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인생 수업
에디 제이쿠 지음, 홍현숙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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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인생 수업

 

동양북스에서 출판한 에디 제이쿠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그의 감동 실화와 인생 교훈을 담고 있다.

 

에디 제이쿠는 1920년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유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유대인으로 독일에 정착했다정밀 기계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어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세우고 에디가 태어났다라이프치히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향악단이 있었으며바흐슈만멘델스존 등의 음악가뿐 아니라괴테라이프니츠니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시인 및 철학자에게 영감을 준 도시였다.

 

유대인은 수백 년 동안 라이프치히 사회의 중추 역할을 했다그러나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기 시작한다.

에디는 기계공학을 공부했으나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다아버지는 그에게 가짜 서류를 만들어 독일인 이름으로 기계공학 대학에 계속 다니도록 했다.

 

1938년 11월 9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스무 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결정은 그의 인생에 있어 최악의 실수였다.

 

그날은 크리스탈나흐트라고 수정의 밤으로 불리는 날이었다독일인은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독일 전역의 유대인의 집과 상점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으며 허물었다군중은 폭도로 변했고 전날까지 함께 웃었던 이웃과 친구들은 폭력과 약탈에 가담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200년 된 그의 집은 무너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닥스훈트 룰루는 군인의 칼에 쓰러졌다그는 존엄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죽지 않을 만큼 구타를 당한 그는 군인에 의해 이송되었다수용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의 신변에 닥친 파도는 격동에 휩싸였다.

 

크리스탈나흐트가 지나고 부헨발트로 이송된 날에는 더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부헨발트는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제 수용소로인근 너도밤나무 숲의 이름을 붙인 곳이다이곳은 고문당하는 수감자들이 지르는 비명 때문에 노래하는 숲으로 악명이 높았다.

부헨발트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화장지도 없었고그곳에서 일을 보고 나면 무엇이든 눈에 띄는 누더기나그것마저 없으면 손으로 직접 닦아야 했다제대로 된 변기조차 없었다대신 도랑같이 길게 판 거대한 구덩이가 화장실이었고그것도 스물다섯 명 정도가 동시에 일을 봐야 했다어떤 광경일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의사변호사교수였던 스물다섯 사람이 긴 나무 널빤지 두 개 위에서 조심조심 몸의 균형을 잡으며 인분이 가득한 위에서 일을 보는 모습을. (53)

 

나치는 매일 게임을 벌였다문을 열고 이삼백 명 정도를 밖으로 나오게 해서 기관총으로 사람들을 마구 쏘아 죽였다.

 

어느 날부헨발트에서 에디는 기계공학을 공부할 때 기숙사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났다친구는 수용소장에게 에디가 뛰어난 기계공이라 소개했다.

 

기계공으로 일을 하다 가족과 연락이 닿은 에디는 탈출에 성공해 벨기에로 도주한다에디는 가족과 만나고 딱 2주 동안 자유를 누리고 벨기에 헌병대에 사로잡힌다.

 

그는 다음 수용소에서 들어갈 때 악명 높은 문장이 새겨진 철조망을 보았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아우슈비츠였다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수용소였다세계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감자 생존율은 1%보다 낮았다평균 생존 기간도 4개월을 넘지 않는 이곳의 지옥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생존자의 증언으로 국제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영하 8도인 추운 날씨에 발가벗고 자야 했다매일 동사자가 속출했고체온을 나누기 위해 껴안고 잔 상대방이 얼어 죽은 것을 발견하고 했다.

 

에디 역시 친구 쿠르트가 없었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그들은 목이 아플 때 스카프를 반으로 잘라 나누었고영혼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안타깝게도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영원한 작별을 한 것이다.

 

그는 미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벗어나 벨기에를 거쳐 호주에 거주했다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아들을 낳으며 자신의 내면에 쌓여있는 증오를 행복으로 바꾸었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증오는 자신의 적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또한 자신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란 걸 알았다.”

