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환자한테서 길이 60센티 가량의 회충이 자꾸 나오는데,
회충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회충 또는 그 비슷한 기생충이라면 회충약에 아주 잘 듣습니다.
그리고 회충은 길어봤자 30센티 정도가 고작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촌충이라고 부르는 기생충에 감염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끈벌레라고도 불리는 촌충은 길이가 3미터를 넘고,
어느 정도 길이가 되면 끝부분을 잘라서 변과 함께 밖으로 내보내니까요.

환자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8개월 전쯤 변을 보는데 항문 근처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끄집어 냈더니 마디가 있는 벌레였답니다.
놀라서 회충약을 먹었지만 그로부터 두달 뒤 또 그런 일이 있었고,
총 4차례나 마디벌레가 나왔답니다.
역시 광절열두조충이구나 싶어 사진을 보여줬더니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환자에게 약을 먹이고
4.5미터짜리 벌레를 꺼냈습니다.

광절열두조충의 감염원이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연어나 송어를 먹었다는 증언이 많았습니다.
연어나 송어나 다 거기서 거기인 친척 정도의 관계지만,
맛은 확연히 틀립니다.

지난 2월에 강원도 어디선가 송어회를 먹었는데,
한점 한점을 먹을 때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답을 해주더군요.
반면 연어는 회도 그냥 그렇고, 구워서 먹어도 이렇다할 맛이 없습니다.
환자 역시 송어회를 아주 좋아해,
작년 5월 쯤 송어회를 자주 먹으러 갔다고 하네요.
그분이 5월에 먹고 8월에 마디가 끊어져 나왔으니,
지금 제 몸 안에서도 광절열두조충이 맹렬히 자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됩니다.
물론 저는 어떤 기생충에 걸려도 송어회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송어회는 광절열두조충에 걸릴 위험을 감수할만큼 맛있으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송어회를 먹으러 어디론가 떠나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