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로를 내리막길로 만들어 자동차 연비를 개선하겠습니다" 이 구호를 들으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 아래쪽에 사는 애들은 어떡하지? 그런데 이런 황당한 구호를 공약이랍시고 내건 정당이 있단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니고, 라틴 아메리카의 한 나라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럼 그렇지!" 하며 웃을 것이다. 맞다. 그 나라들, 웃긴 일 참 많이 한다. 아직까지도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곳이 있고, 그나마 정치상황이 불안해 쿠테타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니 경제가 잘될 리 없어, 뻑하면 파산을 한다. "저 나라들은 도대체 발전이 없어!"라고 생각을 할 거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해외토픽으로 우리나라 소식을 들으면서 "저 나라는...."이라는 말들을 했을거다. 헌정 이후만 보더라도 '사사오입' 파동이 있었고,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이념을 빌미로 둘로 갈라져 전쟁을 겪어야 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판결이 난 8명이 다음날 새벽 처형당하자 어느 단체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영국의 한 언론사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가운데 도막이 뚝 끊어진 성수대교나, 테러도 아닌데 제풀에 쓰러진 삼풍백화점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저 나라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런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실미도다.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사형수들이 포함된 부대를 만들어 가혹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만드는 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냉혹한 대우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정부에서는 "무장공비"라며 그들을 두번 죽였다.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도 우리의 것이건만, 오욕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학교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고, 난 다른 루트를 통해 역사의 비극들을 접했다. <실미도>라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그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온 야만의 역사를 다시금 우리에게 환기시켰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역사를 알고나면 우리가 좀더 겸허해질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