울물이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늘에 있는 별도 개울로 내려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수세미 속 같이 엉켜 있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개울가는 언제나 나한테 약국이다. 개울이 주는 진정제는 효과가 뛰어나다. 개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곤두박질치던 내 기분도 어느새 돌돌 차분해진다.(p.14)'
진수에게 느티골 개울은 약국이다.
그리고, 기열에게도 개울은 약국이 되었고, 미숙에게도 개울은 약국이 되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약국 같은 존재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산이든 바다이든 개울이든 사람이든 자신의 속상함을 이해하고 안아주고 없애주는 약국같은 존재가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룬 소재가 그다지 밝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표현법과 전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작가가 쓴 다른 동화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에 교사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되어 여러 일들이 겹쳐져 수시로 푸념하고 한숨을 쉬다가 청송에 있는 주왕산에 가서 산길을 걷다가 만난 마을의 개울가에서 치유의 느낌을 받았고, 맑은 개울이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정을 동화로 옮긴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속상한 일들로 힘들어 했던 여러 주인공들은 개울이 주는 진정제와 치료제로 치유를 받아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주인공들이 다시 새출발을 한다는 것을 보고서 이 책의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아니면 해피스타트이기 때문에 아직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속상해서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주인공들은 그 속상함을 치유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속상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 속상함을 잘 이겨내어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는 강한 마음이 필요하고, 속상함을 치유시켜줄 수 있는 자신만의 약국같은 존재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 속상함을 안겨준 이혼과 빚은 우리가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것들이다.
피할 수 있는 속상함은 반드시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아이들이 이 책의 내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읽은 후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 속상해서 그랬어! 독서 후기 포스트는 푸른숲주니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