 

호주에서 그는 기계를 잘 만지는 실력을 발휘해 자동차 정비공으로 시작해 자동차 수리 센터를 운영했고사업은 더 크게 성공했다이후에는 자동차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식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노년이 되면서 털어놓기 시작한 그는 결국 1992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에서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강연하는 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방문객에게 자신의 경험을 웃음을 띈 채 들려주는 에디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방문객에게 살아있다면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비극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잊어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고긍정적인 마음과 행복한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살아있다면 행복을 즐기고 웃을 시간을 가지자주위에 친절을 베푸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앞을 걷지 마세요.

저는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 뒤에서 걷지 마세요.

제가 앞장서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옆에 걸으며 친구가 되어주세요.”

 

 

에디는 세상 사람에게 행복한 삶에 관한 교훈을 전달하고 2021년 10월 시드니에서 세상을 떠났다아우슈비츠 이야기를 다루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에디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옆의 가족에게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 건네본 적이 없다면 지금 한번 건네보세요.

 

우리의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답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세상에서가장행복한100세노인 #에디제이쿠 #홍현숙 #동양북스 #심리 #교양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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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 하나쯤 소장하고 싶은, 여행지도를 담은 우리나라 제주 여행 바이블 에이든 가이드북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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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지도를 만드는 타블라라사의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최근 들어 종이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지도를 특별하게 만드는 타블라라사의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는 특별하게 다가왔다다음 제주로 떠날 때 이 책을 가지고 지도에 표시된 여러 장소를 찾아가 보고 싶다.

 

                 Photo by Sung Shin on Unsplash

 

타블라라사의 이정기 대표는 16년간 여행 콘텐츠와 서비스만을 만든 뼛속까지 여행 콘텐츠 전문가이다여러 차례의 여행 스타트업과 하나투어와 같은 여행사를 거치기도 하였다어려서부터 도화지 위에 작은 그림을 넣고 스토리 만드는 걸 좋아했었다는 사실을지도를 만들면서 알게 되었다아무래도 천직을 찾은 것 같다.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책날개 중 ]

 

타블라라사의 에이든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지도 부분이다여행을 좀 다녔거나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타블라라사의 지도가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독자들도 에이든 여행 가이드북의 진가를 알아보고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의 지도는 제주 전도와 행정지도는 기본이고 주제별로/계절 여행지 지도인스타 촬영 성지 지도제주 오름 지도주요 카페 지도액티비티 지도추천 숙소 지도한라산 지도를 포함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제주를 면 단위로 나눈 대축척지도(좁은 지역을 자세히)를 수록하고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고면 단위 지도에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에 관한 정보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태그를 통해 블로그를 일일이 확인하고 것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자를 위한 유명 인스타그램 촬영지와 카페 투어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주요 카페 지도는 관련 정보를 찾는 사람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제주 여행을 좋아하고행여 한 달 살기나 자녀의 학교 문제로 몇 년 동안 제주에 거주하게 되면 이 책 한 권으로 제주의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추천 여행지와 인근 맛집과 카페숙소 정보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다여러 차례 일체의 광고와 협찬 없이 장소를 섭외했다고 강조하고 있는 만큼 직접 찾아보면 정보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해외 여행이 부담스러운 요즘 제주도는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다음 제주 여행을 예정하고 가이드북을 찾고 있는 분이라면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을 확인해 보길 바랍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에이든제주여행가이드북 #타블라라사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제주지도 #제주여행지도 #제주관광지도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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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 -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풀어낸 역사속 소문의 진상
홍지화 지음 / nobook(노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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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풀어낸 역사속 소문의 진상

 

노북에서 출판한 홍지화 작가님의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은 역사 속 인물을 현재로 소환해 작가와 인터뷰를 나누는 소설이다소설가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21명의 자료 조사와 함께 역사 속 인물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Part 1. 나라와 백성을 위한 촛불이 되다

