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사이트에서는 2003년 최고의 영화를 뽑는 네티즌 투표가 진행 중이다. 1위는 올드보이의  최민식, 2위는 <살인의 추억> 송강호, 3위는 <실미도> 설경구, 4위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 다들 이해할 법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5위는...올란도 블룸이란다. 얼굴을 보니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로 나왔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난 단체 주인공 중 하나에 불과한 그가 <똥개>의 정우성이나 두편이나 개봉된 <매트릭스> 시리즈의 키애누 리브스를 제치고 5위에 오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잘생긴 얼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훤칠한 미모를 지닌 레골라스는 아마도 여성팬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5위에 자리매김했을게다. 그가 1위가 안된 것은 우리 여성들 중에 양심있는 여성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오늘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드디어 봤기 때문이다. 예고편만 봐도 어떤 수준인지 딱 짐작할 수 있는 바로 그 영화. 볼 걸 이미 다 봐서 더이상 볼 영화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그 영화는 내 수준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난 원래 웃기는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렇다고 그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니, 주연으로 나왔던 정준호 얘기만 좀 하겠다. 레골라스 얘기랑도 일맥상통하니, 내가 왜 서두에 레골라스 얘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거다.

정준호는 이번이 벌써 다섯번째 맡는 주연이지만, 그의 상대역 공형진은 이번이 첫번째 주연이다. 것도 13년만의 첫 주연이란다. 자칫하면 시시한 영화로 끝날 수 있었던 이번 영화를 살린 것은 단연 림동해로 열연한 공형진 덕분, 본 사람들 모두 공형진의 연기가 일품이었다고 칭찬한다. 딴지일보의 영화평이다. [....공형진의 개그 타이밍을 맞추는 연기는 거의 송강호와 삐까맞다이 먹을 정도로 훌륭했는데..] 

박중훈이라는 배우는 충무로에서 데뷔할 때,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했단다. 감독에게 울며 통사정을 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나리오를 다 외워가며 출연을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정준호는 어떻게 데뷔했을까? 그건 잘 모르지만, 박중훈처럼 눈물겨운 구애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잘생긴 애가 제발 좀 나오게 해달라고 비는 장면은 상상력이 제법 있는 나도 머리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범수라는 연기자도 있다. 외모를 보면 '뭐야 나보다도 못생겨서 배우라고?'란 말이 절로 나오지만, 연기 하나만은 일품이다. 왜? 그거라도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거든. 반면에 장동건을 보자. 대학을 두번 실패해 좌절하긴 했겠지만, 일단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고 난 뒤 그 처지는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승승장구했는가. 연기를 잘할 필요가 뭐가 있담? 그저 초롱초롱한 눈빛만 보여주면 다들 괴성을 질러대는데. 차인표도 그랬다. 색소폰인가를 불어대는 장면이 하도 멋있어, 내가 게이가 아닌지 의심이 갔을 정도.

못생긴 애들이 하나같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연예계에 입성한 반면, 얼굴만 잘생기면 거저 먹고 들어간다. 얼굴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그들이 세상을 참으로 쉽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재벌2세인 이재용, 아니 그건 너무 거대하니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 아들을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조각처럼 잘생기던지, 돈많은 집에서 태어나든지 둘 중 하나를 갖췄다면 인생의 경쟁에서 굉장히 앞서나간 거다. 하지만 너무 좌절할 건 아니다. 잘생긴 애들이 얼굴만 믿고 나태할 때, 열심히 연기연습을 해서 역전할 수가 있으니까. 박중훈도 그렇고, 송강호나 이범수도 연기력 하나만 가지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 아닌가. 송강호라면 아마도 장동건이 부러울 게 없을 거다.

이렇듯 얼굴의 열세는 연기로 커버된다 치자. 그럼 돈 많은 건 어찌 만회할까? 어릴 적만 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만회될 줄만 알았다.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난 천하를 얻은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 같이 다니던 애들이 내 밑에 있었다. 그런데 커보니 그게 아니다. 내 동창들은 지금 모두다 어디 호텔 사장이고, 극장주이고, 거대 투자회사 대표고...어쩌고.... 그러다보니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하면 내가 가장 극빈자다. 호기를 부리느라 "오늘은 내가 쏠께!"를 외치기도 하지만, 다음날 후회한다. "이그, 돈도 없는 것이...."

얼굴과 달리 돈은 만회할 수 없는 것, 나중에 다시 태어날 때 선택이란 것이 가능하다면, 지금보다 더 못생겨도 좋으니-그게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돈많은 집에서 태어나는 게 더 좋을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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