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선생 하나가 내방에 왔다. 냉장고에서 식혜를 꺼내줬더니 심심하다며 놀아달란다. 잠시 생각하다 엊그제 쓴 <당신의 고환이 흔들리고 있다>를 니맬며 내가 쓴 글인데 어떤가 읽어봐 달라고 했다.

다 읽고 난 그녀: 유치한데요?
나: 이런 식으로 여러 개 써서 책으로 낼건데, 그럼 안팔릴까?
그녀: 당연하죠.

그녀는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얘기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 역시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닌, 그런 솔직한 대답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뭐냐? 유치하다고 비난이나 하고. 그 책이 뜨기만 해봐라. 너랑 절대로 아는 척 안할거야"

20대 때까지만 해도 난 솔직한 친구를 좋아했다. 술을 얼떨떨하게 마시고는 "넌 정말 나쁜 놈이야!"라고 말해주는 그런 친구.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그 친구는 참 좋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진지하게 날 추궁하는 친구가 어렵게 느껴진다. 날 볼 때마다 히히 웃기나 하고, 우스개 소리나 찬사를 늘어놓는 그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 높아진 사회적 지위 탓인지, 30을 훌쩍 넘겨버린 나이 때문인지 날 비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픈 맘이 별로 없다.

'유치하다'는 조교선생의 말은 사실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게 난 싫다. 30대 중반에 일개 선생에 불과한 내가 이럴진대 나보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우리 나라 대통령들이 인의 장막에 갇힌 채 실정을 일삼은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내 안에 있는 이런 권위주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교 때 그랬던 것처럼 "난 인간이 아니다. 인간 이하다"라고 자기 최면을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걸까. 청바지를 입고 아이들과 어울려 신세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권위주의가 극복되는 건 아닐게다. 권위주의라는 게 어차피 극복될 수 없는 거라면, 그걸 이용해서 어떤 좋은 일에 응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그런 게 과연 뭐가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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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7-14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해지네요ㅠ.ㅠ 그나저나 당신의 고환이 흔들리고 있다. 크하하하

3 2011-05-2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 공감 저도 한번 공포소설 비슷한거 쓴거 보여줬더니 "시시하다 이건 킬링타임용으로도 안될거 같다."그러길래 "니가 무슨 평론가냐?"하면서 싸닥션 날릴뻔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