백전무패불멸의 이름이 된 이순신

조선 문명의 꽃을 피운발명왕 장영실

삼국 통일의 주역김유신과 김춘추

화약의 아버지최무선

동의보감의 저자 구암 허준

조선 최고의 학자다산 정약용

농업강국의 씨를 뿌린고무신박사 우장춘

20세기 현대 이론물리학의 금자탑을 세운 이휘소 박사

한국 최초의 여성경제학사최영숙

한국의 파브르’, 나비박사 석주명

 

파트1에서 가장 인상적인 분은 우장춘 박사다. 1950년 한국에 귀국한 우 박사는 서로 다른 두 종은 교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는 종의 합성의 원리로 우리 농업을 과학적이고 자주독립의 단계로 도약시켰다한국전쟁 후 한국은 육정학은커녕 하루 세끼를 못 먹는 사람이 태반이었다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단그는 오로지 육종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준 위인이나 다름없다.

 

우 박사는 한국에 9년 5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이유인즉개화파 무신이었던 아버지 우범선은 급진개화파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당시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서 군인 동원의 총책임자였으며 황후의 소각된 시신 처리에도 가담했다고 알려진다.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쳐 일본 여인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고그가 우장춘이다우범선은 옛 동료인 고영근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이 사실을 알고 우장춘은 충격받았고자신의 아버지가 고국에 진 빚을 갚으려 다짐했다.

 

아버지가 비명횡사하고 나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까닭에 일본인 어머니는 나를 잠시 고아원에 맡겼는데 이지메(왕따)를 혹독하게 당했습니다원생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거니와선생들조차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를 때리고 나무랐습니다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요하지만 나는 내 운명에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104)

 

한국에 지내는 동안 일본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일본으로 상례에 참가하고자 정부에 여권을 발급하고자 하나 이승만 정부는 우 박사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해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는 우리 토질에 맞고 잘 자랄 수 있는 우량종자를 개발했다그 결과 단기간에 배추고추오이양배추양파토마토 등 20여 품종에서 우수 종자를 얻었다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거의 모든 채소는 우 박사가 개발한 것이다.

 

 

 

이휘소 박사에 관한 유명한 소설은 그를 핵물리학자로 둔갑시켜버렸다그는 핵물리학자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자이고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소설에서는 군사정권을 도와주다 미국 정보당국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인 양 굳어져 유가족은 작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이휘소 박사는 학자로서 20년도 안 되는 짧은 연구 기간 동안 게이지이론의 재구격화참 쿼크입자 제시힉스입자 예견 등등 그 어떤 물리학자보다 경이로운 연구 성과를 냈다.

 

그가 중점적으로 연구한 분야에서 노벨물리학상이 두 번이나 나왔고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장인 오펜하이머 박사는 자신의 밑에 아인슈타인과 이휘소가 있었지만이휘소가 더 뛰어난 학자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인 최영숙의 이야기는 못내 안타까웠다최영숙은 동양인 최초로 스톡홀름대학을 졸업하고 조국에 돌아왔지만 그녀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1930년대 5개국어 능통자에 스톡홀름대학 경제학사 출신이었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던 그녀는 미나리콩나물을 파는 구멍가게 야채 장수였고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다 결국 생활고로 요절했다.

 

 

 

Part 2.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원한2인자

왕이었으나왕이 되지 못한 광해군

아비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삼봉 정도전이 꿈꾸었던 성리학적 이상세계

 

 

조선왕조 5백년 역사상 왕위에 올랐으니 반대 세례에 의해 추출 당한 왕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연산군이야 폭정으로 악명 높았으나광해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논쟁이 격렬하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사실 아버지인 선조 임금이 무능했기에 그를 대신해 임진왜란을 수습하고자 세자로 책봉된 후 7년 동안 이어진 왜란 이후의 민심 수습과 실리외교를 추구했지만이이첨 같은 간신배들 때문에 실정을 막지 못했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동복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어린 영창대군을 죽이고계모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도 이이첨 등 대북파 간신들의 농락에 넘어가 패륜 짓을 저질렀다.

