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개미혁명>을 읽은 뒤부터 그의 팬이 되었는데, 그 뒤부터 그의 책이 나오는 족족 사고 있다. 어제 책방에 그가 쓴 <뇌>라는 작품이 있기에 대번에 사버렸는데, 그책을 사고나자 갑자기 베르베르에 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베르는 17살 때부터인가 그의 데뷔작 <개미>를 쓰기 시작한 천재임에도 그의 조국인 프랑스에서는 도통 인기가 없었다. 그런 베르베르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대부분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있으니 괴이한 일이다. 외국 책을 번역하는 경우는 그 나라에서 뜬 책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베르베르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탁월한 선택이라 할만하다. 베르베르도 이에 대해 매우 고마왔는지 <개미혁명>에서도 한국 남자가 나오고, <천사들의 제국>에서도 한국 여자 한명을 등장시킨다.

한국인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버스안에서 잠시 생각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천재에 대한 경배: 다른 나라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정말 열성이다. 특히나 영재에 대한 관심은 가히 메가톤급인데, 베르베르는 보기드문 천재이니 그가 인기있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
2) 교양; 마광수 교수는 이문열이 뜬 이유를 "교양주의" 탓이라고 했다. 즉, 읽는 독자에게 뭔가 많은 게 머리에 남았다는 뿌듯함을 준다는 거다. 베르베르의 책 역시 그런 지적 포만감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개미혁명>을 비롯한 그의 책은 에드몽 웰스라는 가공의 인물이 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곳곳에 소개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 가서 써먹기 딱 좋을 그런 내용들이다. 내가 다른 애들한테 아는 체를 한다고 하면 그 소스는 다 그거다. '상대적...'은 나중에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다.

3) 유머: 다른 사람들은 숀 코너리라고 답하던데 난 007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가 로저 무어다. 로저 무어는 숀 코너리나 브로스넌이 갖지 못한 '유머'를 갖고 있다. 자연스러우면서 세련된 그의 유머는 외양만 비슷하다고 흉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베르베르의 책은 교양과 더불어 유머가 넘친다. 90년대 이후 우리 나라는 못웃기는 사람이 나쁜 인간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유머가 존중되고 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베르베르가 90년대부터 뜨기 시작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4) 이름: 우리 조상들은 자고로 3.4조나 4.4조를 좋아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4.4조로, 듣기에 아주 편하다. 문학성이 뛰어난 요시모토 바나나가 4.3조라는 이유로 배척받는 걸 보면 그의 이름이 인기에 한몫을 했음을 알 수 있다.

"http://lestis.wo.to"라는 홈페이지를 운영 중인 최계현님은 <천사들의 제국> 독후감에서 이런 말을 한다.
1) '개미혁명'은 '개미'의 속편격이므로 "전작 '개미'를 읽지 않는다면 스토리 이해가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2) "천사들의 제국은 그 '타나토노트'의 후속편이다. 혹시나 타나토노트를 읽지 않고 천사들의 제국을 읽은 사람의 감상은 어떨지가 궁금하다"

1)에 대한 답변: 난 아직 <개미>를 읽지 않았다. 베르베르의 팬을 자처하면서 그의 출세작을 읽지 않은 게 쑥스럽지만, 3권으로 된 <개미혁명>을 읽으면서 개미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는지라 다시금 3권짜리 <개미>를 읽고 싶진 않았다. <개미혁명>만 읽어도 스토리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는 건 물론이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다이하드 2>를 본 사람이 전작인 <다이하드>를 보면 재미있을까?

2)에 대한 답변: 역시 난 <타나토노트>를 읽지 않고 <천사들의 제국>만 읽었다. 베르베르의 팬이 된 게 <타나토노트>가 나온 한참 후이기 때문이다. <천사...> 역시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었고, 굳이 타타토노트를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팬이라면 그사람이 쓰던 휴지 한조각까지 모아야 할테지만, 난 베르베르의 진정한 팬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팬을 자처하는 스타가 내겐 너무도 많다보니-유선미도 있지 않은가-모든 스타에게 정성을 쏟을 수가 없는 게 안타깝다. 뭐, 이제부터 잘하면 되지 않겠나. 하여튼 베르베르를 알게 된 걸 난 큰 행운으로 여긴다.

끝으로 최계현님의 홈에서 몰래 훔쳐온, 자기나라에선 안떴는데 한국서 히트친 경우 몇가지를 소개한다.

[자국 또는 다른 나라에서는 안뜨는데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몇가지 케이스가 있다. 영국 그룹 '리알토'가 그런 케이스였는데, 영국 차트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가 무슨 연유였는지 유독 유리나라에서만 인기가 있었다. (Monday Morning 5:19을 기억하는지..) 그러다가 한국에서 적당히 인기가 시들어져가고 있을때 뒤늦게 빌보드에 올라 한동안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그후 그들은(베르베르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행운의 나라로 여기게 되었을 게다. 그들을 볼때 마다 한국 공연때 베이스드럼 전면에다 어설프게 '리알토'라는 한글을 검정테이프로 붙였던 것이 기억난다. 또 다른 케이스로는 '소리가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케니G와 'Betty'의 덴마크 그룹 Blink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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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쓰고난지 한참 후, 동네 책 대여점이 망했습니다. 책을 대방출할 때 몇권을 샀는데, 그중의 하나가 <타나토노트>입니다. 역시나 재미있더군요. 베르베르가 재미있는 건 <천사들의 제국>까지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나무>랑 <뇌>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4.3조에 대한 얘기, 농담인 거 아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