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에서, 종료를 몇분 남기지 않고 리드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리드가 한골차라면,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대개는 그 바램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먼 옛날, 박정희가 만들어 축구열기의 확산에 공헌했던 박스컵이 기억난다. 그때 우리나라는 꼭 화랑-충무 두팀이 출전을 했는데, B팀 격인 충무 팀도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전을 하곤 했다. 1진은 아니었지만 이름만큼은 위압적이었던 모 팀과 가진 4강전에서 충무는 후반을 얼마 안 남기고 센터링을 헤딩으로 연결, 2-1로 리드를 잡았다. 나도, 관중도, 선수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충무 선수들이 공을 밖으로 걷어 내는데, 어찌나 세게 차는지 스탠드 중단까지 공을 차냈다. 지는 팀이야 얄밉겠지만, 그 장면들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하지만 지금은 한 경기에 사용하는 공이 워낙 많고, 멀리 차내봤자 옆에서 바로 던져주는 바람에 이런 식의 시간끌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또 흔히 사용하는 게 부상 빙자다. 이기는 팀의 선수들은 별 접촉이 없어도 혼자 나자빠지고, 아파 죽겠다면서 뒹군다. 오버가 심하면 들것에 실려가기도 하는데, 이런 짓은 워낙 얄미운 느낌을 줘서 엘로우카드를 받기 십상이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것도 다 계산을 해 추가시간을 정하니까 심리적인 면 외에는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그다음으로 쉬운 게 골킥을 한다든지, 프리킥을 할 때 시간을 끄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끌 수 있는 시간은 몇초가 고작인데다 심판의 엄격한 경기진행으로 인해 필히 경고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말했던 게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현대축구는 좀더 세련된 방법으로 시간을 끈다. 그 중 하나가 골라인 근처에서 상대 선수를 등진 채 서 있는 것. 상대선수는 공을 빼앗기 위해 파울을 해야하고, 그게 아니면 공은 옆줄 밖으로 나가 드로잉을 허용한다. 개인기가 좀 되는 브라질 애들이 이 방법을 쓰는 걸 꽤 여러번 봤는데, 우리나라같이 다리가 짧고 개인기가 떨어지는 팀이 쓰기엔 어려운 방법이다.

이번 청소년축구 결승에서 스페인과 만난 브라질 팀은 좀더 고차원적인 시간끌기를 선보였다. 상대 골라인 근처에서 공을 가지고 있다가, 수비가 달라붙으면 터치아웃을 시킨다. 코너킥이 주어지며, 그 코너킥을 바로 옆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 시간을 보낸다. 다시 수비가 달라붙고, 그 수비를 향해 열나게 세게 공을 찬다. 다시 코너킥. 이런 광경이 몇차례 계속되자 급기야 심판은 경고를 줬는데, 이 광경을 보던 해설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식의 시간끌기는 처음 보네요"

최근 브라질 축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작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고, 올해 17세, 20세 팀이 우승을 했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올림픽 금메달만 따면 싹쓸이를 하는 거란다). 그렇긴 해도 브라질 축구는 실력에 비해 더티 플레이가 너무도 많다. 작년 월드컵 터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수가 찬 볼에 무릎을 맞은 히바우두가 얼굴을 감싸며 쓰러진 것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 심판은 그 액션에 속아 터키 선수에게 경고를 줬는데, 나중에 경기장 내에 설치된 카메라에 히바우드의 헐리웃 액션이 들통나 벌금을 물었었다. 이번 20세 팀이 우승을 하긴 했지만, 리드를 잡은 뒤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시간끌기 전략이 총동원되어, 넘어진 뒤 안일어나다 레드카드를 받는 등 치사한 경기를 했다. 일본에 패한 우리나라 청소년팀이 바람만 불어도 넘어지고, 넘어진 뒤에는 언제나 애처로운 눈으로 심판을 쳐다보던 행위가 네티즌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여러명을 제끼고 환상적인 골을 넣는 것을 배워야 할텐데, 그들은 왜 그런 건 관두고 단점만 배운 걸까. 그게 더 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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