 

광해군 재위 시절 역모 사건이 50여 차례나 일어나 무수한 신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광해군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지만오히려 백성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사도세자만큼 많이 이야기되는 왕자도 없을 것이다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혹은 붕당정치의 희생양으로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비운의 세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임오화변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다루는 주제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의 악행을 참다못해 뒤주에 가둬 죽이는 사건이다.

 

영조는 장자인 효장세자를 보내고영빈 이씨와 옹주만 다섯을 낳은 끝에 왕자인 사도세자를 생산했다사도세자 역시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나타내 영조의 기대는 더 컸다.

 

영조의 편애는 심각했다자신이 애지중지 여기는 자녀의 집에는 덜 사랑하는 자녀가 머물지 못 하게 하고불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애틋하지 않은 자녀를 불러서 불길함을 떠넘기는 귀 씻기‘ 대상으로 삼았다.

 

영조는 효심과 충심을 시험하는 선위 쇼를 벌였고대리청정을 계기로 더욱 멀어졌다.

 

사도세자는 점점 포악하게 변했고신경을 건드리면 환관이고 후궁이고 할 것 없이 목을 베고동궁 안에서도 히스테릭하고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사도세자는 의대병이라는 신경증을 앓았고자식을 낳았던 사랑하는 후궁 빙애를 죽였다.

 

이 일은 1년 6개월 후, ’나경언의 고변을 통해 사도세자의 비행이 모두 알려졌다임오화변이 있기 전날 밤사도세자가 부친과 아들 세손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를 낳은 어머니 영빈 이씨와 혜경궁 홍씨는 친정 가문과 세손을 지키기 위해 그를 버렸다.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에는 역사 속 뛰어난 인물을 현재로 불러와 당시 상황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이 책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한국의역사인물가상인터뷰 #홍지화 #노북 #소설 #역사소설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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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찬란한 어둠 -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첫 번째 에세이
김문정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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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첫 번째 에세이

 

흐름출판의 김문정 감독의 <이토록 찬란한 어둠>은 제목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뮤지컬 피트(무대 앞 연주공간인 어둡고 긴 구덩이)에서 음악이 시작되면 뮤지컬은 시작된다.

 

일전에 티비 프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무대를 지휘하기 전 음악감독으로서 하나의 실수도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요소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무대 앞 피트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관객은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고 피트에서 서서 어둠 속에서 찬란한 무대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녀의 인생 여정을 에세이는 담고 있다.

 

어린 시절부모님의 지인 집에서 처음 마주한 피아노를 보고 그녀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으로 매료되었다오랜 시간 피아노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모임을 초대한 집의 어머니가 피아노를 그만 치게 하자 김 감독의 어머니는 피아노에 빠진 딸의 모습과 어쩔 수 없이 가지고 놀지 못한 피아노를 적금을 해지하고 바로 사들인다이렇게 피아노는 그녀의 인생에 젖어 들었다.

 

                 Photo by Kyle Head on Unsplash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갑자기 음악을 공부하자는 친구 희열의 말에 용기를 얻지 못하고 서울예전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음악의 길로 인생의 행로가 이어진다.

 

그녀의 첫 번째 뮤지컬 작품은 <명성황후>의 피아니스트였다음악감독의 피아노 소리에 관한 지적으로 김 감독의 오케스트라와 뮤지컬의 피아노 연주 타이밍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음악감독이 되고 싶은 열망에 빠진다.

 

음악감독은 뮤지컬의 총괄 지휘자다배우들의 노래와 연기연주자의 악기와 연주구성 하나하나에 음악감독은 잘못된 점을 알아야 한다그 말은 자신이 모든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정통해야 한다는 뜻이고그녀는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음악감독인 김문정 감독이 지난 3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역시 사람이다.

