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도 이런 비슷한 글을 쓰지 않았나 싶지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용.

 

개를 기르다보면 세상에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을까 싶습니다.


배신을 안하는 것은 물론 잘못해도 화내지 않고 늘 주인의 심기를 헤아리는 존재,

인간관계에서 치이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개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 마리를 키울 때 이야기일 뿐,

여러 마리를 기르면 개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지요

 

원래 다섯이었던 저희 집 아가들은 어제로 여섯이 됐습니다.
다섯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아내는 “앞으로 새로운 멤버영입은 없다”를 여러 차례 천명했지만,
솜털처럼 예쁜 강아지가 눈앞에 나타나니 기존 주장을 아주 쉽게 번복하더군요.
하기야, 그 이전에도 아내는 “세 마리가 마지노선이야” "네 마리 이상은 절대 안돼” 등등
결국 지켜지지 않을 맹세를 여러 번 했지요.

새로운 강아지가 들어왔을 때, 기존 강아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 새 친구가 왔네? 심심했는데 잘됐다, 한번 친하게 지내볼까?
2) 처음 왔으니 낯설고 외로울 거야. 나라도 좀 잘해주자.
3) 기타

답은 당연히 3번입니다.
기존 강아지들 중 어느 누구도 새로운 강아지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새 멤버의 영입은 자신들이 받던 혜택이 줄어듦을 의미하니까요.


평소 아내는 마루에서, 저는 제 방에서 잠을 자는데요,
개들은 주로 아내 편이라, 형. 누나의 등쌀에 치인 막내 녀석만 제 곁에 붙어있지요.
그런데 오늘은 개 다섯 마리가 모두 제 옆에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 ‘은곰’-새 멤버 이름-이 마루에서 아내랑 자는 탓에,
다들 제 옆으로 피신을 온 것이지요.

이게 하루이틀 된 것은 아닙니다.
셋째가 오던 날 둘째는 슬픔에 잠겨 집을 나가는 동작을 취했고,
실제로 둘째는 어린 셋째를 시종일관 괴롭혔습니다.
넷째, 다섯째가 들어왔을 때도 기존 멤버들은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요.
물론 그 안에서 관계를 잘 맺어 재미있게 노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아예 처음부터 다섯 마리가 같이 자라는 것과 달리
한 마리씩 마리수를 늘려 가면 늘 기존 멤버의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첫째는
아직도 다른 개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있다니까요.


개들의 이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이익만 중요시하던 인간들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일진대,
개들은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하는 탓에 원초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느 분이 쓴 글이 갑자기 기억나네요.
아이들은 늘 순진무구한 존재로 그려지지만,
아이가 엄마, 아빠 등 가족에게 잘한다고 해서 성선설을 믿어선 안된다네요.
타인에 대한 싫음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 그들의 세계는 그리 순진무구하지 않답니다.
지금 어른들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계가 잔인해 보일지라도,
그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세계인 셈이지요.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엄마개, 아빠개,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잘 지냈던 은곰이가
자신을 냉대하는 다른 강아지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적응할지가요.
당분간은 저희집이 다이나믹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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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018-03-3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키워 본 적이 없고 무서워해서, 잘 몰랐던 그들만의 세계를 알게 되었네요. 개들에게도 그렇게 섬세한 감정이 있군요^^ 은곰아, 홧팅!

마태우스 2018-03-31 23: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늘 보니까 적응력이 뛰어난 개더군요 성공적으로 우리 식구가 될 것같습니다 <--이게 외부에서 막 단 댓글이고요

은곰이가 저희집서 너무 맛난 음식을 접하다보니, 먹고 싸기만 해서 걱정입니다.

어린왕자 2018-04-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곰이 팔자, x 팔자 맞군용. ㅋㅋㅋ.

마태우스 2018-04-03 06:3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상팔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