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 하나를 만났다. 군견들에게 동양안충이란 기생충이 많이 걸려있기에, 동양안충 일을 함에 있어서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일전에 촌지를 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노골적으로 촌지를 바라는 듯 보였고, 다방에 앉아 논문 사이에 돈봉투를 내밀었더니 아주 능숙하게 받더니 "잘 읽어보겠다"고 한다. 흥분할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란 게 촌지 없이 돌아간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군인들도 나름대로 어려운 게 많을테고.

언젠가 아버님을 입원시킬 때의 얘기다. 의사는 수술을 받으러 입원하라고 하는데 원무과에선 입원실이 없단다. "연락해 주겠다"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전화를 걸면 "입원실이 안났다"고 했다. 할수없이 원무과 직원에게 찾아가 30만원을 건넸다. 입원실은 그 즉시 났다.
그사람: 미스김, 10x5호 내줘!"
미스김: 그병동에 빈방 없다고 했쟎아요?
그사람: 방금 생겼어.

따지고보면 우리 나라는 촌지 공화국이다. 의사들은 물론이고 어느 직종이나 일이 잘되게 하기 위해선 촌지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촌지를 당연하게 들어가는 비용 쯤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갖는 의문.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교사의 촌지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할까?

한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글쎄다. 과연 우리가 선생님들을 도덕적 존재라고 믿고 있을까. 고교 때까지 모범생이었던 나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 선생님들을 그리 존경하는 것 같진 않다. 은희경이 쓴 <마이너리그>를 봐도 교사들이 그리 긍정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고, 공지영 자신의 체험으로 추측되는 단편 <광기의 역사>는 읽는내내 전율을 느껴야 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여고괴담>이나 <친구> 같은 영화에서도 교사들은 성희롱을 일삼거나 폭력에 물든 존재일 뿐이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도 별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선생님들 슬하에서 중고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도덕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교사의 촌지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들의 촌지는 괜챦다는 것일까? 공무원은 지켜야 할 도덕도 없나?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김종엽 씨가 쓴 책을 읽다가 풀렸다. 그의 말이다.

[다른 거래에서 촌지를 주지 않아 손해를 입게 된다면, 그 손해를 감수해야 할 사람은 바로 촌지를 주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것은 도덕적 자유의 행사 댓가이며, 자유인은 자유의 행사 대가를 스스로 부담하는 자이다. 그러나 교사와의 관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람은 촌지를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그 손해는 바로 어린이의 인격, 자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의 손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일종의 인질극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사람이며, 촌지는 몸값이 되는 것이다 (<시대유감>, 138쪽)]

어려운 환경에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물을 흐리는 건 언제나 그 '일부'며, 그 '일부'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확대재생산한다. 어찌되었건, 내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없다는 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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