 

혼자 음악을 감상할 때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즐겁다는 걸 알았다첫 음악감독 작품인 <둘리>를 공연할 때 아이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고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둘리가 엄마를 찾는 장면을 보고 즐거워하지 못한 관객을 보자 자신이 헤아리지 못하면 관객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공연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돌발변수를 경험한 둘리는 그녀에게 다음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다.

 

             Photo by Larisa Birta on Unsplash

 

<둘리공연을 마치고, <명성황후>의 런던 공연을 위한 슈퍼바이저 제안을 받고 본격적인 음악감독으로 역량을 만들어간다.

 

이후 원작과 같은 공연을 해야 하는 레플리카 공연논 레플리카 공연창작 뮤지컬 공연 등 50여 작품을 감독한다레플리카 작품은 배우를 제외한 무대동선조명음악 등 나머지 전체를 원작과 완전히 동일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연출진으로서는 매력이 조금 덜 한다.

 

창작 뮤지컬인 <내 마음의 풍금>과 김승현 씨가 전해준 이영훈 작곡가의 바람이 담긴 <광화문 연가>는 가슴이 찡한 사연이 있다이영훈이문세 콤비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광화문 연가>에서 이영훈 작곡가의 인생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작품마다 사연과 배우연주자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다. <명성황후>로 시작한 뮤지컬은 <영웅>을 만들게 된다. <영웅>은 안중근 기념사업회 관계자가 안중근 의사가 법정에서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게 조선이 국모를 시해한 죄이기에 <명성황후>에 관한 뮤지컬을 만들었으니안중근 이야기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그는 계속 찾아왔고이런 사정이 뮤지컬 <영웅>이 탄생환 비화이다.

 

김 감독은 2005년 <맨 오브 라만차초연 때 만들어진 The M.C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지금 THE PIT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고 있다찬란한 무대의 바로 옆 어두운 공간에서 연주자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뮤지컬에 관한 정보를 시작으로 김문정 감독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술과도 같은 뮤지컬 무대를 빠져들고 싶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토록찬란한어둠 #김문정 #흐름출판 #뮤지컬 #에세이 #명성왕후 #맘마미아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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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가 이건희
허문명 지음 / 동아일보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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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위대한 경영자에게 길을 묻다.

 

동아일보사에서 출판한 허문영 기자님의 <경제사상가 이건희>는 이건희 회장의 평전이다허문영 기자는 1990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현재 출판국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지난해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의 부고가 전해진 날한 기업인이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는 광고를 보고 이건희 회장의 삶에 관해 쓰고 싶다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3권의 평전을 썼다. 30대 시절 정신적으로 힘들 때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선 숭산 큰스님의 평전 <삶의 나침반>, 40대 때 <김지하와 그의 시대>를 통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화해를 시도했다.

 

50대에 삶이란 밥이라는 자각하에 밥벌이의 소중함과 기업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이 밥벌이를 고민하고 만들어오는 과정임을 절실히 느꼈다.

 

                      Photo by Babak on Unsplash

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미국의 철학자 니컬러스 버틀러는 말했다한국의 국력을 나타내는 것은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모르지만대기업의 이름은 아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기업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그리고 기업활동의 결과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깨닫고 경제사상가로 이건희 회장의 삶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는 단언한다. “한국의 산업사는 비포(BEFORE) 이건희와 애프터(AFTER) 이건희로 나뉜다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삼성세계 대도시 곳곳에 삼성의 간판을 마주하고 삼성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한국 제품이 사랑받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삼성은 한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기업임이 틀림없다오늘날 500조 원에 근접하는 삼성전자도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에는 2조 4천억 원에 해당하는 기업이었다. 2020년 기준으로는 매출 246조 원에 수많은 세계 1등 품목을 만들었다.

 

그는 취임 후 5년 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졌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와 혁신을 요구했다그는 다양한 분야에 심취했고통찰과 깊이는 컸다.

