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작년만 해도 1.3이던 출생률이 1.17로 줄어들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출산률 저하의 원인은 여성과 아이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없다는 거다. 미국의 유수기업들은 회사 내에 보육시설을 갖추고 있던데, 우리나라는 어디 그런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인색하니 일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기도 하고, 남편 월급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그걸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은 지극히 낙후되어 있다.
애 봐주는 사람을 쓰면 좋겠지만 그 비용이란 게 장난이 아닌지라, 여성이 직장에 나가려면 맘좋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희생이 뒤따른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다.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애 때문에 일찍 가봐야 한다고 하면 "역시 아줌마는 안돼"라면서 화를 낸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한달에 20만원의 껌값을 준단다 (처음에는 10만원이었지만 좀 너무했다 싶었는지 20만원으로 인상했다). 돈도 돈이지만, 요즘같이 고용이 불안한 와중에 어느 누가 배짱좋게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을까? 출산율 1.17은 이런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소리없는 파업이지만, 정치권에서 나오는 대책이란 게 기껏해야 "육아휴직 수당을 십만원 인상한다"는 정도인 걸 보면 문제의 핵심이 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것같아 안타깝다.
여성의 75%가 직장생활과 출산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다는 민우회의 조사처럼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돈 얼마를 더주는 게 아니라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 지금처럼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포기해야 된다면 애를 포기하는 여성의 수는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신문을 보니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높은 사교육비로 보고 있다. 셋을 낳으면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못할 테니, 하나, 둘만 낳아서 제대로 가르쳐 보자는 심리,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애를 안낳는 여성이 증가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은 전체 인구 중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히스패닉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주로 저소득층을 형성하고 있는 히스패닉은 여자 혼자서 아버지가 각기 다른 애를 여럿 키우는 가정이 많단다. 왜? 애 한명당 정부에서 일정 정도의 보조금이 지급되니까. 일을 하면 보조금이 깎이는지라 나가서 일을 하느니 애를 다섯쯤 낳아서 보조금을 받는 쪽이 훨씬 더 좋단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을 애 키우는 데 쓰는대신 마약과 알콜로 탕진하는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돈을 주는 건 이런 위험성이 있다. 역시 좋은 건 애가 있어도 안심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며, 이를 위해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한겨레를 보니 독자투고에 어느 여성분이 쓴 글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은 이미 6살짜리 딸과 3살된 아들이 있는데, 올 12월에 세째 아이를 출산한단다. 주위에선 뭐그리 많이 낳냐고 하지만, 자기는 사교육도 무리해서 시킬 생각이 없단다. 아이들과 상의해서 진정으로 원할 때만 시킨다나. "남들이 하니까 하는 식의 사교육병도 고쳐야" 한단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는 시대에 세번째 애를 낳겠다고 하고, 역시 사회문제의 하나인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다고 남들에게도 그런 걸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저출산 사회"이니 "주부들의 의식변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이분이 과연 몇명이나 애를 낳을 생각인지, 낳은 애들이 전부 남들만큼 사교육을 시켜 달라고 조르면 어떻게 할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