물리학수학사회학아동심리학에 관심을 가졌고개성화소프트웨어디자인의 시대가 될 것이며 로봇이 지배할 거라는 말을 듣고 미래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라고 했다.

 

그는 오랜 시간 사색하고 한 가지 주제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어나 얼마 후 할머니 댁에서 자랐고이후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녔다일전에 이병철 선대 회장님의 수필에서 기록된 기억을 돌이키면 일본 학교에 다니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걱정을 남겼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소학교 시절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보다 혼자서 관찰하고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고이후 부산교대부속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도 비슷한 성향이었다그때부터 그는 주변의 친구를 관찰하고 자신에서 해를 가하지 않을지 친하게 지내도 되는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교 시설 서울로 상경한 그는 연대 상경학부에 합격하지만그는 자퇴한 후와세다대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는 일본을 알고 따라 할 수 있는 길만이 다시는 식민상태가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절감한다그가 평소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즐겨 시청하고특히 탐사보도를 즐겨보는 것을 자신이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그는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무엇보다 좋아했다그래서 즐겨보던 책은 이공계 관련 도서우주과학공학책이 주를 이루었는데 와세다 재학 시절 중고자동차를 분해해서 새로 조립한 후 판매해서 용돈을 벌어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Photo by Zana Latif on Unsplash

 

결정적으로 삼성가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을 통해 위로 형이 두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장직을 오르게 되는 이 회장은 일본 기술자들이 한국에 올 때는 승지원에 초청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공학 및 전자 기술을 배우게 된다.

 

1987년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하고 각종 혁신조치를 취하지만 사원들은 좀처럼 타성에 젖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출퇴근 시간을 7·4제로 운영해 4시 이후에는 퇴근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하도록 강조했다유연한 사고가 삼성을 2류 기업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알았다.

 

그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비로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도 전자 산업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구상했기 때문이다드디어 1993년 삼성전자 디자인부에 속한 후쿠다의 후쿠다 보고서를 기점으로 그는 삼성의 신경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이른바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로 유명해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열렸던 삼성 사장단 회의의 발언이었다.

 

고문을 활용하라는 주문에도 주저하는 사원들에게 고문 활용을 인사고과 점수에 부여에 강압적으로 일본의 고문에게 기술을 교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신경영선언 이후 품질관리는 삼성이 일류로 도약하는 최우선 과제였다. 1995년 당시 휴대폰 불량률이 10% 이상이어서이 회장은 애니콜과 불량률이 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 500억 원어치를 화형에 처해버리는 충격요법을 시행한다.

 

이를 기점으로 삼성은 휴대폰에서 갤럭시 신화를 만들고반도체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한다.

 

 

 

저자는 이건희 회장 지인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에서 역도산을 만난 것과 홍사덕 의원은 한강의 완공된 양화대교를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이 회장은 통일이 되면 한강으로 화물선이 다녀야 하는데 교각이 너무 좁다고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깊은 사고에 놀랐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작고 후 그가 그동안 모았던 미술과 문화 예술품이 화제가 되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세계 일류 반열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문화에 대한 기여는 삼성의 성장과 함께했다.

 

삼성은 이건희 컬렉션의 기부로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을 국민과 함께 즐기기 위해 국가에 기증한 뜻을 계승하고자 상설전을 열어 무료로 운영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한다.

 

이건희 회장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여러 사례에서 드러난다창원 다호리 고분군 유적지 발굴과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최순우 선생의 생가를 지키는 일에도 이 회장의 지원이 마중물이 되었다.


 

그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잘 알았고삼성이 추구하는 명품 정신을 선조들의 정신에서 찾으려 했다이건희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해 국보를 포함한 수준 높은 우리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희 회장의 평전을 읽는 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기업가 정신을 알게 되었다.

 

어느 국가사회기업을 막론하고 진정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며 그 힘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398)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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